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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 김영희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곡성 두계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 김영희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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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으로 집을 짓다', '콩 심기와 동네 웃음거리', '풀에 대한 예의', '뭣을, 이런 걸 다 주요?'…. 최근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를 통해 접한 글이었다. 섬진강변에 새로 둥지를 틀고 살면서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글쓴이는 김영희였다. 자기소개 란을 봤더니 '과천에서 30년을 보낸 과천댁이 섬진강변 샹그릴라-두계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겨 살아 갑니다'고 나와 있었다. 섬진강변 두계마을을 '샹그릴라(이상향)'로 표현하고 있었다. 과천에서 30년을 살았다면 도시에서 살다 내려 온 중년의 귀촌자일 것 같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계마을이 속한 곡성군 고달면사무소로 전화를 걸어서 물어봤다. 두계마을에 사는 김영희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하지만 전화를 받은 직원은 잘 모르고 있었다. 다른 직원한테 물어보더니 "체험마을 사무장을 맡고 있다"고 알려줬다.

글의 내용을 보면 중년의 아주머니 같은데, 체험마을 사무장이라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반적으로 체험마을 사무장은 30∼40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두계마을 입구에 선 흙장승. 김영희 씨가 사는 섬진강변 마을에 있다.
 두계마을 입구에 선 흙장승. 김영희 씨가 사는 섬진강변 마을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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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씨가 사는 집. 흙집 앞으로 빨간 고추가 널려 있다.
 김영희 씨가 사는 집. 흙집 앞으로 빨간 고추가 널려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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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면사무소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검색해 체험마을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체험마을 전화는 십중팔구 사무장이 받는다는 걸 알고 있던 터였다.

예상했던 대로 체험마을 사무실 전화가 휴대전화로 착신돼 있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그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남자였다.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나는 젊은 남자였다.

"혹시, 체험마을 사무장님 아니십니까? 김영희씨…."
"아! 사무장은 저고요. 그 분은 직전 사무장이었어요. 몇 달 전에 바뀌었습니더."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 그녀와 통화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한 번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망설임이었다. 탐탁스럽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옆의 누군가와 상의를 하는가 싶더니 "그러면 한 번 놀러 오라"고 했다.

'과천댁' 김영희 씨가 사는 흙집 풍경. 해바라가기 활짝 피어 있다.
 '과천댁' 김영희 씨가 사는 흙집 풍경. 해바라가기 활짝 피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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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63)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섬진강변 두계마을에 자리한 그의 집을 본 첫 느낌은 '정리 안 된 수목원'이었다. 마당에 감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눈에 띄었다. 열매가 제법 튼실했다. 호두나무, 자두나무도 보였다. 보리수나무도 있었다. 목련과 동백, 무궁화도 군데군데 서 있었다.

꽃도 지천이었다. 해바라기가 먼저 시선을 붙잡았다. 능소화와 옥잠화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금잔화, 코스모스도 많았다. 그 사이엔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텃밭엔 콩과 참깨, 수수, 고추가 풀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삽니다. 손을 쓰고 싶은데,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라서요. 풀 한 포기를 베더라도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고 베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하나씩 익혀가는 중인데, 쉽지 않네요."

김씨의 말이었다. 김씨 부부는 이렇게 마당에 풀이 많은데도 "그러려니" 하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의 할머니들이 못 견딘다. 하루는 김씨 부부가 외출했다가 들어와 보니 팔순도 넘은 할머니가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가슴이 땅에 닿을 정도로 구부러진 몸을 이끌고 풀을 메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그도 얼른 옷을 갈아입고 김매기에 나섰다.

김영희 씨가 집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다. 꽃과 풀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마당이다.
 김영희 씨가 집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다. 꽃과 풀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마당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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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 사람들. 김영희 씨의 표현대로 '진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곡성 두계마을 사람들. 김영희 씨의 표현대로 '진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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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여기 들어와서.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분들입니다. 자기를 알아주라고 하지도 않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생활의 지혜를 배웁니다. 호미질과 낫질도 익히고. 농사법도 하나하나 배우고 있어요. 재밌어요."

도시생활을 오래 한 김씨 부부지만 시골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사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이곳에 둥지를 튼 게 2년 전이라고 했는데. 마을주민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았다.

"저희는 아프리카에 가면 원주민처럼 살 수 있어요. 유럽에 가면 유럽인처럼 살 수 있고요. 농촌에선 농사꾼처럼 살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계마을도 저희들이 전국을 돌아다녀보고 '이곳이다' 싶어서 택했고요."

비결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숨겨뒀던 이야기를 살짝 풀어놓는다. 세세한 이야기는 꺼렸지만 옛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씨의 부군(안효승·63)은 충북 음성 출신의 외무공무원이었다. 탄자니아와 덴마크 대사를 지냈단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30년 동안 살았다는 '과천'이 정부종합청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김영희 씨가 사는 두계마을의 흙집 풍경. 김씨 부부가 직접 설계하며 지은 집이다.
 김영희 씨가 사는 두계마을의 흙집 풍경. 김씨 부부가 직접 설계하며 지은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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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댁' 김영희 씨의 두계마을 살이. 김씨가 처마 밑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과천댁' 김영희 씨의 두계마을 살이. 김씨가 처마 밑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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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에서 오래 살았어요. 혼자서 여행도 많이 했고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봤고, 에베레스트산에도 올라봤고요. 제가 여행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지를 가봤는데요. 그 눈으로 봤을 때 여기 두계마을만 한 곳이 없었어요. 우리나라에."

김씨 부부가 섬진강변 두계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유였다. 집도 흙으로 아담하게 지었다. 크기가 20평 남짓 돼 보였다. 굳이 넓을 이유가 없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넓은 집을 지을 요량이었으면 그냥 도시에 살았을 것이란다.

"아직 모든 게 서툴러요. 일도 못하고요. 하지만 재밌어요. 시도 때도 없이 놀러오라며 마을사람들이 불러주는 것도 재밌고요. 회관에 가서 같이 밥 먹고, 버스 타고 같이 놀러 다니는 것도 그렇고. 사는 게 재밌어요."

김씨의 얼굴에서 흐뭇함이 묻어난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그동안 무심코 썼던 합성세제나 비누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이였다. 작별인사를 나누기에 앞서 생활의 불편한 점이나 귀촌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넌지시 물었다.

"후회가 있다면…. 이렇게 좋은데, 조금 더 빨리 내려올 걸 그랬어요. 그게 후회가 되고요. 바람이 있다면…. 요즘 관광개발 많이 하잖아요. 좀 품격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산을 마구 파헤치고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 말고요. 몇 십 년 앞을 내다보고 더 이상 훼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샹그릴라'에 살면서도 무분별한 지역개발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한적한 산골마을이 개발의 삽질 앞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세상 시름 다 잊고 살고 싶었는데…."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근심이 묻어난다.

'과천댁' 김영희 씨의 집. 한적한 산골마을 풍경 그대로다.
 '과천댁' 김영희 씨의 집. 한적한 산골마을 풍경 그대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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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영희, #과천댁, #두계마을, #곡성,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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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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