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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 교육계에서 일어나 학교는 지금 망연자실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제자들에게 바른 길을 가라고 가르치고 그들의 잘잘못을 지적해 이끌어 주던 스승이 쇠고랑을 찼다면 이 사실을 믿고 싶은 제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현실로 나타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 온 교사들이 낯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됐다.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또는 좀 더 큰 학교로 이동하기 위해 장학관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갖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성까지 상납했다는 보도에 교사들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장사를 할 것이지 코흘리개 아이들의 반찬값을 교장선생님이 횡령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안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장학지도를 나와 담임선생님을 호통치던 그 높은 장학관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고 질문이라도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손자 같은 아이들이 공부할 교실에 들어가는 비품을 ‘싸구려’로 사다 놓고 그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받고 지내는 파렴치한 사람이 교장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지금까지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예산을 공개하자면 한사코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던 일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전교조 교사를 배제하고 교감이나 자기 사람들이 포진하도록 공작을 꾸몄는지를 알 것 같다. 왜 운영위원을 학교와 이해관계가 있는 부교재 상인이나 동창회원 같은 분이 돼야 하는지도 말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9개 시·도의 교육청에서만 부정과 비리가 있었다’는 발표를 믿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발빠른 사과성명을 낸 경남 교육감의 행동에 감동할 교사는 더더구나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듣던 소리가 ‘교육계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죄질이 나쁜 일부 책임자만 처벌한다’는 수사방침도 진절머리가 난다. 부교재 채택비리사건이 그렇고 교실신축 비리와 학교급식과 관련된 비리도 그렇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수사에서 밝혀진 사건 외에는 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학교 졸업 앨범제작과 수학여행에 관련해 끊이지 않는 의혹은 근거없는 기우인가. 이름만 특기적성교육인 보충수업이라는 불법이 온 나라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받지 못하도록 금지한 간접수당은 과연 모든 학교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가. 감독관청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한줌의 의혹도 없이 학부모와 학생들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닌가.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파렴치한 범죄는 더욱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 재발방지를 위한 해결책은 없는 것이 아니다. 보충수업은 보충수업수당을 없애고 담당교사가 자율적으로 하면 해결되지 않을 리 없다. 학교운영위원회를 공·사립 관계없이 의결기구화해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고 학부모나 교사들에게 떳떳이 공개하면 부정이 발붙일 소지가 없어진다.

이 세상에 ‘학교장 자격증’이라는 괴상한 이름까지 붙여 권력의 하수인을 만든 독재정권의 망령이 학교교육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장에게 ‘교사평가권’이라는 절대권력을 주고 순종하는 교사를 승진시키는 승진제도를 없애고 성실하고 양심적인 교사를 교장으로 선출해 ‘군림하는 교장이 아니라 봉사하는 교장’제도로 바꾸면 부끄러운 교장이 나올 리 없다.

지금은 무너진 교권부터 회복해야 한다. 학교가 진정으로 교육을 하는 장이 되려면 ‘교육모리배’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성실한 교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자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금전관련비리를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안에 잔존하는 비민주적인 요소부터 청산해야 한다. 학교장이 시퍼렇게 반대하는 학생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가한다고 학교가 망하지 않는다. 망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학교예산을 축내겠다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교장의 욕심이다. 학교는 양심도 없는 후안무치한 학교장과 장학관의 활동무대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학교를, 교사에게는 교권을 돌려주는 일. 그것이 우선 학교를 살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2년 경남도민일보와 http://report.jinju.or.kr/educate/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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