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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인터넷을 통해 허위 경제 위기설을 퍼뜨린 혐의로 체포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한 시민이 검찰 로고 옆을 지나가고 있다.
 검찰이 인터넷을 통해 허위 경제 위기설을 퍼뜨린 혐의로 체포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한 시민이 검찰 로고 옆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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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야 날아올랐다. 이명박정부 이래로 세상의 모든 영역이 검은 구름에 휩싸여 어둠 속에 갇히고 있다. 그렇다고 이전 정부 시절이 모두가 맘껏 자유를 구가하던 찬란한 세상이라고 할 것도 못 되지만, 어둠이 짙어지면서 그나마도 아쉽게 되었다. 검은 구름 때문에 미네르바의 존재는 더욱 눈에 띄었고, 정부는 부엉이 한마리 날아다니는 것도 용납할 수 없어 곧 날개를 꺾고 떨어뜨리고 말았다. 참 옹졸하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서 한다는 짓이 부엉이 한마리 잡는 것이라니 말을 잇기가 민망하다.

미네르바를 구속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힌 이유는 더욱 기가 막힌다. 그가 작년에 올린 수많은 글들 중 단 두개의 글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쓴 '허위사실'이고, 그로 인해 외환시장과 국가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지금까지 본 구속사유 중 가장 궁색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그리고 비겁한 거짓말이다. 정부가 달러 매수를 중지하라고 금융기관에 지시했다는 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 글 때문에 부정적 영향이 생겼다고 믿을 외환시장 종사자, 국가신인도 평가기관은 없다.

실제 이 글이 올라온 당시 환율은 오히려 내려갔고, 일관성 없이 반복되는 정책실패로 인해 추락하던 국가신인도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솔직히 검찰과 법원이 하고 싶었던 것은 그 하나의 글이 아니라 200편이 넘는 정부정책 비판 글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다른 글을 이유로 문제의 글을 욕보이는 것은 치졸하다. 그의 글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을 찾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틀린 말도 표현할 권리도 있다

모든 국민은 옳은 말을 할 권리도 있지만 틀린 말을 할 권리도 있다. 틀린 말을 권장하자는 게 아니라 그 말이 틀렸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어도 거짓말을 할 자유는 있다. 표현의 자유는 옳은 말만 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틀린 말도 할 수 있을 때 온전히 보장된다.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 1호 '허위사실 유포죄'가 없어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사실 유포죄'는 어미와 함께 없어졌어야 할 악마의 사생아다. 사실은 미네르바의 글이 허위라고 할 수도 없다. 미네르바의 글이 나오기 이전에 증권가에선 정부당국자들이 달러매수 중지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실제 달러매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자신이 직접 정부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증언도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긴급공문? 정부지시가 종이쪼가리로 내려오든 전화로 내려오든 구속여부를 판단하는데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던 날 변호인 접견을 통해 처음 만나본 '미네르바'는 평범하진 않았다. 긴급체포와 반복되는 조사로 심신이 지친 가운데서도 그의 말과 행동은 4차원적이었다. 가히 수많은 사이트·자료를 수집하여 순식간에 경제전망 분석 글을 작성할 만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글이 구속까지 당할 만큼 독창적이고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애널리스트들은 모두 세가지 경기예측 보고서를 작성한다. 경기전망을 가장 낙관적으로 보는 베스트 시나리오는 고객에게 전달되고, 증권사엔 에버리지 시나리오를 준다. 그리고 자신은 워스트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

예전엔 이 모든 시나리오가 자유롭게 시장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비관적 시나리오를 찾아볼 수가 없다. 당장 정부 당국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비관'이 사라진 인터넷에서 미네르바는 날았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가 아니고 신원확인이 되지 않으니 그런 압력을 받을 일이 없다. 그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계속 쓸 수 있었다. 일진광풍으로 안개가 걷히듯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거둬들이니 그의 글만 남았고, 곤두박질치는 경제상황이 그의 글 속에서 확인되자 세간의 주목을 받아 군계일학이 된 것뿐이다.

그의 구속사유는 남들 다 숨을 때 숨지 않고 굼떴다는 것이다. 아마 그의 글 말미에 전화번호가 있어서 경고를 미리 들을 수 있었다면 그는 무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컴퓨터엔 '구속 각오하고 입 놀려라'는 경고문구가 새겨졌다. 행복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덧붙이는 글 | 송호창 기자는 변호사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 입니다.



태그:#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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