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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부시와의 전화 통화에서 '함께 골프를 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평소 골프보다는 테니스가 더 좋다던 이 당선인이 부시에게 골프를 하자고 제안한 이유는 뭘까? 미국 대통령의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는 골프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당선인은 부시에게 캠프 데이비드에 가고 싶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대통령의 산장이지만 이미 미국 정상 외교의 요처가 된 지 오래다. 미국은 외국 국가원수 중에서도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그곳에 입장시킨다. 그래서 미국을 원망(願望)하는 타국 지도자라면 한 번 쯤은 그곳에 초청 받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민망하게도 지금의 한국 대통령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을 원망(願望)하는 타국 지도자'에 든다. 그는 후보 시절에도 미국에 가서 일방적으로 부시를 만나려 하기도 했다.

 

부시는 정몽준 대미특사를 통해 골프회동은 사양했지만, 이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해 주었다. 마침내 한국 대통령 이명박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을 환대하는 것일까? 어쩐 일로 미국은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에게는 인색했던 형식적 우대를 베푸는 것일까?

 

작년 12월 부시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전화로 당선을 축하해 준 적이 있다.

 

부시: 그동안 나는 한국의 선거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북한의 의도와 프로그램에 대해 당선인처럼 굳건한 자세를 보이는 동시에 북한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당선인과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장차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공조하고 싶다.

 

이명박: 나도 한미의 전통적인 관계를 존중하며 앞으로 새로운 정부에서는 한미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싶다.… 한미관계를 공고히 맺으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유대를 매우 존중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서 동북아 평화를 지키고 북한 핵을 포기하게 하는 데 협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부시: 취임 후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을 방문해 달라.

이명박: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겠다.

 

통화에서 부시는 이 대통령에게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공조'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이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를 지키고 북한 핵을 포기하게 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여기에서 부시가 요구하고 있는 '공조'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한미정상회담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핵심 이유가 된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비롯한 범 진보단체가 발표한 논평에 따르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한·미·일을 엮는 '범태평양안보협의체'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것은 태평양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에 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조체제이다. 이는 쉽게 말해 아시아의 나토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서둘러 한국에 반환하려 하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안보협의체 구성에 응한다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조만간 세계 최강국이 될 중국과의 관계를 그르치게 될 위험을 떠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할 경우 남북통일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질 것이다.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을 방문하고 온 김병국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은 "(미국)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한미간) 언어와 생각의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면서 "새로운 한미동맹은 단순히 양자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세계질서 확립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결성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말처럼 비친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미국에 도착하여 유달리 '동맹'이라는 용어를 남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이 쓰고 있어 불길하다.

 

당장 불안한 것은 MD와 PSI 참여

 

미국은 한국에 MD(미사일 방어체제)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우면서 한국에 MD 참여를 종용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목적하는 것은 북한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미사일 체제 구축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에서도 폴란드, 체코 등을 이용하여  MD체제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MD체제는 러시아나 중국과 전쟁을 할 경우 장거리용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런 체제에 편입되는 것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를 선제공격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구나 이 일에는 8조 이상의 국민 세금이 쓰여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를 불리는 것 외에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는 일이다.

 

PSI는 북한의 해상봉쇄 또는 선박 검문에 한국군 참여를 허용하게 만드는 조치이다. 그런데 해상봉쇄나 선박 검문은 선전포고에 준하는 행위이므로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다. 이것은 북한 선박과의 해상 무력 충돌을 야기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미국의 PSI 참여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대통령들의 무한한 미국 신뢰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심각성을 모르든지, 아니면 미국을 무한정 신뢰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도 한미 FTA 성사에만 온갖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승만 이래 기독교인 대통령들은 미국을 지나치게 믿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불길해지는 것이다.

 

1919년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1500만 동포의 이름을 무단 사용하여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바가 있다. 이 일 때문에 그는 1925년 임시정부의 대통령에서 탄핵되었다. 해방 후 남한의 대통령이 된 그는 한국전쟁이 나자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안겨버린다. 휴전 후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가져가라고 종용했지만 이승만은 막무가내로 듣지 않았다. 그 결과 남한은 전시작전권을 외국에 맡겨 놓은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된 것이다.

 

김영삼 역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미국에 모든 것을 맡기다시피한 대통령이다. 그러자 미국은 남한을 제쳐두고 북한과 대화하여 경수로 건설을 약속해 주고는 그 비용을 한국 정부에 떠넘긴 바 있다.

 

이것은 남한이 먼저 북한과 대화를 끊고 미국 하고만 의논하는 식의 '통미봉북'을 먼저 하면 결과는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하지 않고 미국과만 소통하는 '통미봉남'으로 되돌아온다는 역설적인 교훈을 주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를 만나 말해야 할 것은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 같은 남북한 소관의 일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의 대통령은 이전에 부시가 약속한 한국전쟁의 '북미종전선언'을 서둘러 달라고 말해야 한다. 1953년 휴전협정이 진행될 때 이승만은 모든 것을 미국에 맡겨버린 나머지 남한은 휴전협정에 서명조차 하지 못한 나라가 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통미봉남' 이전에 '통미봉북'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강화되어야 남북문제도 풀린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북핵 문제도 한미공조로 풀겠다고 한다. 그는 북한과 독자적인 대화를 영영 시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북한은 물론 러시아 중국 등의 관계도 모두 미국과 상의해서 결정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그들은 한국을 제쳐두고 미국 하고만 대화하여 중요 문제를 결정하려 들 것 아닌가? 이는 대북과 통일문제의 주도권은 물론 타국과의 외교주권까지도 침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명박의 외교 정책은 이전에는 없었던 신종이고 변종이다. 그것은 영락없는 종미주의(從美主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승만의 외교노선이었던 '탁미(託美)'가 이명박에 의해 '종미(從美)'로 변종되어 나타난 것 같다. 종북주의가 나쁘듯이 종미주의 역시 당연 나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의회가 요구하는 대로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풀어버렸다. 30개월 월령 제한도 조만간 풀릴 것 같다. 이것은 검역 주권을 포기하는 일이다. 또한 한국은 세계 유일의 광우병 위험 소 수입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 상공회의소 임원들과의 만찬에서 국내 수입이 금지되어 있는 몬타나 산 쇠고기 스테이크로 식사했다. 몬타나 출신 맥스 보커스 미 상원 재무위원장은 이 사실을 사전에 언론에 널리 크게 알려 놓고 있었다. 보커스는 한국이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완전 개방하지 않으면 FTA 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말해오던 사람이다. 아무튼 이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에 휘말린 꼴이기도 하다.

 

정상회담도 하기 전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한국 대통령, 그는 회담이 끝난 후에 무엇을 먹어야 하나? 회담 후에는 이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 국민도 함께 먹어야 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회담 후에 우리 국민이 먹어야 할 것은 필경 미국산 쇠고기보다 더 나쁜 것이 될 것만 같아 불길해진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항일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전작권, #통미봉남, #통미봉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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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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