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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민주당과의 합의 없이 12일 새벽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려다가 국회법 위반 시비가 붙자 뒤늦게 이 같은 방침을 철회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좌절됐지만 여당이 현 정부의 국정 드라이브를 '수의 힘'으로 뒷받침하려고 한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앞으로 국회에서의 여야 대치가 심화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높아졌다.

 

추경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밤새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4조8654억원에서 5977억원을 삭감한 4조2677억원을 11일 자정 무렵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와 전체회의에서 잇달아 통과시킨 것이 발단이 됐다.


[예결특위] 한나라당, 민주당 퇴장한 가운데 추경안 처리 강행

 

민주당이 전액삭감을 요구했던 한국전력공사 및 가스공사 보조금(1조2550억원)과 자원개발 예산(1조1천억원) 등 2조3550억원 중 5510억원 삭감한 1조8040억원이 통과됐고, 민간영아기본보조금과 화물차 통행료 감면 등 민생 예산 항목은 일부 증액됐다.

 

한나라당 소속 이한구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은 민주당의 불참 속에 추경안이 통과된 점을 의식한 듯 "이번 추경안은 거의 전원 의원이 합의한 내용이지만, 민주당 쪽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것이 옥에 티"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 위원장이 특위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키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단상 밑으로 다가가 이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서울대 65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박정희 정권 당시 재무부에서 나란히 근무한 인연이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처음부터 추경안 처리에 협조할 뜻이 없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의 제안에 대해 본예산을 심의할 때 충분히 감안해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민주당을 끝까지 참여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예결특위 간사를 맡은 이사철 의원도 "민주당이 추경안 처리시한(11일 자정)을 3시간 밖에 남겨놓지 않은 밤 9시에 갑자기 추경안의 60%에 달하는 2조 9000원짜리 증액안을 내놓았다"며 "민주당이 갑자기 대규모 증액안을 제시한 것은 추경안 처리를 방해하기 위한 고의적인 시간끌기 술수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추경안에 합의하기 직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저녁 10시 30분경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는 정부예산으로 공기업을 보조하는 방식의 가격관리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해 놓고는 한 시간도 안 돼 일방적으로 추경안 처리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친박연대 의원들이 본회의 의결 정족수(150명)가 채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다.

 

이한구 위원장은 예결특위 전체 의원 50명 가운데 의결 정족수를 간신히 넘는 26명이 참석한 것을 확인한 뒤 추경안을 통과시켰는데, 한나라당 의원 간의 대리 참석이 추경안이 의결된 뒤에야 이뤄졌음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전체회의에 불참한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은 같은 당 박준선 의원이 자신의 권한을 대행할 수 있도록 사보임을 국회 의사과에 요청했는데, 사보임 처리가 예결특위가 끝난 후에 이뤄졌으므로 추경안 통과는 무효가 된 셈이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국회법을 어기고 추경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지적하자 한나라당은 예결위 전체회의를 다시 소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위원장이 이미 산회를 선포했기 때문에 같은 날 회의를 재소집할 수 없다는 국회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

 

 

[본회의] 예결특위 통과 '무효' 논란...국회의장도 '직권상정' 거부

 

사태가 이렇게 되자 추경안 처리에 협조적이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까지 절차상 하자가 있었음을 지적하며 "본회의에 처리하려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이라도 해서 추석 전에 추경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의장이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없이 추경안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사태는 여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추경안 처리가 무산되자 본회의장에 남아있던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의원 160여명은 새벽 4시경 해산했다.

 

한나라당이 기대했던 추경안 처리는 마지막 순간에 물거품이 됐지만, 밤새 벌어진 공방전은 향후 정기국회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추석이 끝난 후 예결특위 심의 절차를 다시 밟는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이 "정기국회 운영에 협조할 수 없다"고 강경 모드로 들어선 상황에서 양당이 감정의 골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야 각 정당 지도부는 12일 내부회의를 각각 소집해 이번 사태의 해법을 찾기로 했지만, 현재의 분위기로는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태그:#추경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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