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일거리로 놀러 다녀도 힘이 들어 보이는 구부정한 몸으로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폐지(혹은 무가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흔한 모습이 됐다. 내 생각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노인들의 모습은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흔해진 것 같다. 이는 삶의 마지막을 힘들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외롭게 그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왜 점점 더 많아지는 걸까? 이런 노인들을 위해 우리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현실은 노인들만의 문제에 불과할까? 지난해 12월 27일에 나온 <황혼이 서러워라>(오월의 봄 펴냄)는 우리 사회 빈곤층 노인들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다.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았으면..."

평생을 가난과 싸운 농촌 노인들은 자식을 떠나 보낸 후 혼자가 된다. 이들에게 남은 건 늙고 병든 몸이다.
 평생을 가난과 싸운 농촌 노인들은 자식을 떠나 보낸 후 혼자가 된다. 이들에게 남은 건 늙고 병든 몸이다.
ⓒ 박다영

관련사진보기


"내가 행복할 때가 어딨노. 만날 일만 하고 사는데.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다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중략)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몸 불편하게 사느니 죽는 게 편치. 그래서 죽으러 준비까지 다 했지. 농약도 찾아 놓고…."

단 5cc만 마셔도 2주 이내에 90%가 사망한다는 강력제초제. 하지만 막상 그걸 손에 든 순간 자식들 얼굴이 아른거렸다고 한다. 부모가 자살하면 자식의 앞길도 순탄치 않다는 얘기도 떠올랐다. 덜컥 겁이 났다. 혹여 자식·손자들에게까지 불행이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농약을 치웠다. 그 후 딸이 지어다 준 한약 등의 덕으로 절룩거리면서라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됐지만 그에게 여생의 의미는 크지 않다. 잠들 때마다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이 크다.(<황혼길 서러워라> 중에서)

이 책은 첫 번째 주제로 아픈 몸으로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농촌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처음 등장한 이는 경북 영주에 사는 이영숙(84)씨. 36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평생 소작농으로 4남매를 키워낸 이씨에게 남은 것은 아픈 몸과 혼자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움이었다.

쪽파를 까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몸을 계속 주무르면서 간신히 해낼 정도로 그의 아픔은 컸다. 가난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여자 혼자 자식들을 키워내다 보니 제대로 공부를 시키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다들 변변치 못한 삶을 산다. 그러니 자식들의 도움을 청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처지에 놓인 이씨가 매일 꿈 꾸는 것은 '제발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지 말고 그대로 죽는 것'이란다. 그만큼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씨와 같은 고통은 평생 소작농으로 살아왔거나 혼자 사는 노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마다 농사도 짓고, 부부가 해로하는 노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확의 기쁨이 사라진 지 오래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빚만 느는 현실이라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아 버리고 소작농으로 품팔이를 하며 사는 노인들이 많다.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된 데는 그동안 정부가 농산물시장개방 등 농업을 희생 시키는 경제정책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의 이런 정책은 농촌을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만들었다. 지난 20년간 도시근로자 소들이 6.1배 증가한 데 비해 농가소득은 3.8배 증가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시장소득 기준 농촌의 절대 빈곤율(한 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 비율)은 39%로, 도시 근로자 가구(2인 이상) 절대 빈곤율 4.4%의 약 9배에 달했다. 농촌 가구 중에도 이렇다 할 소득원이 없는 노인 가구는 거의 대다수가 빈곤층이라 볼 수 있다.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농촌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은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201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81.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특히 농촌 노인 자살률은 도시의 두 배 정도로 높다. 농촌 비율이 높은 충남의 경우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123.2명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1위다. 반면 젊은 인구가 많은 대도시, 서울과 울산의 자살률은 각각 65.1명과 64.3명으로 비교적 낮았다.
- <황혼길 서러워라> 중에서

노인문제,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을 만든 곳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든 온라인 신문인 <단비뉴스>다. <단비뉴스>는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 빈곤층 노인들의 문제를 알리고자 특별 취재팀을 구성해 <단비뉴스>, <오마이뉴스> 등에 기획기사를 냈다. 이 기사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지도교수인 제정임이 엮어낸 것.

단비뉴스 취재팀에 의하면, '농촌 노인들 중에는 정부가 매달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이 거의 생활비의 전부'인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단독가구 기준 월 지급되는 9만6800원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다.

