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간인 극기훈련캠프 1일 군인 사격 모습.
 민간인 극기훈련캠프 1일 군인 사격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011년 3월 11일 오후 3시 46분께였습니다. 군에 입대한 지 갓 70일을 넘긴 육군 이등병이 자대에서 첫 사격훈련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한 발, 한 발, 사격통제관으로부터 사격 지시를 받은 군인들의 총구에서 일제히 화염이 치솟았습니다. 당시 22세였던 손형주 이병 역시 사격훈련을 하던 사병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서른 번째 사격이 끝나고 이어 서른한 발째 사격이 이뤄지던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땅에 엎드려 사격 중이던 손형주 이병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누가 말릴 틈도 없었던 그때, 한 발의 총성이 허공을 갈랐습니다. 손형주 이병. 그가 서른한 발째 방아쇠를 당긴 곳은 표적지가 아닌 자신의 이마였습니다. 충격을 던진 손형주 이병 사망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그 가슴 아픈 진실을 고발합니다.

국제고 수재였던 손 이병은 왜 이마에 총을 쐈을까

2013년 12월 말이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김광진 의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고 손형주 이병의 어머니였습니다.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는 제가 "어쩐 일이시냐"고 묻자 진한 눈물이 담긴 어머니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보좌관님. 너무 답답해서 전화했어요. 제 아들 형주가 군에서 죽은 지 올해로 3년째인데 또 그냥 지나가서요. 육군본부가 형주 순직 여부에 대해 올해는 꼭 심사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아무 연락이 없으니 너무 고통스러워요. 왜 이렇게 약속을 어기는지…. 좀 도와주세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1년 1월 3일, 그해 새해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아들 손형주씨가 입대했습니다. 형주씨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자랑이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아들은 학창시절 내내 1, 2등을 놓치지 않았고 부산 국제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해 2학년을 마친 후 의무복무를 마치고자 입대를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손형주 이병에게는 매우 심각한 신체적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손 이병 사망 후 진행된 군 헌병대 조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먼저 눈에 띈 문제는 손 이병의 과체중이었습니다. 손 이병은 키 174cm에 몸무게가 103kg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손 이병의 신체적 조건을 대하는 군 당국의 방식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손 이병의 과체중을 줄인다며 취한 조치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손 이병은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동적인 활동보다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정적인 분위기에 더 익숙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군은 대상자의 신체적 조건에 맞는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인 체중 감량을 시도한 게 아니라 손 이병에게 '무작정 매일 뛰도록' 지시했습니다. 매일 6km씩 달리도록 했고, 이어 팔굽혀 펴기를 하라고 강제했습니다. 다른 일반 군인처럼 3km만 달려도 힘들 수밖에 없는 손 이병에게 지휘관은 오히려 살을 더 빨리 빼라며 그 두 배를 뛰라고 한 것입니다.

의도야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당사자인 손 이병에게 이 모든 과정은 '극심한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 이병이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확인하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는 손 이병 사망 후 동료 군인들이 군 헌병대에 써준 진술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손형주 이병은 군대에 들어와서 기초적인 근력이라든지 지구력이 다른 일반 사람들에 비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운동을 하면 항상 뒤처지곤 해서 점호 시간이나 체력 단련시간에 남들 다하는 팔굽혀 펴기도 잘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것인데 손형주 이병의 경우 무척 힘들어 하는 것을 봤습니다."

입대 3개월 만에 20kg 체중 감량... 그건 가혹행위

손 이병은 입대 후 14일 만에 몸무게가 13kg이나 급격히 빠졌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감량입니다.
 손 이병은 입대 후 14일 만에 몸무게가 13kg이나 급격히 빠졌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감량입니다.
ⓒ sxc

관련사진보기

군 헌병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손 이병이 입대한 날로부터 사망 전일까지 복무한 시간은 총 3개월 6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손 이병의 몸무게는 20kg 감량됐습니다.

특히 입대 후 14일 만에 몸무게가 13kg이나 급격히 빠졌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수 없는 감량입니다. 군 헌병대 조사 결과에서도 이같은 몸무게 감량은 정상적인 다이어트 결과가 아니라 사실상의 '가혹행위'였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가혹행위 외에도 손 이병이 목숨을 끊게 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격 훈련이었습니다. 손 이병에게 있어 사격은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었습니다. 손 이병의 시력이 사격 표적지 자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빴기 때문입니다.

