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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 실패자)라고 생각해요. 최소 180센티 이상은 돼야." - 이아무개
"미국 대학생들은 백팩을 많이 매던데 왜 핸드백을 안 들고 백팩을 매는지. 아무리 모든 조건을 갖췄어도 키 작으면 오만정이 떨어져요." - 문아무개
"여자는 집 나올 때부터 돈이 드니까 이미 데이트 비용은 쓰고 나오는 셈이죠. 그러니 돈은 남자가 내야." - 최아무개

이런 말들을 수치심 없이 해대는 일부 여대생이 한국의 여대생 집단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딸 셋을 둔 '키 작은 아빠'인 필자의 관점에서 그들은 의외로 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의 무모한 발언은 오늘도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다수의 대학생들을 적잖이 불편하게 만든 것만은 틀림없다. 

이처럼 뒤틀어진 언어들이 공영방송의 화면에서 전국으로 전파를 탔고 이것이 첨예한 사회적 논란거리로 부각된 이상, 우리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보다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루저녀 파문'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비루한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대생 이아무개씨는 자기 키가 170센티이니까 남자 키는 18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졌다면 자기 키가 큰 편이니까 남자 키는 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근거 없이 남자에게 10센티를 더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장 180센티 이하 남성은 '루저'라고 단호히(?) 규정해 버린 것이다. 

학생이 핸드백을 들지 않고 백팩을 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문아무개씨의 발언은 만약 그보다 15년 정도 어린 사람이 했더라면 그런 대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설사 한눈에 반했어도 키가 작은 것이 확인되면 '상황종료'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꾸미느라고 돈을 쓰니까 만나서 드는 비용은 당연히 남자가 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최아무개씨의 말에는 대화역을 맡은 외국인 출연자가 적절한 대꾸를 한 것 같다. 그는 최씨의 말에 기겁을 하며, "손님 받는 것도 아닌데, 예쁘게 꾸미고 놀아줬는데 돈을 내요?"라고 반문한 것이다.

누리꾼의 '마녀사냥', 공영방송의 타락 등과는 별도의 문제

물론 이런 발언을 한 여대생들의 개인 신상을 폭로하고 저주의 욕설을 퍼부은 누리꾼들이나, 이런 발언을 여과하지 않고 내보낸 프로그램 제작진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리꾼의 이른바 '마녀사냥' 문제나 공영방송의 타락상 문제와는 다른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2PM의 재범군 사건과는 현저히 다르다. 재범군은 미성년자 시절 사적인 공간에서 말실수를 했을 뿐이다. 또한 그것이 알려지자 진솔한 사과와 함께 행동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에 이번 여대생들은 전국으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발언했으며 그들은 학생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성인이다. 그리고 사건 후의 사과문도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흔히 '외모지상주의'를 말하고는 하는데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인 문제 진단은 아니라고 본다. 정확히 보자면 여대생들은 외모보다는 주로 '키'와 '돈'을 중시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키에 유달리 집착하는 일부 여성들, 그 이유는 무엇?

아무튼 여대생들이 중시한 것은 '키'와 '돈'이었다. 이 둘 중에서 돈을 중시하는 것은 물론 배금주의의 가치관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발전을 이룬 현대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다만 한국의 배금주의는 다른 나라들보다 약간 더 심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경제성장이 내질적인 면보다는 외형적인 면에 치우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유난히 키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키를 중시하는 사자숙어 유머가 있어 소개한다. 이것은 사람을 4등급으로 평가하는 데 키와 내면의 두 요소를 기준으로 삼는 유머이다.

