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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승만(李承晩)의 꿈이 '부강한 대한민국' 만들기였다면, 유영익(柳永益) 교수의 꿈은 부당하게 매도당하고 있는 이승만(李承晩) 박사에게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드리는 것."

<월간조선> 2004년 12월호는 이승만 재조명 학술회의를 개최한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에 관한 인물평을 이렇게 실었다. <월간조선>은 유영익 교수를 이승만 연구에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인물로 평가하면서, 이승만 전기의 완성이 그의 포부라고 밝히고 있다.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현 이승만 연구원)를 만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승만 연구의 태두 라고 불리는 유영익 교수. 그가 지난 23일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됐다.

청와대의 신임 국사편찬위원장 내정 이유

새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된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가운데). 지난 2006년 11월30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제 6차  심포지엄-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에서 포럼 도중 4.19혁명동지회, 4.19유족회 등 5개 관련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포럼 참가자인 유영익 당시 연세대 석좌교수를 둘러싸고 있다.
 새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된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가운데). 지난 2006년 11월30일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정보관에서 열린 '교과서포럼 제 6차 심포지엄-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에서 포럼 도중 4.19혁명동지회, 4.19유족회 등 5개 관련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포럼 참가자인 유영익 당시 연세대 석좌교수를 둘러싸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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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그의 내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역사연구회 등 역사 관련 단체에서 편향된 인물이라는 강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유 교수의 내정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는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적임이어서 발탁했다"고내정이유를 밝혔다.

지난 8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촉발된 한국사 교과서 왜곡 논란의 중심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있다. 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해 역사학회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친일과 독재미화·표절 의혹·오류 투성이인 유해물 수준의 교과서에 대해 검정을 통과시킨 국사편찬위원회 이태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태진 위원장은 2012년 국감에 출석해 "독재도 때에 따라 필요하다"고 이야기 해 야당의 호된 질책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독재 비호' 이태진 위원장이 물러나는 자리에 이승만 숭배자인 유영익 교수가  발탁됐다. 야당과 역사학회의 요구를 보란 듯이 걷어찬 어깃장 인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내자 내용의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일이 빠졌다, 명성황후 살해범의 입장을 두둔하자는 거냐는 문제 제기에서부터 일부 내용이 특정사이트에 게재된 내용을 표절했다는 의혹, 관련 사진이 잘못 사용됐다는 지적까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기사가 쉼없이 나왔다. 검정을 거친 교과서인데도 역사학회 등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속에 잘못 기술된 사항이 최소 298군데에 이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의 대부분은 단편적이었다. 사건년도를 잘못 게재하고 사진을 다르게 넣는 오류 역시 교과서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단지 그 정도의 오류라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인 이명희 교수의 주장처럼 학생들의 손에 가기 전에 바로 잡으면 될 일이다.아니면 교학사가 저자의 동의를 얻어 교과서 발행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교과서 곳곳의 오류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위한 역사 흔들기이다. 더 위험한 것은 집필자, 출판사. 보수세력과 보수언론들이 똘똘뭉쳐 자학사관을 극복하고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자고 팔을 걷어붙인 모습이다. 그 위험성을 간파하지 못하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살짝 수정돼 학생들 손에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관이 충돌하고, 일본이 우리의 근대화를 도운 고마운 이웃으로 인식되는 일이 일반화될 수도 있다.

위험한 박근혜 정부의 '역사 흔들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교수(왼쪽)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김충환 전 의원과 함께 "올바른 역사교육이 정립되기 위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져다 달라"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홍보물을 건네주고 있다.
▲ 홍보물 돌리는 '친일·독재미화' 논란 교학사 교과서 저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교수(왼쪽)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김충환 전 의원과 함께 "올바른 역사교육이 정립되기 위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관심을 가져다 달라"며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에게 홍보물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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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출판은 곧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말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교과서 시장 점유율 1위인 야마카와(山川)출판사를 비롯해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과 쇼가쿠칸(小學館)도 역사사전을 이미 출간했습니다. 전교조의 왜곡된 역사교육에 분개해 교사들의 역사 재교육 자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재 좌파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각각 잠식하고 있다. 이 부분을 자각해서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저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전자의 발언은 교학사 양철우 회장의 <월간조선> 8월호 인터뷰 내용이고, 후자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주최한 '근현대역사교실'에 강사로 나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 이명희 교수의 발언 내용이다. 이명희 교수가 무슨 근거로 관련 수치를 내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전교조 왜곡 역사교육 때문에 대사전을 출판했다는 교학사 회장의 말이나 이명희 교수의 말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명희 교수 강의에 대해 "노량진 학원가에 가면 전부 학원 강사가 좌파", "일제 독립운동 진영은 거의 좌파가 선점했다"며 맞장구를 친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근거 없이 좌파를 끌어들이기는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은 '빨갱이 색출'의 전위대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덮고 새로운 권력인 미군정을 등에 업고 활개를 쳤다. 일제 황군은 대한민국의 장군이 되고, 일제 고등계 형사는 대한민국의 치안 담당자가 됐다.  일제자본가는 민족자본가로, 청년들을 대동아 전쟁의 전쟁터로 내몰던 지식인들은 교수가 됐다. 반공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들의 친일 흔적은 죄사함을 받았고,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더 반공과 멸공의 기수를 자처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보수세력의 역사 흔들기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좌파척결의 명분을 끌어들여,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인 친일과 독재를 합리화하려는 것, 그래서 영원히 국민들의 사고를 반공의 올가미에 묶어 놓으려는 속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친일과 민족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반공과 친북의 구도를 만들어 반공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영원한 권력을 누리려는 음모, 이것이 뉴라이트 유영익 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하고, 보수세력이 오류투성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지키려는 이유 아닐까?

뒤로 가는 열차, 끔찍하다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박정희와 김용주. 아버지가 친일 의혹을 받고 있다고 딸과 아들에게 죄를 묻는 건 잘못이다. 그러나 대통령인 박근혜, 정치인인 김무성이 아버지가 친일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친일 내력을 미화하고, 이미 학계에 정립된 역사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고치려고 한다면 이것은 역사 왜곡이고 범죄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유신행 열차를 탄 것 같다고 말한다. 동북아 질서가 우경화 되고 있는 지금, 유신행 열차가 친일파들이 빨갱이 색출을 자처하며, 자신의 죄과에 면죄부를 받고 권력을 형성하던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해지기까지 한다. 뒤로 가는 열차를 되돌릴 수 있는 국민의 힘이 절실하다.


태그:#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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