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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될 수도 있고, 하던 거래를 중단할 수도 있다.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아예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 염세적으로 보자면, 상황은 엄청 불안하다. 어떤 아이템이 거래가 될 듯하면, 바로 다른 아이템이 고객사의 사용중단으로 거래가 중지된다. 하나가 되면 다른 하나가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 취급하던 아이템은 이제 명맥만 유지할 뿐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아이템들, 그리고 새로운 거래처들로 분주하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게다가 점점 더 치사해진다. 경쟁 중인 업체들의 거친 태클이나 이른바 '갑'이라고 불리는 고객사들의 횡포, 거래하는 품목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을 부른다.

우리는 왜 불안한가

알랭 드 보통의 위트 넘치는 심리철학서라는 겉표지에 붙은 말처럼 위트와 재기, 서민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책이다.
▲ <불안> 책 표지 알랭 드 보통의 위트 넘치는 심리철학서라는 겉표지에 붙은 말처럼 위트와 재기, 서민들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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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는데 제목이 <불안>이다. 이 책은 불안을 부르는 원인과 불안하지 않으려면 아니 불안한 감정을 최대한 덜 느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대단히 현학적인 방법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23살에 사랑에 관한 철학서라고 불러줘야 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쓴 똑똑한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이다.

저자 보통은 불안한 이유를 확신한다. '비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개인이 다른 개인에 비해 뭔가 열등하다고 느낄 때 혹은 그럴 염려가 있을 때 '불안'은 우리를 서서히 포위한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비교가 가까운 사람이거나 평소에 나와 동등하다고 여기던 사람과 될 때, 그래서 내가 좀 더 열등하다고 느낄 때, 더욱 센 불안감이 작동한다는 거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저자는 불안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나눈다. '무시를 받으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든다'고. 우리가 애기이던 시절 무조건적으로 받던 사랑을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면서 보통은 '사랑결핍'을 불안의 원인으로 먼저 꼽는다.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보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속물근성'이 두 번째, 셋째로 '기대'를 소개한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는 설명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기대와 현실이 동일하지 않다면 새로운 기대는 불안으로 바뀐다.

"물론, 그 사람들은 영리해. 당연히 영리해야지. 그 사람들은 돈이 없거든."이라고 하는 대화내용은 풍자를 통해 돈 가진 자들의 생각을 비꼰다.
▲ 책 속에 소개된 삽화 "물론, 그 사람들은 영리해. 당연히 영리해야지. 그 사람들은 돈이 없거든."이라고 하는 대화내용은 풍자를 통해 돈 가진 자들의 생각을 비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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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제를 무한경쟁의 시장논리에만 맡기는 신자유주의를 제1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능력주의'가 뒤를 잇는다.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대입한 사회진화론이 신자유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우월성을 인정받으면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풍요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세습되던 양반이 3~5%였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평등과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된 현대사회에서 보이고 있는 갈수록 심화·확대되는 경제적 불평등은 조선시대처럼 세습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회를 500년전 신분제 사회의 조선시대보다 낫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책은 '불확실성'을 불안의 다섯 번째 원인으로 소개한다. 내 학창시절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황금열쇠'라는 것을 받아온 적이 있다. 정말 황금으로 만든 열쇠라고 했다. 25년 근속 기념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수여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무슨 전설 같은 얘기다.

1997년 IMF 이후 모든 기업체에서 실시한 구조조정과 함께 찾아온 이른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상당수 정규직에 포함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열패감과 함께 불안감을 안겨주게 된다. 그들에게 황금열쇠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한다. 이래가지고는 사회가 건전할 수 없다. 불안하면 아무것도 온전하게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혼도 안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2세 계획을 하지 않는 악의 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불안의 해법 다섯 가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해법도 제시한다. 여기에서도 다섯 가지의 항목을 제시하는데 그 첫째가 철학이다. 철학적인 사고가 외부의 의견에 반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보는데, '이성'의 규칙에 따른 다면 흔들릴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말이다. '철학은 성공과 실패의 위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재구성할 뿐'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두 번째는 예술이다. 저자의 설명을 보자면, 1860년대 영국에서는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라는 문제가 현안이 되었다고 한다. 결론은 '쓸모가 없다'였다고. 이에 대해 매슈 아널드라는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는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예술의 역사는 지위의 체계에 대한 도전, 풍자나 분노가 서려있기도 하고, 서정적이거나 슬프거나 재미있기도 한 도전으로 가득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소설가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와 닿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인물들을 설명하면서 속물 근성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얘기한다. 세간의 사람들 눈에 씌어져 부와 권력을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소설가는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술 작품에도 위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1648년 루이 14세가 아카데미를 만들 때부터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순(順)으로. 위계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 풍속화가 가장 경멸적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우리 조선시대의 김홍도나 신윤복도 당시에 이런 취급을 받았다면 이 위계는 세계 공통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비극을 통해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 희극을 통해 가진 자들 또는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 해학, 익살, 조롱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암울한 시대라면 이런 작품들은 제재를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명성을 자랑하는 고급스런 건물의 수백년 후의 상상도를 통해 현재의 것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 조지프 갠디, <폐허가 된 잉글랜드 은행 원형 홀>, 1798 명성을 자랑하는 고급스런 건물의 수백년 후의 상상도를 통해 현재의 것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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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세 번째 해법은 정치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진술 즉,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동북공정 등을 대하는 우리나라 일부 역사학자들의 태도가 일본이나 중국의 사관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최근 국사교과서 논쟁이 발생한 것을 보면 정치적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 수 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일부 위정자들이 '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기독교를 네 번째 해법으로 내놓으면서 보통은 '죽음은 지위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던 관심의 덧없음, 나아가 무가치함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100년 뒤면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빠짐없이 한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전도서 1장 2절>에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라고 써놓은 이유다. 이렇듯 불안의 네 번째 해법인 종교적 실천 즉, 사랑, 선, 신실, 겸손, 친절 등의 미덕은 인간에게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종교적인 삶이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다섯 번째로 보헤미안의 삶을 소개한다. '보헤미아의 역사는 품위있는 계급의 약을 올리려는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면서. 보헤미안들에게는 높은 지위나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 놓칠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감수성, 장난기, 창조성, 예술 등이 세속적 성공이라는 거대담론의 희생양이 되기에는 너무 가치롭다는 것이다.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보통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화려했을 당시 여러 멋쟁이들의 모습이 백 년이 지난 지금 공허하다.
▲ 하인츠 영업사원들의 대회 폐회 만찬, 시카고, 1902 화려했을 당시 여러 멋쟁이들의 모습이 백 년이 지난 지금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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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보통이 사업하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무자비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쁜 위스키를 팔거나 밀을 매점하여 원래 값의 세 배로 팔 수 있고, 기만적인 광고를 싣는 멍청한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어 300~400만 파운드를 움켜쥘 수 있다"는 것. 반면 "고귀한 재능을 발휘하거나 인간의 지식이나 복지를 개선하는 데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궁핍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조지 버나드 쇼가 한 말이란다. 그래서 우리나라 재벌들과 위정자들은 노동자들이나 노인들을 위한 복지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덧붙이는 글 | <불안>은 2011년 1판 1쇄를 발행한 후 2013년 10월 7일 1판 12쇄를 발행했다. 그 만큼 우리가 불안하다는 걸까. 작가는 알랭 드 보통, 출판사는 은행나무다.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2011)


태그:#불안, #알랭 드 보통,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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