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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세계>에서 정청을 연기한 황정민

영화 <신세계>에서 정청을 연기한 황정민 ⓒ NEW


'대한민국 넘버원 채널'을 자랑하는 케이블 영화채널 OCN에서 19금 영화 <신세계>를 방영하던 지난 4일, OCN의 공식 트위터 계정(@No1_OCN)에는 이런 글 하나가 올라왔다.

"막간 퀴즈...! 지금 방송 중인 <신세계>는 몇 군데 묵음 처리를 했을까요?"

묵음이란 것은 과한 욕설이나 비속어가 등장했을 때, 방송사에서 소리를 없애는 일종의 자체 편집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 인물의 대사 중 욕설 부분의 짧은 음절만 (지상파나 케이블 예능에서 재미로 '삐' 소리를 첨부하는 것과 다른) 소리 자체를 완전히 소거해버리는 신공이다.

극장 개봉 당시 '19금' 등급을 받았던 <신세계>는 폭력 조직에 잠입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다한 욕설과 살인 등 폭력 장면, 흡연 장면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도 그런 장면이 다수 삽입됐다.

문제는 그런 장면 모두에 가위질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묵음은 물론 블러 처리(화면을 희미하게 처리하는 것)도 예사였고, 칼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는 사운드를 줄였으며, 심지어 원 영화의 화면색까지 어둡게 조정해버리는 편집이 횡행했다. 마치 가위질의 '신세계'를 열었다고 할까.

범죄 영화, 느와르 영화니만큼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던 이런 대사와 장면에서 기존 케이블 영화에서 접할 수 없던 무지막지한 양의 편집이 행해졌다. 2013년 '올해의 영화'로 종종 꼽혔고, 500만 명이 육박하는 관객을 만났으며, 황정민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신세계>에 대한 가위질 테러에 수많은 시청자가 뿔이 난 것은 당연지사다. 

누가 황정민을 벙어리로 만드는가

 <신세계> 방영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OCN 홈페이지

<신세계> 방영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OCN 홈페이지 ⓒ OCN


"안 한 부분 찾는 게 더 쉬울 거 같은데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드네요. 심의라고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임의대로 삭제한 거와 같아 보이네요. 너무 아쉽네요."
"정청 벙어리된거 같아요ㅋㅋㅋ!!!"

이 같은 원성에 OCN 측은 아래와 같은 변명으로 뿔난 시청자를 달랬다.

"<신세계> 많은 대사 묵음과 장면처리에 아쉬운 분들이 많으시죠? (저도 아쉽네요ㅠㅠ) 심의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가위질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할 시청자가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규정' 규칙은 아래와 같다. 

제26조(생명의 존중) ① 방송은 살인, 고문, 사형(私刑), 자살 등 인명을 경시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 된다.

제28조(건전한 생활기풍) 방송은 건전한 시민정신과 생활기풍의 조성에 힘써야 하며, 음란, 퇴폐, 마약, 음주, 흡연, 미신, 사행행위, 허례허식, 사치 및 낭비풍조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제36조(폭력묘사) ① 방송은 과도한 폭력을 다루어서는 아니 되며, 내용 전개상 불가피하게 폭력을 묘사할 때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제38조(범죄 및 약물묘사) ① 방송은 범죄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폭력, 살인, 자살 등이 직접 묘사된 자료화면을 이용할 수 없으며, 관련 범죄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한껏 위축된 표현의 자유가 창작물의 훼손으로 이어질 때

자, 핵심은 이거다. 최근 심의규정이 특별히 강화되지는 않았다. 포괄적인 '방송심의규정'의 최신판은 2008년 6월 제정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규칙 제19호다. 규정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시청자는 지금 너덜너덜하게 훼손된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의 판권이 방송사에 넘어가는 시점에서 심의를 피하기 위한 재량 역시 방송사로 넘어가게 되지만, 예술의 창작이란 측면에서 볼 때 심각한 창작물의 훼손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셈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0년 삼성경제연구소 발표한 한국의 선진화 지표에 따르면, 심지어 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의 '표현의 자유' 순위는 꼴찌 수준인 28위를 기록했다.

극장 상영의 경우, 제한상영가 등급을 유지하고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보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디테일한 특정 장면에 대한 가위질이나 블러(Blur) 처리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청소년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송의 경우는 또 다르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상파에서 퇴출된 흡연 장면이 대표적이 사례다. 그럼에도 <신세계>에 대한 가위질처럼 방송국 자체에서 심의를 의식해 과도한 편집을 가하는 경우는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판권을 가진 제작사에서 항의를 했다는 사례 역시 찾아볼 수 없다. 버젓이 '19금' 마크를 붙여 방영하는 영화에 자행되는 사지절단에 가까운 훼손을 버젓이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같은 가위질은 OCN만의 문제도 아니다. 흡연 장면의 블러 처리를 비롯해 묵음처리 등과 같은 편집은 이미 19금 영화를 방영하는 모든 채널에서 통용되고 있다.

최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내려진 중징계나 종교 채널 등에 대한 유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제제를 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적인 심의는 차치하더라도, 방송사를 짓누르는 보수적인 심의 잣대는 분명 창작물에 대한 훼손과 자기검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세계>의 과도한 편집 테러는 그 단초일 뿐이다.

신세계 OCN 방송통심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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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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