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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신화통신 홈페이지에 "백두산에서 '중국 만세'라고 쓰인 돌이 나왔다"는 글이 실려있다. | | | | 중국 관영 신화통신 지린판 홈페이지에는 "백두산(중국 표현은 장백산(長白山)에서 '중국 만세'라고 쓰인 돌이 나왔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
백두산에서 '중국만세'라는 돌이 나왔다는 신화통신 지린판 홈페이지(http://www.jl.xinhuanet.com/cbs/wh_06.htm)는 정도를 지나치게 벗어난 정치적 상징 조작이라 하겠다. 신화통신 지린판 홈페이지에는 '가자 장백산으로(走進長白山)'라는 코너가 있다. 그 코너에 신화통신 주창칭 기자가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주요 부분을 발췌·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89년 공화국 창건 50주년의 바로 전날 장백산에서 지린성 바이산시방송국 엔지니어 쑨옌카이가 '화(華)'라고 새겨진 돌을 발견했다. 쑨옌카이는 이로써 근 10년 만에 '중화만세(中華萬歲)'가 쓰인 4개의 기석(奇石)을 모두 수집하게 된 것이다.
기석 수집가인 쑨은 틈만 나면 장백산과 훈강 유역에서 기석을 수집해 왔으며, 현재 '중화지도석(中華地圖石)'을 포함한 100여 점의 기석을 소장하고 있다. '중화만세'라는 4개의 기석 중에서 '중(中)'이 쓰인 돌은 9년 전인 1980년에, '萬' 및 '歲'가 쓰인 것은 그 얼마 후에, 맨 마지막으로 '화(華)'가 쓰인 기석은 공화국 창건 50주년의 바로 전날인 1989년 9월 30일에 발견되었다.
각각의 돌에는 '中'·'華'·'萬'·'歲'라는 글자가 천연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그 중에서 '中'과 '華'는 손바닥만하고, '萬'과 '歲'는 거위알과 달걀만하다. 네 개의 기석은 재질·글자체·구도가 모두 다르지만, 각각 나름의 특색이 있고 그 오묘함도 무궁하다 하겠다. 쑨옌카이는 이 기석 세트를 국내외의 애국적 수집가에게 넘기고 싶다는 의향을 표시했다.
이상이 기사의 요약이다.
백두산이라는 한 장소에서 각각 '中'·'華'·'萬'·'歲'라고 새겨진, 그것도 자연 현상에 의해서 천연적으로 새겨진 네 개의 돌이, 단지 한 사람에 의해서, 게다가 공화국 창건일 바로 전날까지 모두 발견되려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우연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기사가 어떤 방식으로 상징 조작 효과를 연출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살펴 보기로 한다.
상징조작을 통해 중국이 얻고자 하는 것
첫째, 마치 모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십계>를 연상시키듯이, 자연현상에 의해 '중국만세'라는 글자가 4개의 돌에 새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은연 중에 중국이 천손민족인 듯한 인상을 독자에게 주는 것과 함께, 하늘이 마치 백두산을 통해 중국에게 축복을 내려 주는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마지막 돌이 발견된 날짜가 하필이면 공화국 창건 50주년의 바로 전날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천명에 부합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만주 같은 소수민족 거주 지역의 인민들을 심정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밀착시키는 효과를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 하겠다. 단일 민족에 비해 국민 통합의 필요성이 한층 긴요한 다민족 국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글자가 발견된 순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어떤 일에서건 간에 사람들에게 가장 잘 기억되는 것은 처음과 끝이다. '중국만세' 기석의 경우, 처음에는 '中'이, 마지막에는 '華'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華'를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華'가 가장 강한 이미지를 갖도록 하고 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라 하겠다. '中'은 정치적·지리적 측면에서, '華'는 문화적 측면에서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 두 개의 단어를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넷째, 글자의 크기다. '中'과 '華'는 손바닥 만하고, '萬'과 '歲
는 거위알과 달걀 만하다고 했다. 위 셋째의 경우와 같이, 이 역시 '중화'를 강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러한 상징 조작을 통해 중국은 어떠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중국이 그 효과를 얻고자 하는 지역적 범위는 당연히 지린성이다. 만약 전중국적인 범위에서 어떤 효과를 기대했다면, 백두산보다 훨씬 더 높고 더 아름다운 산에서 그러한 돌이 나왔다고 했어야 한다.
백두산에서 그러한 돌이 나왔다고 선전하는 것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지역의 소수민족, 특히 조선족의 마음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묶어 두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족이 국경 바로 옆인 한반도에 심정적으로 이끌리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선 시대 중종과 조광조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게 흥미로울 듯하다.
조선 중종 14년(1519) 궁궐에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뭇잎이 발견되었다. 走+肖 즉 '조광조(趙光祖)가 왕(王)이 될(爲) 것'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조광조의 인기를 시기하던 중종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오죽했으면 미물인 벌레까지도 나뭇잎에 그런 글씨를 썼겠냐라며, 이는 필시 조광조가 왕이 될 징조라는 말도 나돌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1월 훈구파의 탄핵을 받은 조광조는 결국 사사(賜死)되고 만다. 그리고 신진사대부 세력 역시 큰 타격을 입고 정계에서 물러나고 만다(기묘사화).
당대의 걸출한 개혁가 조광조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주초위왕' 사건. 그것은 말 그대로 정치적 조작이었다. 훈구파가 일부러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새긴 뒤에 벌레가 이를 파먹도록 한 것이다. 조광조가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징 조작을 통해, 국왕과 조광조를 이간시키고 나아가 신진 개혁 세력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힌 사건이었던 것이다.
중국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상징 조작은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일 수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조선족 동포들의 민족적 혼을 말살하려는 것일 수 있다. '주초위왕'이라는 상징 조작을 계기로 조광조라는 개혁가의 육체가 말살 당했듯이, '중화만세' 같은 상징조작을 통해서는 조선족의 영혼이 말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족이 중국 국적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와 같은 동포라는 사실마저 부정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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