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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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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6일, 아베 일본총리는 취임 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그날은 '후텐마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이외 지역 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나카이마 오키나와 지사가 태도를 바꿔 '헤노코 해안을 매립해 기지를 오키나와 현 내에서 확장조성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나카이마는 며칠 전 스가 관방장관으로부터 앞으로 10년간 매년 3천억 엔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던 터다. 이는 아베의 현찰 공세의 승리이며, 노도와 같은 아베의 우경화 정책 위력이다. 

아베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존숭(尊崇, 높이 받들어 숭배함)을 바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에 대한 경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라고 정당화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한국이나 중국은 즉각 거세게 반발했고, 이례적으로 미국도 강한 톤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야스쿠니가 문제 될 때마다 일본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해왔다. 하지만 이 논리는 허구적이다. 바로 그들이 내세우는 '나라'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가 아니고 명치헌법 하에 유일 주권자인 '천황'을 의미한다는 데에 일본의 '특수성'이 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일련의 침략전쟁을 천황의 이름으로 감행했으며, 일본 젊은이들은 천황을 위해 목숨 바치도록 세뇌되고 강요받았다. 그 천황의 '나라'는 오늘날 국민주권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것인데 마치 같은 개념인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단체 아닌 군사시설 '야스쿠니'

한국과 중국도 '순국 영령에 대한 경배'라는 일본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야스쿠니의 근본은 건드리지 않고 다만 도죠 히데키 등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점을 비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정당화하는 일본군국주의의 성전(聖殿)으로서의 야스쿠니의 존재 자체다.

야스쿠니는 그 존재 자체가 일본 '평화' 헌법에 대한 위반이자, 일본군국주의의 해체를 명한 카이로선언, 포츠담선언,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대한 위배다. 또한 반파시즘 전쟁을 이겨내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만들어진 파시즘에 대한 감시기구이자 억압기구로서의 유엔 창립과 얄타체제라고 일컬어지는 세계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야스쿠니는 신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종교시설이 아니고 군사시설이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천황에게 목숨 바쳐 죽은 병사들을 '군신'으로 경배하게 하고 그 유족들에게 천황이 하사하는 은급을 내리는 물심양면의 보상장치를 만들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는 천황의 신격화와 군국주의 정신의 발원지로서, 일본군병사의 사기 앙양이라는 심리전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일제의 군사시설이었다. 그래서 야스쿠니는 군 예산으로 운영되었고, 육해군 대장이 제사장(宮司)을 맡았다. 누가 야스쿠니의 명단에 등재되어 군신의 신위에 오르는가는 육해군의 전사자 명단에 의거하고 천황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결정됐다.

일본군국주의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 기독교 등 기타 종교에 대한 탄압에 앞장서왔던 야스쿠니는 일제 패망 후에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일본 점령군 총사령부로부터 '독립종교법인'으로 인가를 받아 폐쇄를 모면했다.

그러나 1947년 독립종교법인이 된 후에도 160만 명에 이르는 전사자 명단을 정부 후생성으로부터 넘겨받아 천황이 의식을 거행하여 '군신'을 재생산했다. 공공연히 국가권력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사적인 종교법인이라고 할 수 없다. 군사예산으로 야스쿠니를 운영하던 전쟁 전과 달리 오늘날의 야스쿠니는 헌금이나 회비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야스쿠니를 지탱하는 큰 기둥인 '일본유족회'는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선거의 큰 표밭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압력단체다. 또 유족회 소속의 국회의원들과 아베 총리가 소속되어 있는 '모두 함께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모임'의 회원들은 국회에서 전사자에 대한 보상입법의 제정과 예산확보에 앞장고 있다. 국가의 막대한 예산이 야스쿠니에 환류(흐름이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 흐르는 현상)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천황제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역사인식이다. 오늘날에도 야스쿠니 신사 부속 유슈칸(군사박물관)에서는 명치유신 이후 자행된 갖가지 침략전쟁에서의 노획품이나 승전을 기리는 전시물들을 진열중이다. 방문자에게 옛날과 같이 호전성을 고취하고 천황을 숭배하는 군국주의 교육의 실천장 구실을 하고 있다.

