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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오리기 달인 이경애 명인이 당근 꽃을 오리고 있다.
 문어오리기 달인 이경애 명인이 당근 꽃을 오리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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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는 숨은 솜씨꾼들이 정말 많습니다. 문어 오리고 오징어 오린 것은 폐백음식으로 들어갑니다. 전라도에서는 어물새김이라고 하지요."

최근 KBS <한국인의 밥상> 출연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문어오리기 달인 이경애(68) 명인을 지난 14일 여수 교동의 가게(폐백이바지이야기)에서 만났다.

경이롭다... 명인 손끝에서 탄생한 쌍공작

오징어 8마리를 사용해 꼬박 이틀 걸려 만든 쌍공작이다.
 오징어 8마리를 사용해 꼬박 이틀 걸려 만든 쌍공작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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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인의 문어오림은 솜씨 좋은 언니 두 분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평소에 부친의 오림을 등 너머로 봐왔던 터라 눈에 익숙했다고 한다. 남다른 눈썰미가 있는 이 명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옛날에는 칼끝 가는대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모양을 많이 다듬어 자연미가 있습니다."

여수 중앙쇼핑 대여섯 평 남짓한 가게에서 이 명인은 당근 꽃을 오리고 있었다. 칼을 세 번 움직이자 명인의 손끝에서 당근 꽃이 피어난다.

"음식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 꽃이 들어가야 합니다. 조화는 쓰지 않습니다. 채소와 과일 꽃을 만들어 졸여서 이바지음식에 장식을 합니다. 당근과 인삼·사과·배·호박 등을 주로 씁니다."

한때 영화보기를 좋아했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지만 우연한 기회에 TV에서 본 문어오림 덕에 이 명인의 인생여정이 바뀌었다.

"문어오리기 장면이 나오는 걸 TV에서 우연히 봤어요. 곧바로 여수농업기술센터로 전화를 걸었지요. 이후 교육에 참여해 농업기술센터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원래 잠이 별로 없는데 그날 오징어 한 축을 사다 밤새 다 오렸어요. 하루 만에 선생님의 실력을 능가할 정도였지요."

가게에는 신랑신부의 사주를 담은 함, 반짓고리, 자경, 폐백 음식 등이 진열되어 있다.
 가게에는 신랑신부의 사주를 담은 함, 반짓고리, 자경, 폐백 음식 등이 진열되어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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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인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에다 집념과 근성이 강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올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최불암씨와 함께 TV 출연도 하고 전남도 지정 명인이 된 것이다. 겹경사다.

이 명인의 작품은 가위 끝에서 오려진다. 나름 고생을 많이 했다는데 곱기만 한 외모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어낼 수가 없다. 부지런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인 듯하다. 또한 말문을 열기만 하면 쉼 없이 쏟아내는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명인이 일하는 자그마한 가게에는 신랑신부의 사주를 담은 함, 가위와 실 바늘 등을 담는 반짓고리, 자경(거울), 다양한 폐백 음식 등이 진열돼 있다. 그중 오징어로 오린 쌍공작 작품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어떻게 해가든 한소리 듣는다는 폐백음식, 잘하려면...

신부가 잘해가도 한소리 못해가도 한소릴 듣는 게 폐백음식이라고 한다.
 신부가 잘해가도 한소리 못해가도 한소릴 듣는 게 폐백음식이라고 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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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잘해가도 한소리, 못 해가도 한소리 듣는 게 폐백음식이란다. 신부가 시부모와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중요한 자리기 때문이다. 혼례 시 혼수 못지않게 중요한 폐백음식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가야 할까 이 명인에게 물어봤다.

- 폐백음식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좀 부탁합니다.
"폐백음식의 기본은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입니다. 문어 또는 오징어를 이용해 오린 쌍공작과 술안주인 구절판입니다. 시아버지 앞에는 대추봉을 육포는 시어머님 앞에 놓습니다. 곶감은 장수의 의미이며 엿은 부부화합을 의미합니다. 쌀강정은 덤인 셈이지요."

- 이 공작은 볼수록 정말 대단하군요.
"쌍 공작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만들었지요. 대한민국 최초인 셈이지요. 만드는 방법을 이곳에서 배워간 분들이 많습니다."

- 만드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겠어요.
"오징어 8마리를 사용했습니다. 꼬박 이틀 걸렸지요."

- 공작이 대추를 물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요.
"대추와 밤은 자손을 의미합니다.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 폐백음식을 장만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드나요.
"대여섯 가지 장만하는데 50~60만 원 정도 듭니다. 최근에는 진짜 음식이 아닌 가짜 폐백음식을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앞으로 명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여요."

 폐백음식에 대해서 이 명인이 설명하고 있다.
 폐백음식에 대해서 이 명인이 설명하고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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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의 겉면에는 오리기를 붙여 사군자를 표현했다.
 육포의 겉면에는 오리기를 붙여 사군자를 표현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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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우리 음식에 최고봉은 단언컨대 폐백음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식의 달인이 아니고서야 이런 상차림은 감히 범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곶감 세 개씩을 사용해 만들어낸 곶감 오림 하나 만드는 데도 자그마치 1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술안주로 선보이는 구절판에 담긴 음식 또한 이 명인이 직접 요리했다. 구절판의 구성은 담는 사람은 마음에 매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지극정성으로 만들어낸 육포의 겉면에는 오리기를 붙여 사군자를 표현했다. 볼수록 신기하고 정성이 느껴진다. 폐백음식에서 달인의 경지가 엿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어오리기, #명인, #폐백음식, #육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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