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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 중 하나인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허 일병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이는 소속 중대와 헌병대 등이 사건 현장을 은폐·조작했다고 보고 허 일병의 죽음을 타살로 판단했던 1심 재판부와 상반된 결과다. 다만 재판부는 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책임은 인정해 국가는 허 일병의 부모에게 위자료 3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강민구)는 22일 허 일병 사망을 둘러싸고 고인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족에게 위자료 3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평소 허 일병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중대원들이 사체를 유기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중위 전아무개씨를 제외한 모든 중대원들이 새벽에 총기사고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공소시효가 넘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사망 원인을 자살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M16 소총으로 흉부에 2발, 머리에 1발을 쏴 자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며 "같은 총상으로 자살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총성을 2발만 들었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허 일병이 당시 6겹의 상의를 입고 있었고 오른쪽 가슴을 쏠 때 총구를 꽉 누른 상태였으므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사망 원인이 자살인 이상 사망 원인을 은폐·조작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면서도 부실수사의 책임을 인정해 "군수사기관의 위자료를 산정한다"고 밝혔다.

허원근 일병은 지난 1984년 4월 2일 오후 1시20분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GOP 철책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처음에는 오른쪽 가슴, 두번째는 왼쪽 가슴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으며 마지막에는 오른쪽 눈썹에 밀착해 사격, '두개골 파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들은 부대 상관의 총에 맞고 죽었다는 타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이후 10여 차례에 걸쳐 군 수사기관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방부 특별조사단 등에서 사망 경위를 조사했지만 자살과 타살로 결론이 계속 엇갈려 공방이 지속돼 왔다. 지난 2010년 2월,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된 것으로 판단하고 국가가 유족들에게 9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태그:#허원근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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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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