야스쿠니 역사관은 지난 1937년 이후 벌어진 아시아 태평양 침략전쟁을 ABCD(America, British, China, Dutch)의 핍박으로 부득이 일으킨 '불가피한 자위 전쟁'이며, 영미 제국주의에 노예화된 동아시아 여러 민족을 해방시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루고자 하는 '대동아 성전(聖戰)'이었다고 찬양·홍보하고 있다.

아베가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이유

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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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 시기에 참배를 감행한 이유는 A급 전범이던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를 존경하는 소신의 발로라고 한다. 그 이외에도 아베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법, 특정기밀보호법 통과를 강행했으며, 남수단에서 무기수출 3원칙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동 금지에 저촉됨을 알면서 한국군에 대한 탄약 공급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2013년 '아베노믹스'의 효과로 주가가 57% 상승한 데에서 오는 국민적 지지에 고무돼 있다. 올해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의 제정, 즉 실질적인 개헌을 바라보는 지금, 아베는 승리의 절정에서 기고만장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심리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패전 이후 미국의 '속국'으로 보호 받아오면서, 아시아 이웃나라들에 대한 전쟁책임과 보상의 의무를 면제 받으며 '경무장 고도경제성장'으로 번영의 혜택을 누려온 일본은 한편에서는 자주성의 결여에서 오는 굴욕감에 싸여 있으며 사회 저변에서 울분을 폭발시키려는 마그마가 들끓고 있다.

특히 침략전쟁의 피해 당사자인 한국과 중국의 정당한 야스쿠니 비판에 대해서는 부당한 '외압'이라는 비뚤어진 심정이 형성돼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비굴하면서도 동아시아의 '외압'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항하는 것이 명치유신 이래의 '구미숭상, 아시아멸시'의 정신구조에도  맞다. 일부 일본 국민에게 카타르시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평소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자마자 야스쿠니 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2007년에 참배를 강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결과 고이즈미는 굴하지 않는 의연한 정치가로서 대중의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급속한 일본의 군사화와 과거 회귀가 일본사회 전체의 보수화에 힘입어 진행됐다고 하지만, 주로 일본의 국내정치의 역학과 아베의 개인적인 별난 성향 탓에 강행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이번 아베의 행동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했으며, 미국의 언론들도 아베의 '오버'를 경고 내지는 경계하고 있다. 미국은 아베정권의 군사화를 막아주는 구세주로 등장할 것인가?

아미티지 보고서에 담긴 미국의 속내

결론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여 아태지역을 중요시하는 재균형(rebalance) 정책을 채택하여 이 지역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중국에 대한 강력한 대항축으로 구성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구도 속에서 한일 양국군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 구상에 대한 걸림돌이 첫째, 일본의 부전(不戰)·비무장을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평화헌법과 민주 법제이다. 둘째로는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불화이다. 미국은 이 장애를 제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야망을 일정정도 충족시켜주고 한국의 안보욕구(예를 들어 작전통제권 전환문제)도 달래주려고 할 것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국의 통제 범위에서'라는 단서가 붙지만  미국은 점차 그 허용도를 높일 것이다. 일본은 그 틈을 타서 일본 나름의 군사대국화와 '자주권'의 확보를 위해 공간을 넓혀 나가려 들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 일본 사이의 내재적인 갈등이 존재하지만 당분간은 미일 공조에 의한 아태지역에 있어서의 '지속 가능한 패권'을 추구하는 구도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미일의 '지속 가능한 패권' 추구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이 지역의 주체적인 협력구도 구축에 힘써야 한다.         

