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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김성수 관련 내용.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김성수 관련 내용.
ⓒ 정진후 의원(정의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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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독재 미화 논란에 휘말린 교학사의 고교<한국사> 교과서가 이번엔 위키백과(위키피디아) 표절 의혹까지 받고 있다.

6일 교학사 교과서에 실린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292쪽) 내용을 살펴본 학자들은 "해당 내용은 위키백과를 베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귀족원이 작위라고? 왜 잘못된 내용까지 같을까

표절 여부를 전문으로 판정해온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의 배성인 운영위원장(한신대 교수)은 "교과서 내용과 위키백과 내용을 비교해보니 김성수 관련 서술의 거의 90%가 위키백과 내용과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도 "위키백과가 잘못 서술한 내용까지 그대로 교학사 교과서가 갖다 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 글의 분량은 모두 14줄. 다음은 장 연구원이 교학사 교과서에 실린 김성수 관련 서술 전문(위 내용)에 번호를 붙여 위키백과 서술(아래 내용)을 비교한 것이다.

①1940년 8월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사주인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광복 때까지 은거하였다.
①1940년 8월 10일 일제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키자, 김성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칩거, 은거하였다.

②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고,
②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다.

③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
③일제가 주는 작위 역시 거절하였다.

④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보고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④없음.

⑤이승만이 하는 '미국의 소리' 단파 방송을 송진우, 장택상 등과 함께 비밀리에 청취하기도 하였다.
⑤ 이승만이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에 출연하자, 송진우, 여운형, 안재홍, 장택상, 윤치영 등과 함께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비밀리에 청취하기도 했다.

⑥학생들의 창씨개명 거부와 학도병 징집 거부가 이어지자, 보성 전문학교장인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동하라며 창씨개명 거부와 징집 회피 및 거부를 방관하였다.
⑥학생들의 창씨개명 거부와 학도병 징집 거부가 이어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동하라며 이들의 창씨 거부와 학도병 징집 회피, 징집 거부를 방관하였다.

⑦그러나 1943년 총독부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 사설란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에 찬성하는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는 글이 실렸다. 물론 이 글은 매일신보의 김병규 기자가 명의를 도용하여 쓴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⑦ 1943년 8월 5일자 매일신보 사설란에 인촌 김성수 명의로 게재된 글. 그러나 이는 매일신보 기자 김병규가 벌인 명의도용 등 관련해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사진 설명)

⑧김성수는 1942년 이후 요시찰 인물 2등급으로 분류되어 감시와 내사를 당했고,
⑧1942년 이후 그는 요시찰인물 2급으로 분류되어 감시와 내사를 당했다.

⑨보성 전문학교는 1944년 4월 '경성 척식 경제 전문학교'로 격하 당하였다.
⑨1944년 4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로 강제로 격하 당하였으나, 1945년 9월 광복을 맞아 보성전문학교로 교명을 환원하였다.

⑩그리고 1944년 7월에는 강압에 의해 일본 총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⑩1944년 7월 22일 일본 총리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⑪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여 항복하고 아베 총독이 치안권 이양을 송진우에게 제시하였으나, 송진우는 거부 의사를 알려왔고 김성수도 이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⑪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여 항복하고 총독부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치안권 이양을 송진우에게 제시하였으나, 송진우는 거부의사를 알려왔고 김성수도 이에 동의하였다고 한다.

교육부 훈령 "표절은 적절한 인용 없이 타인 것 사용 행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표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표지.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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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학사 교과서에서 위키백과에 실려 있는 '김성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 글을 찾을 수는 없었다.

'김성수의 친일행적과 변호론'에 대한 논문을 쓴 바 있는 장 연구원은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일제가 주는 작위 포기, 매일신보 김병규 명의도용 내용 등은 위키백과의 잘못된 기술 내용을 교학사 교과서가 갖고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위키백과와 교학사 교과서는 모두 "(김성수는)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장 원구원은 "김성수가 현재의 상원의원 격인 당시 제국의회 '귀족원'을 제안 받았다는 일부의 회고는 있다"면서 "이런 귀족원과 일본 귀족에게 주는 작위를 구분하지 못한 위키백과 서술을 교학사 교과서가 그대로 갖고 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위키백과는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는 김성수 글이 실린 매일신보 사진 아래에 '김병규의 명의도용' 내용을 적어 놨다. 교학사 교과서도 "김성수의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는 김병규가 명의를 도용하여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틀린 내용을 갖고 왔다는 지적이다.

장 연구원은 "김병규 대필설의 근거는 유진오 회고록인데, 정작 회고록에는 '문약의 고질…'이 아니라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글이었으며 두 글 모두 사설이 아니라 기고문"이라면서 "잘못된 내용을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그대로 베낀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르면 "'표절'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결과 등을 적절한 인용 없이 사용하는 행위"다. 교학사 교과서는 김성수 서술 내용에 원문의 출처를 밝혀놓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과서 뒤쪽 '참고문헌'에는 '위키백과'를 적어 놨다.

배 운영위원장은 "교학사 교과서의 베끼기는 학술적 연구 차원으로 보면 표절과 다를 바 없지만, 교과서 서술에 대해서는 학술논문과 달리 '표절' 문제를 적용한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베끼기 지적에 대해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교수(공주대)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위키백과 관련성에 대해 알아보았느냐'는 물음에 "아니다"라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밝혀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교학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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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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