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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2월 3일, 김수영(1921~1968)은 훗날 명시(名詩)가 되는 시 한 편을 내놓는다. <거대한 뿌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전통'과 '역사'에 관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었다. 그 중심 시상은 특히 3연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순한 평서문체의 강렬함이 인상적인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 제3연

"더러운 전통"과 "더러운 역사"에 대한 김수영의 인식은 매우 강경하다. 그는 4연에서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등을 열거한다. 이어서 그는 3연에서 거듭 되풀이한 '좋다'를 다시 한 번 내뱉는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고.

시인이 보기에 '반동'의 '전통'과 '역사'는 그 어떤 이념이나 외세, 권력으로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시 4연에서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일본 영사관', '대한민국관리' 등을 향해 벌건 육두문자를 날리는 이유다. 그가 한민족의 역사를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빗대는 이유다.

일제의 식민 통치, '음모의 바통'을 이어받은 결과

김수영은 연극에서 시로 전향한 해방 이후부터 모더니즘이라는 첨단 시풍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100에서 1이 모자란 99%의 자유조차 0%의 자유나 다름 없다고 말하는 '보헤미안' 같은 자유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쾨쾨한 '전통'과 '역사', 구닥다리 '반동'을 예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대체 우리 민족의 어떤 '전통'과 '역사'가 그의 눈에 "거대한 뿌리"처럼 보였을까.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겉그림.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겉그림.
ⓒ 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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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의 지은이 이숲은 유럽에서 찾은 낯선 텍스트들에서 이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그 텍스트들은 100여 년 전 서구의 이방인들이 한국(인)을 바라본 낯선 경험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화가(아놀드 새비지 랜도어, 1865~1924, 영국)이자 신문기자(프레드릭 매켄지, 1869~1931; 지그프리트 겐테, 1870~1904, 독일; 아손 그렙스트, 1875~1920, 스웨덴)였으며, 정치가(조지 커즌, 1859~1925, 영국)이자 외교관(윌리엄 샌즈, 1874~1946, 미국)이었다. 남자가 많았지만, 여자(이사벨라 버드 비숍, 1831~1904, 영국; 엘리자베스 키스, 1897~1956, 영국)도 없지 않았다.

100여 년 전의 한국과 한국인은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갔을까. 처음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하멜 표류기>(1668)와 <한국교회사서론>(1874)가 주요 원인 제공자였다. 이들 책은 한국을 처음 찾는 서구인들에게는 '필독서'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 책들에서 한국은 "미개하고, 더럽고, 풍속이 부패했고, 거짓말과 도둑질을 하며, 완고하고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한국인, 잔인한 고문이 자행되는 나라" 등으로 그려졌다. 저자는 이런 부정적인 정의가 구한말의 한국(인)상에 어두운 낙인을 찍고, 그것이 진실처럼 굳어져 버렸다고 본다. 일제의 식민 통치도 이 '음모의 바통'을 이어받은 결과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당시(19세기 말고 20세기 초-기자) 유럽에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원하는 인종론과 사회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를테면, '힘센 종족이 약한 종족을 지배하기 마련'이라는 이론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서구가 한국에 대해 쌓아올린 부정적인 인식 즉, 게으르고 무질서하며 자기 통제가 없다는 인식은 미개한 종족을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쉽게 빠져들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 부정적 표상을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음모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0쪽)

하지만 서구인들 모두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국(인)을 피상적으로만 관찰하지 않고 깊은 교류를 나눈 서구인들의 펜 끝에서 전혀 다른 한국인이 그려졌다고 말한다. 독일 기자였던 겐테는 한국을 체험하면서 <한국교회사서론>의 권위를 철저하게 의심했다. 예컨대 그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들 중의 하나인 '고문'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감옥에서 고문 기계를 살피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의 고문 도구들에서는 중국 법정이나 중세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끔찍하고 잔인한 발명품들을 볼 수 없었다고 썼다.

영국 기자 매켄지는 '체험'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쓰지 않았다. 저자는 그가 한국에 대해 쓴 두 권의 책을, "오로지 일본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썼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310쪽)고 평가한다. 심지어 그는 <The Tragedy of Koera>(1908, <대한제국의 비극>으로 번역됨)의 서문에서 "내가 반일적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반일의 피고자가 되고자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가 책 말미에서 술회하는 "이 책의 반일 정서"도 그런 매켄지로부터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

매켄지와 같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서구인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한국(인)의 상은 어떤 것들일까. 이 책의 1, 2장에 이에 대한 대답이 나와 있다. 가령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따라 서울 마포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힌 호머 헐버트(1863~1949)는, 한국인이 일본인의 이상주의와 중국인의 실리주의 모두를 갖고 있다고 평했다. 냉정과 정열, 합리주의와 이상주의, 평온과 분노 등 모순적인 기질이 잘 조화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프레드릭 매켄지와 윌리엄 샌즈가 한국인의 유순함 속에 격정적인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본 것도 이와 비슷하다.

자연스럽고 당당하며,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한국 남자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청순함과 수수함과 세련됨을 가진 한국 여자들. 100여 년 전 서구인의 시선에 비친 이들 한국인의 모습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의 바탕이 된 학위논문을 세계 시민성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국가 스웨덴에서 완성했다.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의식을 고취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민족'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의식을 품어야 할 오늘날, 한 종족의 '긍정성'을 끄집어내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일까?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시민상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반추가 이루어진 이후에 더 성숙해진다고 믿고 있다. (중략) '조선'은 우리의 조상이기 이전에 '역사의 약자'였다. 한국인의 긍정성을 조명해 보는 것은 우쭐대고 싶어서가 아니다. 역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우리의 자화상에 드리워있던 그늘을 걷어, 우리의 정체성에 유쾌한 자신감을 갖고 싶은 것이다. (15쪽)

김수영이 그랬던 것처럼,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외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힘 센 외세가 일방적으로 규정했을 것임에 틀림없는) '어글리(ugly) 코리안'의 속박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한국 사람은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누워 침 뱉는 격'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이들이 많다. 한 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은, 자화자찬도 물론이지만 자기 모멸과 비하를 통해서는 더더욱 온전히 정립될 수 없다. 제3자가 바라본 우리의 모습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다. '위풍당당'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응모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 예옥 | 2013. 6. 30. | 360쪽 | 1만 5천 원)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예옥(2013)


태그:#<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한국, 한국인, #프레드릭 매켄지,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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