지난 2012년 8월 15일 "미일동맹-아시아의 안정이 이에 달려 있다"(The U.S.-Japan Alliance: Anchoring Stability in Asia)라는 제목의 제3차 아미티지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2002년 이래 공화당의 아미티지와 민주당의 조지프 나이가 중심이 되어 초당파적으로 5년마다 발표해 온 것으로 미일 양국의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 온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이 보고서를 새삼스럽게 다루는 것은 금년 참의원선거 대승 이후 아베정권의 행보가 교본을 따르듯이 이 보고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우선 '일본이 1류국으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2류국으로 전락할 것인가?' 라는, 일본에게는 자극적이고 도발적일 수 있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중국과 한국 등이 대두됨에 따라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일본이 동아시아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고 미국도 이미 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장기 불황 속에서 2류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거리에 나붙어 있는 일본 자민당의 벽보에는 아베의 큰 사진과 함께 '일본을 되찾자(取り戻そう日本)'는 구호가 적혀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하는 이 구호에서 일본의 초조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일본의 불안감을 부추기면서 미국에 의존케 하고, 미일 동맹이 가장 중요하고 '일본은 아태지역에서의 해양안보상의 전략적인 핵심'이며, 1류국은 경제적인 무게감을 가지면서도 실전 가능한 군사력을 가지고 국제적 현안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군사화를 고무하고 있다.

보고서는 자원, 무역, 경제, 군사, 안보, 외교 등 미일의 현안을 개괄한 다음 일본에 대해 9항목, 미일 양국에 대해 11항목, 미국에 대해 7항목, 도합 27개 항목의 정치, 경제, 군사적인 제언을 하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제언의 맨 앞부분에서 '후쿠시마의 교훈을 살려서 원전 촉진의 리더십을 잡을 것'을 주문하면서 원전 재개를 촉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 원전 재개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아베는 원전 재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는 일본 핵무장론자이기도 하다. 이 제언은 이런 아베의 의향에 영합할 뿐 아니라 미일 원전마피아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언이라 하겠다.

군사 관계의 대일 제언 부분을 좀 더 살펴보면 ▲ (6)일본의 방위 책임범위 확대. 미일 전면 군사협력 ▲(7)호르무즈 해협에 일본 소해정을 파견, 미국과 공동으로 남지나해 감시활동▲(8)일본의 국가비밀의 보호에 관하여 능력의 제고를 들고 있다.

일본의 군사화, 아베의 돌출행동 아닌 미일공조의 산물

미일동맹에 대해서는  ▲(13)미일동맹은 중국의 등장에 대응하는 능력과 정책을 구축▲(15)미국의) '공해전투(Air Sea Battle) 구상'과(일본의)'동적 방위력'의 연계, ▲(17)민간공항의 활용, '도모다치 작전'의 교훈 검증, 수륙 양용작전능력 향상 ▲(18)무기의 공동개발 ▲(19)미국의 확대억지에 관한 신뢰와 능력에 관한 신뢰 구축을 들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25)항에서 미국은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를 호기로 삼아, 일본의 군사산업에게 미국 등 동맹국에게 기술을 이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를 볼 때 제언은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과 공동 군사행동의 강화 및 미군의 기동성 강화라는 세계전략에서 일본의 종군(從軍)을 요구하고 있다. 그에 따르는 일본군의 작전범위확대, 일본의 군사기밀보호 강화, 무기수출 3원칙의 무효화와 무기개발 미일 협조 등 미국이 일본의 군사화를 적극 지지하여 후원하는 그림이다. 일본의 군사화, 과거회귀는 아베의 돌출행동이라기 보다는 미일공조 속에서 용의주도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항목 (17)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에 즈음하여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전개된 '도모다치 작전'이 당시 일각에서 문제 제기된 대로 핵전쟁 상황에서 북한 상륙을 상정한 실전연습을 겸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제1항의 원전 폭발을 원전 개발과 수출의 호기로 삼으라는 제언과 마찬가지로 남의 불행을 탐욕스럽게 이윤과 군사패권 추구의 호기로 삼으려는 미국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라는 군사안보 상의 요구를 내세워 한일 간의 역사인식의 대립 해소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한일간의 갈등을 강제로 중재할 자세까지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제언 (4)에서는 '(한미일)동맹이 충분히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하고 있는 역사문제에 대면해야 한다. 일본은 장기적 전략적 시야에서 양국의 결합을 검토해야 하며 쓸데없는 정치망언을 삼가야 할 것이다. (한미일)삼각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일 양국은 계류 중인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과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을 체결하여 삼각군사협력을 지속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12)항에서 "한미일은 '역사문제'에 대한 비공식협의를 촉진하고 미국이 중재하겠다"고 했으며,(23)항에서 "미국은 한일 간의 역사문제에 입장 표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긴장완화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양국의 핵심적인 안보이익에 주목해야 한다"고 미국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미국이 이토록 공을 들이려 한 것은 역사의 정의나 인권, 또는 과거청산의 원칙에 충실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확립과 원활한 가능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보고서의 의도는 중국의 대두와 미국의 추락이라는 현실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국의 세계패권(sustainable global hegemony)'을  확보하기 위해 아태지역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의 확립과 그 동맹군을 미군 지휘 하에 두어 세계를 무대로 일사불란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한일간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초 바이든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본과의 협력 화해를 요구했고 일본에 가서는 한국과의 화해를 주문했다. 이것은 비단 바이든 부통령만이 아니고 작년 이래 미국의 대통령 이하 고관들이 일관되게 취해 온 태도다.

