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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외면하는 현 상황에 대한 풍자그림입니다. 한 친구는 저에게 '아무도 모르게 잡혀갈지도 몰라'라며 겁을 줍니다.
▲ 박틀러 이 작품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외면하는 현 상황에 대한 풍자그림입니다. 한 친구는 저에게 '아무도 모르게 잡혀갈지도 몰라'라며 겁을 줍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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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 geht es Ihnen?"

"안녕하냐"는 독일어 표현입니다. 마치 공식처럼 독일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묻는 말이지요. 언젠가부터 저는 이 평범한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리게 됩니다.

한국과 약 8558km이나 떨어져 있는 독일에서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고국 친구들의 외침이 들리는데 어떻게 모르쇠 할 수 있을까요? 외국에 나가서까지 뭘 그리 신경 쓰냐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서 내 아비, 어미 같은 분들이 못 살겠다 울부짖는데 어떻게 '안녕' 할 수 있을까요?

어느 추운 겨울날, 독일에서 재현된 맞불 집회

한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사퇴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죠? 독일에서도 그랬습니다. 2013년 12월 20일 꽤 추웠던 베를린의 겨울, 이제는 평화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부정당선 1년, 박근혜 사퇴촉구 전 해외동포 동시 촛불시위'가 열렸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교민들도 많이 모였고 독일 금속노조와 세계산업노동자의 대표자 분들도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손에는 수줍게 만든 플래카드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확성기, 베를린 특유의 거센 바람에 자꾸 꺼지는 어설픈 촛불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처음 보는 서로를 반가워했고, 고마워했고,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촛불을 들던 곳 한쪽에선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어르신들이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비를 갖추고 이른바 '맞불집회'라는 것을 준비하시더군요. 한 어르신은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넌지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학생으로 보이는데, 공부는 안 하고 왜 이런데 오는 거야?"
"그러게요. 공부할 것이 산더미예요. 한국정부는 왜 외국에 있는 국민들에게까지 촛불을 들게 만드는 걸까요?"

이런 대답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사실 낯선 이국 땅에서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 덜덜 떨면서 시위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말이 다르고, 공기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타국 땅에서는 그저 살아가는 것도 벅찬 일이니까요.

그렇게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반대편에서 맞불집회를 하던 어르신들의 계속되는 시비에 지켜보던 독일 경찰이 제지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더군요. 그나마 우리는 다행히 폭행사건 없이 독일경찰의 보호 속에 시위를 잘 마쳤습니다.

다시 만나지 말자는 약속, 못지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비판하기 위해 처음 모였던 지난해 여름이 생각납니다. 쭈뼛쭈뼛 모인 교민들은 서툰 솜씨로 만든 시국선언문을 함께 읽었지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5시간 걸려 기차를 타고 왔다는 부부,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온 가족과 키우는 애완견까지 데리고 나온 어머니, 시위는 생전 처음 참여해본다는 수줍은 여학생, 박정희 시대 때 입국금지를 당한 후 지금껏 독일에서 살고 계시다는 할아버지 등,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었습니다. 마치 2008년에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한자리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쳤던 광경의 축소판 같았지요. 지금 한국의 촛불시위도 그런가요?

그 날의 집회가 끝난 후, 한 학생과 저는 다시는 이러한 문제로 베를린에서 만나지 말자는 우스갯소리를 나누고 헤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뀐 지난 겨울 같은 자리에서 그 학생을 다시 만나고 말았습니다.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른 뒤에도 국정원 사태에 대한 별다른 진전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그러하지 않나요?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잖아요.

네 나라의 상식은 왜 그러니?

정말 요즘은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지만은 않더군요. 얼마 전 일입니다. 한 독일 친구가 한국 국정원과 관련한 기사를 봤다고 자세한 내막을 물어왔습니다. 제가 설명해주자, 그 독일 친구는 '워터게이트사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한동안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사건'과 '이석기의원 구속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북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이야기가 맞느냐'고 몇 번을 저에게 물어봤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는 독일 민족민주당(NPD, 흔히 나치정당이라 불리는 극우정당)과 비교하며 각종 매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지요? 그 친구는 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독일 민족민주당처럼, 그 정당 관계자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니? 민족민주당이 치욕적인 독일역사인 '나치'를 떠올리게 하듯,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은 '친일'이나 '극우'를 떠올리게 하니? 아니면 병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그 친구가 이런 질문도 던집니다.

"네 나라의 상식은 왜 그러니?"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쭈삣 서는 듯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 친구의 질문에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요?

조심해, 잡혀갈지도 몰라!

그렇습니다. 독일과 한국의 상식은 너무 다르더군요. 노조의 파업만 봐도 그렇습니다. 독일 금속노조는 30년 전인 1984년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파업을 벌였고, 파업 6주만에 정부와의 협상에 성공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이나 파업이 승리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우리 나라와는 참 다르지요. 지금도 제가 떠나오기 전에 보았던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눈물이 생각납니다.

독일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OUT'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 넣었습니다. 그것을 본 한 친구는 놀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조심해! 너 이런 거 그리면 베를린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갈지도 몰라! 아니면 입국금지를 당할 수도 있어."

그뿐만이 아닙니다. 베를린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국정원이 정보추적을 했을 거라는 유언비어, 집회 참여자에게 누군가 녹음기를 가지고 접근했을 거라든가, 누군가 은밀하게 시위참여자 사진을 찍고 갔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공포'가, 서로에 대한 '의심'이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함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국 땅에 있다보니 '잘 살고 있니?'라는 안부 인사를 자주 듣습니다. 뭐가 잘 사는 것일까요?

지금 같은 현실에서 '잘 사는 법'은 '안녕하냐'는 물음에 '안녕하지 못하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 아닐까요? 내 집이 따뜻해도, 이 겨울에 거리로 박차고 나가 촛불을 들고, 내 밥그릇이 두둑해도 하루 아침에 밥그릇 빼앗긴 해고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안녕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안녕하지 못한 우리, 2014년에는 정말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이곳 베를린에서 잘 살아보려 하는 사람들의 소식, 간간이 전하겠습니다.

Auf wiedersehn! (또 다시 만나요!)

덧붙이는 글 | 권은비 기자는 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보편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있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독일 사회의 다양한 문화, 역사, 정치와 한국을 비교하며 대안적인 공공미술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태그:#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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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다,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연구하였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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