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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신용카드 미사용자 중 과거 연체 경험자들의 대출용도 <우> 부채발생 원인에 대한 심층조사 결과 분포도
 <좌> 신용카드 미사용자 중 과거 연체 경험자들의 대출용도 <우> 부채발생 원인에 대한 심층조사 결과 분포도
ⓒ 토닥토닥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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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부터 9월까지 서울에 거주하는 35세 미만 미혼자 807명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빚이 있는 청년들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연체된 카드 결제금도 빚으로 간주했다. 그중 36명에 대해서는 심층조사를, 12명에 대해서는 더 긴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년층의 관계금융 토닥토닥협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 등의 단체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 청년일자리허브센터에서 청년부채의 실상을 밝히는 발표회를 개최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했다. 대체로 불가피한 상황에서 빚을 안게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학자금 대출이 부채로 이어지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생활비와 주거비 용도의 대출이 그 뒤를 이었다. 36명의 심층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부채가 발생한 사유를 보면 교육이 39%, 가족문제가 17%, 생활비 부족과 창업이 11%와 8%의 비율로 나타났다. 학자금 마련 또는 집안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빚을 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이는 '빚이라는 딱지'가 붙은 청년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지나치게 냉정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이날 부채조사 결과발표회에 참석한 임영채씨는 수천 만 원대의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다. 그는 심층조사 인터뷰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역시나 학자금 대출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소득에서 대출 원리금이 꼬박꼬박 나가는 상황에서 생활비 부족으로 신용카드 리볼빙(카드값 중 일정비율만 결제하면 잔여결제대금의 상환을 연장할 수 있는 서비스)에 의지했다. 결국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안 먹고 안 쓰고 사람들 만나지 않고, 지출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겠더라고요.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에는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힘들어요. 고립감도 깊어지고요. 마흔 살에 빚을 털어내는 것을 목표로 혼자서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의지할 수 있는 안전망 같은 것이 절실합니다. 제1금융권 은행이 개인 신용에서 학자금 대출 부분만 제외해줬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청년층 노리는 대출 광고, 건전한 재무교육이 시급하다

지난 1월 10일 청년부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발표회가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에서 개최됐다. 토닥토닥협동조합(y.bank1030@hanmail.net / 02-332-5084)으로 요청하면 결과보고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지난 1월 10일 청년부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발표회가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에서 개최됐다. 토닥토닥협동조합(y.bank1030@hanmail.net / 02-332-5084)으로 요청하면 결과보고서를 제공받을 수 있다.
ⓒ 장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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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심층조사를 진행했던 전영훈(법률사무소 'ASK' 과장)씨 또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대출을 받고 부채를 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무지의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건전한 재무교육이 시급한 이유다. 하지만 서민을 위한 금융제도는 턱없이 부족하고, 마땅한 금융제도가 있어도 채무자들에게는 정보를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층조사를 진행하기 전에 저 또한 채무자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학자금 대출이나 질병, 사고 등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인데, 나도 비슷하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닥치면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건전한 재무교육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저축은행이나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리거나, 얼마 안 되는 소득을 보험금 납부에 쏟아 부어서는 위험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대출 광고의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끔 택시도 타야 한다거나, 젊고 세련된 여성 직원을 등장시켜 대부업체랑 카드사랑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대출을 가볍게 여기도록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출 광고의 범람 역시 심각한 개인부채, 가계부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단호한 법적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기 워크아웃, 빠른 재기로 사회적 비용 줄여야

청년들을 대상으로 '토닥토닥협동조합'은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부채를 줄여가기 위한 가계부 소모임도 계속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토닥토닥협동조합'은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부채를 줄여가기 위한 가계부 소모임도 계속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 장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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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을 맡은 금융정의연대 최계연 사무국장 또한 재무교육, 금용복지 상담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학자금 대출에서 시작된 빚이 고금리 대출로 확장되지 않게 하려면 사전상담 지원과 채무자 우호적인 채무조정 상담이 필요하다 설명이었다. 금융권의 과도한 신용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신용카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경제생활을 건전화하며, 상환 불능 상태에서 받는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교육이 여러 현장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계연 사무국장이 청년부채 악성화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소득 수준에 맞는 원리금 면책과 6개월 단기로 완료되는 워크아웃 프로그램'이었다. 워크아웃이란 파산, 회생 절차와 다르게 권리제한을 받지 않는 사전채무조정제도를 뜻한다. 이는 빚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빠르게 빚의 사슬로부터 구제함으로써 건강한 시민, 납세자로 사회에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기존의 워크아웃 프로그램은 최장 10년으로 청년의 경우 채무노예화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삶의 기반을 갖춰나갈 시기인데 적은 소득으로 오랜 기간 빚을 갚다보면 절망적인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고요. 청년들로 하여금 빠르게 채무로부터 벗어나게끔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볼 때도 비용이 덜 드는 방법입니다. 의욕적으로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건강한 납세자로 살 수 있게 해야지 계속 부채의 늪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부채, 가계부채는 청년층뿐 아니라 전국가적인 문제로 비화된 지 오래다. 회생 신청자의 60%가 중산층이고 서울에서는 하루 평균 500명이 채무상담을 받고 있다고 한다. 빚을 조장하는 금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탱해갈 청년들에게도 마땅한 관심을 기울이며 사회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태그:#청년의 대안, #청년부채, #실태조사, #토닥토닥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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