단비뉴스 취재팀이 농촌의 노인 문제를 위해 취재한 경북 영주 이산면 운문 1리 주민은 209명,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52명인데 이 중 90% 이상이 뚜렷한 수입원이 없이 노령연금에 의지해 산다. 이런 노인들에게 병원은 너무나 멀고, 한 달 5만 원 정도(한 사례자의 경우)나 되는 약값은 너무 버겁기만 하다. 그러니 자살하는 농촌 노인들이 늘 수밖에 없다.

"울컥했다. 회한이 밀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다."(시골의사 박경철)

책의 앞표지 위쪽에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의 말이 적혀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에 앞서 무심코 읽은 이 말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내 심정이 되고, 나의 간절한 바람이 됐다.

전쟁을 겪었고, 배고픈 세월들을 견뎌내며 오늘날의 일꾼들을 키워내느라 평생 고생한, 평생 죽으라고 일했음에도 밥벌이의 고통과 병든 몸의 고통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는 노인들의 지금이 어찌 농촌 노인들만의 현실일 수 있을까.

치매·노동·육아·고독사 등에 노출된 노인들

<황혼길 서러워라>는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농촌 노인들의 현실을 시작으로 치매와 같은 중병으로 요양원 등에서 지내는 노인들, 노동에서 헤어나지 못한 노인들, 황혼 육아에 병들어 가는 노인들, 고독사의 위험과 함께 살아가는 노인들, 밥벌이로 성을 파는 노인들과 성을 사는 노인들의 안타깝고 아프며 아린 현실들을 여섯 장에 걸쳐 들려준다.

어떻게 해야 이 땅의 독거노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때로는 밥 한 끼가, 때로는 전기장판이, 때로는 현금이, 때로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공감해 줄수 있는 독자라면 잠깐 슬퍼하기보다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수많은 독거노인들이 가난과 외로움, 병마에 시달리면서 '죽는 순간에도 혼자가 아닐까' 두려워 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부끄럽고 죄스럽게 느껴야 할 일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분들을 돌볼 것인가. 이제 본격적인 토론과 실천을 시작했으면 좋겠다.(<황혼길 서러워라> 어떤 취재후기 중에서)

매 주제마다 관련 통계나 자료, 외국의 대안 사례 등을 녹였고, 취재 후기도 덧붙여놨다. 무엇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문제를 취재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이 책을 읽었다. 어쩌면 본인과 상관없을 것이라고 지나치기 쉬운 노인문제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관심을 두고, 대안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늙어갈 당신이 읽어야 할 책 <황혼길 서러워라>

<황혼길 서러워라> 표지
 <황혼길 서러워라> 표지
ⓒ 오월의 봄

관련사진보기

어떤 기자는 고백한다. 내가 왜 하필 노인문제 팀에 합류했는지 후회를 했노라고. 그리고 또 어떤 기자는 이제까지 노인과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만남 자체부터 두려웠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농촌 노인들을 취재한 한 기자는 왜 하필 농촌 노인을 선택했는지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초조해졌노라고 고백한다.

후회나 두려움 그리고 초조함이나 막막함으로 노인들을 취재한 <단비뉴스> 기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노인을 위해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훗날 우리의 문제가 될지 모르는 노인 문제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것.

몇 년 전 한 요양원 봉사 팀에 합류한 적이 있었다. 또한 몇 년 사이 책이나 르포집을 통해 거리를 헤매고, 쪽방에서 쪽잠을 자며 구차한 밥벌이를 하면서 불안에 노출된 노인들의 사정을 접할 수 있었다(관련 책 : <길에서 만난 세상>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벼랑에 선 사람들> 등).

이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무가지 한 장이나 박스 하나에 연연해 하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요양원에서 내가 만났던 무표정한 노인들의 얼굴이, 여러 책을 통해 접한 노인들의 현실이 떠오르곤 했다. 이런 까닭에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써보고 싶은 책의 주제가 바로 노인 문제곤 했다. 그래서 책 <황혼길 서러워라>의 출간이 반갑다. 게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은 20대들에게 의해 취재돼 책으로 만들어져 반가움이 배가된다.

'누군가의 자식인 우리들, 언젠가는 늙어갈 우리들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로 이 책을 권하면 너무 평범할까.

덧붙이는 글 | <황혼길 서러워라>|제정임 (엮은이) | 오월의봄 | 2013-12-27 |12,500원



황혼길 서러워라 - 단비뉴스의 대한민국 노인보고서

제정임 엮음, 오월의봄(2013)


태그:#노인, #황혼, #르뽀, #빈곤층 노인, #단비뉴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