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섬진강 변을 따라 가는 국도 17호선
 섬진강 변을 따라 가는 국도 17호선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섬진강을 따라서

국도 17호선을 타고 북으로 올라간다. 구례구역 앞을 지나면서 섬진강변을 따라 나란히 달린다. 섬진강은 남으로, 나는 북으로…. 곡성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면 전라북도 남원이다. 국도 17호선은 이제 남원시를 향해 달려가고 나는 그 길을 빠져나와 섬진강변을 타고 계속 올라간다.

오늘 찾아간 산은 남원 문덕산 고리봉(708.9m)이다. 지리산에서 떨어져 흘러내리던 산줄기는 섬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커다란 바위산을 이루고 멈춰 섰다. 섬진강 건너편으로는 곡성 동악산이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마주보고 있다.

남원시 대강면 소재지를 조금 못가 약수정사로 들어선다. 좁은 산길을 따라 들어서자 할머니 한분이 차를 세운다.

"절에 가는 가? 나 좀 태워줘."
"절에 행사가 있으세요?"
"날 받으로 가. 장사를 하려는 디, 요즘은 점쟁이들도 없어서…."

할머니 연세가 지긋하다. 아직도 새로 장사를 시작할 열정(?)이 남았는지,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들어 업종을 바꾸려고 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힘들게 산길을 걸었는지 무척 힘들어 하신다.

약수정사는 고려때 만행사(萬行寺)였는데 1936년에 삼성각만 남아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했다고 한다.
 약수정사는 고려때 만행사(萬行寺)였는데 1936년에 삼성각만 남아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했다고 한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산길은 눈에 쌓이고

가는 중에 등산로 입구 표지가 있었지만 할머니 덕에 약수정사(藥水淨寺)까지 들어섰다. 행자승에게 산길을 물으니 절 뒤로 올라가는 길이 있단다. 절은 대웅전 하나와 요사 몇 채가 있다. 바로 뒤로 돌아서니 계곡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았는가 보다.

산길을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발에 밟힌다. 남쪽에서는 봄비가 내렸는데, 북쪽으로 올라왔다고 여기는 눈이 쌓였다. 오늘 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산길은 점점 하얀 눈들이 많아지고, 애들이 짜증을 낸다.

이런 눈 쌓인 너덜길에서 길을 찾는 건 쉽지가 않다.
 이런 눈 쌓인 너덜길에서 길을 찾는 건 쉽지가 않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요즘 들어서 애들을 놔두고 산에 다녔더니,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산에 따라 간단다. 지들도 몸이 찌뿌드드 한가보다. 하지만 오늘 산길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작은 나무가지들이 부딪치는 좁은 산길은 하얗게 쌓인 눈이 얄밉게 웃고 있는 것 같다.

큰 놈이 무척 짜증이다.

"왜 이따위 산에 데리고 왔냐고요?"
"내가 산이 이럴 줄 어찌 알았겠냐?"

작은 놈은 힘들어지는 지 조용히 물어온다.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얼마나 가야 하는지 미리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왔는가를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니?"

너무나 잘 어울리는 눈과 소나무

계곡 너덜 길은 눈이 덮여 산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등산리본이 있지만 등산리본을 찾아가기까지는 이리저리 헤맬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등산리본이 환경훼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가는 산길이라면 군데군데 달린 등산리본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갈림길에서는 산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아가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

산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들이 하얀 눈을 한 움큼씩 얻고 있다. 소나무 숲길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따스한 햇살을 이기지 못한 눈들은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위에서 하얀 가루를 뿌리는 것 같다. 하얀 눈에 반사되어 더욱 부셔진 햇살은 몽롱하게 만든다.

소나무에 쌓인 눈은 따뜻한 햇볕에 눈내리듯 쏟아져 내린다.
 소나무에 쌓인 눈은 따뜻한 햇볕에 눈내리듯 쏟아져 내린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산길은 올라갈수록 눈을 많아진다.
 산길은 올라갈수록 눈을 많아진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산길을 가파르게 올라가더니 능선에 올라선다. 산길에서 처음 만나는 안내 표지판이다. 고리봉 정상까지 0.4㎞를 알려준다. 시야가 확 터지니 마음도 맑아진다. 능선길을 따라가는 기분이 즐겁다. 애들 기분은 어느새 짜증에서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소나무에 얹힌 눈들을 털어내면서 장난을 즐긴다.

하얀 눈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소나무. 눈과 소나무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럼 소나무 숲에 눈이 내리면, 한 폭의 동양화. 대비가 뚜렷한 풍경이 능선을 타고 이어진다. 환상적인 풍경이다. 눈 덮인 산이 그리웠는데 이산을 보려고 그랬나 보다.

능선에 올라서면서 힘들던 눈길은 즐거운 눈길로 변하고...
 능선에 올라서면서 힘들던 눈길은 즐거운 눈길로 변하고...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눈과 어울린 소나무. 섬진강 건너 동악산이 보인다.
 눈과 어울린 소나무. 섬진강 건너 동악산이 보인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돌아서서

정상에는 안내 표지석과 함께 커다란 묘가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망이 지나친 걸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올라왔던 길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등산객이다. 이산에 우리 말고 찾아온 손님이 또 있었다. 전주에서 오신 나이 많은 아저씨와 아주머니 일행은 우리 발자국을 따라 올라왔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고리는 어디가 있는 겨"하고 묻는다. "그냥 산 이름이 고리봉이여" 같이 온 일행분이 싱겁게 대꾸한다.

고리봉 정상.
 고리봉 정상.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눈이 한 움큼씩 얹고 있는 소나무
 눈이 한 움큼씩 얹고 있는 소나무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내려가는 길은 반대편으로 이어진 암릉을 타기로 하였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다. 미끄러지듯 내려서는데 더는 안 되겠다. 절벽이다. 'ㄷ'자 형태로 바위에 밖아 놓은 보조장비가 설치됐지만, 눈이 덮인 바위를 내려선다는 건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겠다. 설령 내려섰다고 해도 계속 이어지는 암릉을 애들과 함께 이렇게 간다는 건 무모한 산행이다.

"더 이상 안 돼. 다시 올라가."

계획했던 암릉을 타는 건 포기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한 걸로 만족. 작은애는 다음에 다시 오자고 한다. 저 장쾌한 암릉을 꼭 타서 복수한단다. 내려오는 길은 능선길을 따라 눈 장난을 하면서 즐겁게 내려왔다.

아래로 섬진강이 크게 구불거리며 흐른다.
 아래로 섬진강이 크게 구불거리며 흐른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산행 내역 : 약수정사 뒤로 계곡길 따라-(85분)-능선-(25분)-정상에서 다시 돌아 능선길 따라-(50분)-삼거리-(30분)-약수정사/ 총 산행시간 : 3시간 10분(점심시간 제외)
산행은 약수정사 뒤로 계곡을 따라 고리봉으로 올라섰다가 되돌아서 능선길을 따라 약수정사도 내려왔습니다. 처음 계획은 고리봉에서 암릉을 타고 빙 돌아오기로 했는데 눈길에 위험해서 되돌아 왔습니다.
거리는 고리봉에서 능선길 따라 약수정사 까지 2㎞로 표기. 걷다보면 훨씬 멀게 느껴진다.



태그:#고리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