첫째 키도 크고 내면도 좋은 사람은 금상첨화(錦上添花), 키는 작지만 내면이 좋으면 외유내강(外柔內剛), 키만 크고 내면이 나쁘면 외화내빈(外華內貧), 키도 작고 내면마저 나쁘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자숙어 유머에는 내면을 키보다 중시하는 가치관이 들어 있다. 그런데 '미수다'의 여대생들은 키를 절대적으로 중시한 나머지 '폭력적인 남자보다 키 작은 남자가 더 비호감'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가치관을 내보였다. 그것은 이런 말을 들은 남성이 "맞아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라고 반박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만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흥미롭게도 인터넷에는 키 작은 배우 톰크루즈가 톰크 '루저' 라는 이름으로 나돌고 있다. 사실 필자 주관으로 톰크루즈보다 단연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키가 더 작은 배우로는 알파치노가 있다.(그의 키는 166~168 정도) 카리스마파 안소니 홉킨스는 173이고 재능이 넘치는 악동 케빈 스페이시도 180 미만이다. 다시 말해 키는 외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여성들이 키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원인과 배경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한국 여성의 일부는 서양을 실제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남자도 그렇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사람들에게는 서양을 제대로 겪어 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고생하며 공부해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여행이나 연수 등으로 서양을 피상적으로 겪어본 사람들 중에서 더러는 대책 없이 서양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템즈강의 안개가 그립다거나 하이델베르크의 빵이 먹고 싶다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말을 우스꽝스러운지도 모르고 해대는 것이다.

'루저녀' 파문의 본질은 '된장녀'가 TV에 출연한 것

한국의 일부 여성이 키를 중시하는 것은 서양인의 키가 한국인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일전에 우리 사회는 근거 없이 서양을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된장녀'라는 칭호를 매겨 준 적이 있다. 이번에는 또 '루저녀'라는 칭호가 쓰이고 있다.

일단 이런 말들이 여자에게만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불순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한 편의 성(性)에만 붙여지는 것은 불건전한 현상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된장남'이나 '루저남'이라는 말도 상대적으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옛날에는 '환향녀' 또는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몽고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즉 '환향(還鄕)한 여성'을 지칭하다가 의미가 확장된 단어이다. 차후 화냥년은 성이 문란한 여성을 저질스럽게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성이 문란한 남성을 비하하는 말은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화냥년에는 편파적이고도 혹독한 성차별 관념이 개재해 있다.

이런 점에서 '된장녀'나 '루저녀'에도 '화냥년'처럼 왠지 여성 비하의 젠더 파시즘이 함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런 어휘의 사용에 내켜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유행어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적 기호성까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 모든 언어에는 사회성이 있게 마련이다. '화냥년'에는 외적의 침입과 성의 수탈이라는 역사적 얼룩과 함께, 경위야 어떻든 다른 남자에게 몸을 빈번히 허락하는 여성을 백안시하는 남성들의 이중적 집단 무의식이 숨어 있다.

같은 이치로 '된장녀'에도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특정 양상이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된장녀를 단지 명품 선호 여성과 직결하는 것은 피상적인 관점일 따름이다. 된장녀란 전통적인 관습 중에서 여성에게 이로운 것은 수용하면서도 불리한 것은 여성 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여성을 풍자하는 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는 신데렐라 드림에 젖어 '왕자'에게 눈도장을 찍히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여성이 이외로 많다는 것이다. 이런 여성이 못마땅한 남성들은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값이 유난히 비싼 것까지 된장녀들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인 바 있다.

그러나 사실 된장녀의 애환과 진실은 다른 데에 있다. 그네들은 커피 맛도 가격도 미각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명품 소비를 인격의 세련성과 결부한다. 된장녀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근면성도 없으면서 남자의 경제력에 의존해 호사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된장녀는 조건 좋은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그런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따지고 보면 한국인, 즉 된장에 불과한 여성을 '된장녀'라고 호칭한 것이다. '미수다'에 출연하여 극언을 서슴지 않은 '루저녀'들은 바로 이 부류에 속하지 않나 싶다. 그 중 한 사람의 해명대로 그들의 발언은 솔직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정상이라면 솔직한 것과 부당한 것의 구별을 했어야 했다. 그네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헤아릴 줄 모르는 불쌍한 처자들이다.


태그:#루저녀, #된장녀, #미수다, #배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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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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