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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민규명위는 30일 1차 조사대상자 중 81명의 명단을 관보 등을 통해 공고했다. 지난해 5월 31일 출범한 반민규명위 현판식 장면.
ⓒ 오마이뉴스 권우성
30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 위원장 강만길)가 친일반민족행위 1차 조사대상자 명단을 공고하면서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1차 조사대상자에는 1904년부터 1919년 사이 적극적인 친일행위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는 120명이 선정됐다. 이 시기는 을사늑약(1905년) 체결과 한일합방(1910년), 3·1 독립운동(1919년)으로 이어지는 일제강점 초기에 해당된다.

이날 반민규명위가 공고한 것은 1차 조사대상자 120명 중 81명의 명단이다. 나머지 39명의 이름과 직책은 관련법에 따라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19조 2항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선정 사실은 직계비속 또는 이해관계인에게만 통지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120명 중 39명을 제외한 나머지 81명은 호적이나 주민등록, 족보 등을 통해서도 연고가 파악되지 않아 관보 등을 통해 명단을 공개했다. 조사 사실을 알리고, 혹시 모를 후손들의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반민규명위는 "선정 사실과 최소한의 신상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이해관계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1차 조사대상자 중 명단이 공개된 81명에는 적극적인 친일 협력으로 '망국'을 주도한 매국·수작자(27명), 중추원 관련자(21명), 일진회 관련자(27명), 언론인 관계자(4명) 등이 주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81명의 후손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얼마나 나타날지, 또 이의신청을 얼마나 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공고된 39명 '을사오적' 포함된 듯

관보 등을 통해 공고된 명단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통지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반민규명위에 서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반민규명위는 이의신청을 받을 경우 심의를 거쳐 그 결과를 30일 이내에 신청인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다.

물론 1차 조사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반민규명위는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 조사에 착수해 구체적인 친일행위를 가려낼 예정이다. 친일행위 결과도 직계비속과 이해관계인에게만 통보된다.

1차 조사대상자 명단 중 공고되지 않은 39명의 조사대상자는 모두 후손들에게 조사 개시 사실이 통보됐다. 39명에는 을사오적 등 이미 친일행위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반민규명위는 오는 2007년 2차 조사대상자(1919년~1937년)와 3차 조사대상자(1937년~1945년)를 선정할 예정이다.

다음은 반민규명위가 공고한 81명의 명단.

<ㄱ>강경희(1858년 8월 15일생, 중추원 찬의), 강병일(1892년 6월 24일생, 헌병보조원), 구희서(1861년 8월 2일생, 중추원 부찬의), 권봉수(1870년 6월 25일생, 중추원 찬의), 김규창(미상, 일진회 총무원), 김낙헌(1874년 6월 15일생, 판사), 김사영(미상, 일진회 총무원), 김사정(미상, 국민동지찬성회 총무), 김성규(1891년 6월 7일생, 헌병보조원), 김시현(미상, 한호농공은행 감사, 대한천일은행 이사), 김용곡(미상, 범어사 주지, 30대본산 연합사무소 위원장), 김재룡(미상, 유생건의소 발기인), 김재순(미상, 신궁경의회 회장), 김정국(미상, 일진회 평의원), 김준모(미상, 임시찬성건의소 소장), 김진태(미상, 일진회 평의원, 평안북도지부 회장), 김택현(미상, 일진회 부회장), 김형옥(1867년 4월 2일생,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조선식산은행 설립위원), 김호중(미상, 자위단원호회 제1부위원장)

<ㄴ>나진(1881년 10월 17일생, 검사),

<ㅂ>박노학(미상, 일진회 평의원, 자위단원호회 순회부장), 박요섭(1897년 1월 16일생, 헌병보조원), 박지양(미상, 일진회 평의원), 박치상(1866년 2월 10일생, 경학원 사성), 백낙원(미상, 일진회 평의원), 백성수(미상, 전주경찰서 경부), 변일(미상,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

<ㅅ>서창보(미상, 국민동지찬성회 부회장), 서회보(1849년 7월 27일생, 중추원 부찬의), 선우일(1881년 1월 6일생,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 성하국(1846년 4월 2일생, 중추원 부찬의), 송현빈(1841년 11월 27일생, 중추원 부찬의), 신광희(1877년 11월 12일생, 대한신문 사장, 발행인 겸 편집인, 총무), 신상호(미상, 영동경찰서 경부), 신태항(미상, 일진회 평의원, 경상북도지부 회장),

<ㅇ>안태준(미상, 일진회 경기도지부 회장), 양재익(미상, 일진회 원임총무원 겸 간사), 엄태영(1875년 7월 28일생, 중추원 부찬의), 오제영(1877년 10월 15일생, 중추원 부찬의), 원세기(미상, 자위단원호회 제6부위원장, 일진회 총무원), 유동작(1877년 7월 6일생, 판사), 유일선(1879년 12월 27년생, 일본조합교회 한양교회 집사, 조선회중기독교회 감독), 유학주(미상, 일진회 총무원, 평의장), 윤정식(미상, 일진회 평의장), 이건하(1835년 4월 27일생, 남작), 이근명(1840년 1월 21일생, 자작), 이범찬(미상, 국민동지찬성회 회장), 이범철(미상, 자위단원호회 제11부위원장), 이범팔(1866년 3월 8일생, 남작), 이병무(1864년 1월 1일생, 자작), 이봉로(1872년 6월 16일생, 중추원 부찬의), 이용구(1868년 1월 21일생, 일진회 회장), 이인직(1862년 7월 27일생, 대한신문사 사장, 경학원 사성), 이재정(1846년 1월 7일생, 중추원 찬의), 이종춘(미상, 국민동지찬성회 간사), 이주영(1837년 3월 13일생, 남작), 이희두(1869년 6월 8일생, 일본육군소장),

<ㅈ>장동환(미상, 일진회 평의원), 정낙용(1827년 11월 24일생, 남작), 정운복(1870년 8월생, 경무국 촉탁, 매일신보 주최 구주시찰단 부단장), 정윤수(1872년생, 경학원 사성), 정치국(1865년 7월 7일생, 인천부 참사, 경기도 도평의회원), 정한조(1835년 8월 15일생, 남작), 조덕하(미상, 국민동지찬성회 간사, 총무), 조원성(1850년 2월 27일생, 중추원 부찬의), 조인성(미상, 일진회 평의원), 조재영(1875년 11월 24일생, 중추원 부찬의), 조중응(1860년 9월 22일생, 자작, 중추원 고문),

<ㅊ>최기남(1875년 9월 7일생, 간도 파견 경시), 최병혁(1878년 9월 24일생, 황해도 은율군수), 최상돈(1869년 5월 8일생, 중추원 부찬의), 최석민(1858년 8월 6일생, 남작), 최운섭(미상, 일진회 평의원), 최진태(미상, 광주경찰서 순사),

<ㅎ>한경원(미상, 일진회 평의원), 한교연(미상, 일진회 총무원), 한국정(미상, 자위단원호회 순회총부향관), 한남규(1874년 1월 4일생, 일진회 총무원), 한창회(미상, 일진회 평의원), 홍윤조(미상, 자위단원호회 제7부위원장, 일진회 총무원), 홍재하(1852년 2월 14일생, 중추원 부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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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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