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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경우, 국정원은 핵심 증거를 소위 'RO' 내부 조력자가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내부조력자가 아니라 거액에 매수된 '프락치'라고 주장한다.

정보기관은 주로 협박이나 회유, 매수를 통해 프락치를 만든 다음 프락치를 이용해 공안사건을 조작해냈다. 프락치는 자신의 성과를 위해 무고와 증거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프락치 공작은 항상 사찰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만들어내 결국 과도한 자기 검열을 부른다. 또한 타인에 대한 의심을 불러 사람 사이의 신뢰관계를 파괴하고 심하면 조직이 분열되기도 한다. 프락치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락치 공작은 공안기관의 성과를 위해 관련된 많은 사람을 피해자로 만드는 비인간적인 행위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에서 프락치의 존재가 논란이 되는 것과 비슷하게 1974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내란음모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에서도 프락치 공작이 논란이 되었다. 민청학련 사건에서 프락치로 의심받은 인물은 16대 국회의원이자 한나라당 당 홍보위원장을 지낸 곽성문 전 의원이다.

중앙정보부와 검찰에 적극 협조한 인물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4월 3일 유신독재정권에서 선포한 '긴급조치 4호'에 의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180명이 구속, 기소된 사건을 말한다. 민청학련 사건 변론을 맡았던 홍성우 변호사는 한인섭 교수와의 대담집 <인론변론 한 시대>에서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한마디로) 4월 3일 날 일제히 데모를 하려던 계획이 들통이 나서 긴급조치가 내려진 사건"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별다른 사건이 아닌 것을 박정희 정권이 '내란음모'사건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민청학련 관련자인 이철 전 의원은 곽성문이 비밀회의 내용을 중앙정보부에 전달한 것으로 주장했다. 이철 전 의원은 2003년 11월 27일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여 년 전 일인데 구체적인 물증이 있겠는가. 하지만 K씨(곽성문)가 프락치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K씨는 우리 동지들의 비밀회의에도 참석했는데 그가 참석했던 회의 내용은 중앙정보부가 모두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곽성문은 민청학련 사건 당시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이철 전 의원은 곽성문이 사건 이후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민청학련 관련자에게 불리한 허위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철 전 의원은 "중정에 들어간 학생회 간부들 대부분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핵심간부였던 그는 유유히 풀려났다. 또 많은 동료들이 그의 법정 허위 증언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곽성문은 2004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민청학련 관련자인 이해찬(현 민주당 의원)과 강창일(현 민주당 의원) 재판에서 검찰 측 요청으로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에 재학중이었던 황인범씨 재판의 경우에는 황인범과 곽성문이 통일운동에 대해 나눈 이야기 가운데 북한의 통일전략에 동조한 부분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에 "인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하여 검찰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를 만나면 모두 잡혀들어갔다"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가 민청학련 관련자를 검거할 때 곽성문이 이에 협력하여 이전 동지들을 속이고 동지들을 공안기관에 넘긴 것으로 보았다. 이철 전 의원은 2003년 11월 27자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청학련 관련 인사들이 검거될 당시 K씨(곽성문)와 만나기로 한 동지들은 항상 현장에서 검거되었다"고 밝혔다. 이철 전 의원에 따르면 이철 전 의원이 복학생 시절이었을 때 곽성문이 찾아와 "감옥에 가더라도 좋으니 학생회를 맡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다른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철 전 의원은 곽성문을 지지하여 곽성문이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을 맡았다. 곽성문이 학생회장을 맡고 있을 때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고 연루된 학생들이 숨어 있었는데, 곽성문이 만나자고 했던 인물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구속되었다는 것이 이철 전 의원의 주장이다.

2005년 6월 16일자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따르면 민청학련 사건의 핵심 관련자 중 한명인 성공회대 이종구 교수는 2003년 11월 <실록 민청학련>이라는 글을 통해 문국주씨 등 당시 사건 관련자들이 검거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곽성문 전 의원이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실록 민청학련>에서 이종구 교수는 "어느 날 형사들이 어디로 몰려나갔다. 알고 보니 서울 절두산성당 근처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73학번 문국주를 잡아온 것이었다. 학생회 임원 중에 강구철과 문국주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경찰에게 알려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문국주 씨도 "총학생회 간부 강구철 선배와 마포 절두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곽 의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나오겠다'라고 해 갔다가 경찰에 잡혔다"라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 곽성문은 2004년 <주간동아>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를 인용한 <데일리서프라이즈>에 따르면 1974년 4월 3일 긴급조치 4호 선포 직후, 곽성문은 대학 후배 문국주 씨(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2학년)의 검거와 관련하여 "동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 때 다른 조직과의 약속내용을 전달받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면서 "(약속장소에) 가니 문국주씨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씨가 주장한 당시 현장에 곽 의원과 함께 온 경찰이 매복해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곽 의원은 "(경찰이 매복해 있었다는 내용을) 말하지 못했다. 그 부분이 가장 미안한 부분이다"라고 해 경찰과 함께 있었음을 인정했다.

민청학련 사건 이후 승승장구

민청학련 관련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곽성문은 이미 풀려나 있었고, 1976년 당시에는 관변 유관단체라고 할 수 있는 MBC에 취직했다. 그리고 라디오뉴스부 부장, 보도국 국제팀 팀장, 스포츠국 국장 등을 거쳐 2001년에는 MBC플러스, MBC드라마넷, MBC게임, MBC스포츠 사장을 겸임하는 지위까지 오르게 된다. 곽성문은 2004년에는 한나라당 의원이 되어 국회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철 전 의원은 2003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75년 나와 동료들이 석방됐을 때 그는 정부 유관기관에 취업해 있었다. K씨(곽성문)가 프락치 역할을 한 정황들이다. 나와 관련자 대부분은 그가 프락치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2003년 당시) 이러한 반민주적이고 비양심적인 인사가 국가 주요기관 핵심 간부로 근무했고, 현재도 공기관에 재직중이라는 사실에 일침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프락치 공작, 언제까지?

1970년대~90년대 학생운동이나 재야운동에는 '10명 중 1명이 프락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공안기관은 엄청나게 프락치를 활용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2004년 연세대 프락치 양심선언, 2009년 아주대 프락치 논란 등 공안기관이 프락치 공작을 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프락치 공작으로 만들어낸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녹취를 한 사람이 국정원에 매수된 후 녹음한 것이라면 이는 내부 제보자가 아닌 프락치이고 이는 국정원이 인간을 도구로 불법 도청한 것이 되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프락치 공작까지 해가면서 진보당을 탄압하는 것은 자신들이 정권의 반대자로 지목한 세력에게는 무슨 짓이든 저질러도 된다는 독재적 발상이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수준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다. 국정원을 해체하여 공안기관의 유신독재 식 전횡을 근절해야 한다.


태그:#민청학련, #통합진보당, #프락치, #이석기, #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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