그런데 그때마다 한국 정계와 언론은 미국이 한국의 편을 들어준다 안 들어 준다 하며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으로 가관이다. 미국은 냉철하게 자기의 국익을 따라 한일 양국을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것인데 말이다. 아마도 미국은 앞으로 더욱더 강력하게 한일간의 역사인식 갈등에 끼어들려 할 것이다.

곧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징용자 배상소송의 대법 확정판결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기업의 강제연행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불씨를 끄려고 일본에게 일정정도 자제를 요구할 것이다. 역사인식문제는 애매하게 덮어두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한일협정 과오 박정희, 박근혜는 다를까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을 때 한국정부가 끝까지 올바른 역사인식 고수를 주장하며 버틸 수 있을까. 한국정부는 처음에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반대한다고 하다가도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행사(경우에 따라서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까지도 상정하는)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지 않았는가?

1962년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호출했다.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사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인증을 받는 대신에 월남파병 및 한일 국교정상화 추진 등에 대해 미국의 의향에 따를 것을 약속했다.

그 결과 한일협정은 역사인식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무상 3억불, 유상 2억불이라는 돈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 책임을 면죄해줌으로써 오늘날의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문제의 화근을 남겼다.

중국의 태동이라는 '위협'에 직면한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본격가동 구도는 한일 양국을 군사적인 하위체계에 편성하려는 것이다. 1960년대에 월남전 수행을 위해 한일협정을 강행했던 당시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아버지가 범한 과오를 딸이 또다시 재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과연 기우일까.

이런 위험한 국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첫째 아베의 돌출행동이 미국의 이익과 상반되는 일본군국주의 부활의 꿈을 내재하면서도 아마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패권 유지 구도 속에서 연출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로 미국은 강력한 한미일 군사동맹 중국에 대한 억지력으로 동원하려 할 것이다. 셋째로 이를 위하여 (미국은) 한일간의 역사인식의 갈등을 강제 봉합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자칫하면 제2의 한일협정 체결이라는 과오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러한 미국의 구상은 첫째 일정하게 일본의 군사화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둘째 일본과의 역사인식문제의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셋째 중국과의 대립 구도 속에 끌려 들어갈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넷째 남북관계의 대립과 긴장을 더욱더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겨레의 이익에 배치된다.

따라서 그 어느 때 보다 한국은 자주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또한, 아태지역에서 미일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다양한 비정부 민간단체와의 공동대응을 도모하고 운신의 폭을 넓혀야한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언제 어떻게 역사인식 입장을 바꾸고 일본의 군사화에 동조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시하고 저지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재일동포 3세로 태어난 서승 리츠메이칸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이던 지난 1971년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재일교포 학생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 동안 비전향정치범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서 교수는 옥중 생활에서 힘없는 개인이 역사의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됐고 출소 뒤에는 국가에 의한 폭력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태그:#일본 재무장, #평화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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