손 이병이 사망한 후 군 헌병대는 사격장에서 부서진 안경알을 수거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안경점에 가서 측정한 결과 손 이병의 좌·우측 시력 모두 교정 전 0.1 미만의 근시와 난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실제로 손 이병 사망 후 발견된 사격훈련 수첩에는 '250m (표적지) 안 보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군부대 측은 손 이병에게 '사격 성적이 좋지 않다'며 '사격 저조자'로 선정, 이에 따른 얼차려 등을 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실은 손 이병이 신병교육을 받은 부대의 소대장이 <병영생활 기록>에 써놓은 내용에 담겨 있었습니다. 손 이병의 사격 성적이 저조했던 이유가 나쁜 시력 때문만 아니라 손 이병의 수전증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즉, 군 당국은 표적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격 시 손이 떨리는 수전증을 가진 손 이병에게 현역병 입대 조치를 했고, 이후 사격 성적이 좋지 않다며 이를 이유로 매번 얼차려 등의 조치를 해왔던 것입니다.

결국 손 이병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신의 이마를 향해 서른한 발째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혹자들은 '그 정도 이유로 왜 죽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손 이병 입장에서는 자신이 겪는 모든 일들은 너무나 끔찍한 악몽이었을 것입니다.

군 입대 전까지 손 이병은 그 누구에게도 '바보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자랑스러운 존재였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한결같은 기대만 받았던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 입대후 손 이병은 '바보'가 됐습니다. 흔한 말로 '고문관' 취급을 받으며 매일 얼차려나 받는 한심한 존재로 모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눈이 나쁜데도, 손이 떨리는 증세가 있는데도, 대한민국 병무청은 손 이병에게 현역 3급을 판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방부는 입대한 손 이병에게 '뚱뚱하니 살을 빼라'며 매일 뛰라고 했고 팔굽혀 펴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먹으면 살이 잘 안 빠진다'며 배식량도 조절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달리기 양을 두 배로 늘렸습니다. 손 이병이 매일 허기짐을 느끼는 데도 말입니다.

손 이병 사망 후 유족들은 군 헌병대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사망한 손 이병의 팔·다리에서 크고 작은 적자색 상처가 많이 발견됐습니다. 유족들은 이것이 가혹행위에 의한 상처인지를 조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군대에서 흔히 가해지는 '조인트 걷어차기'(워커발로 정강이 걷어차기) 상처가 아니냐는 의혹이었습니다. 그러자 군은 사실이 아니라며 상처가 난 이유를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군의 그 해명이 유족의 가슴을 또다시 찢어놨습니다.

군 헌병대는 조사 결과 손 이병의 몸에 난 상처는 얼차려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사격을 못해 '사격 저조자'로 선정된 손 이병에게 지휘관이 얼차려를 줬는데 이 과정에서 체중이 많이 나가는 손 이병의 몸이 연병장에 튀어나온 돌 등에 부딪히면서 발생한 상처라는 것이었습니다. 군 헌병대 말처럼 과연 그렇게 부딪혔다고 해서 정말 그런 상처가 심하게 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헌병대의 해명만으로도 어머니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빠졌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맞힌단 말입니까. 이걸 못한다고 그 겨울에 입술이 부르트도록 달리게 하고 밥도 조금밖에 안 줬다고 합니다. 얼마나 '엎드려 뻗쳐'를 시켰으면 아이 몸이 그렇게 상처투성이랍니까.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저 역시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왜 그래야 했습니까. 이게 정말 자살입니까.

"넌 사격하지 마"... 지휘관의 모멸과 조롱

"그날 OO중대장이 형주한테 '넌 (자대배치 후) 사격해본 적 없으니 대충 쏴 버려'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하고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사격이 끝난 후 OO중대장이 형주에게 '너는 더 이상 사격하지 마라'며 놀리듯 얘기했었습니다."(손 이병 사망후 동료 사병이 쓴 헌병대 진술서 일부)

손 이병이 죽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바보' '고문관'으로 취급하는 지휘관의 모멸과 조롱 끝에 손 이병은 선택해서는 안 될 비극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군 헌병대가 유족에게 회신한 '민원 재조사 결과'에서도 이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군 헌병대는 "소속 부대 지휘관들이 고인의 신체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체력 단련을 요구하고, 비정상적인 사격 훈련과 내무 생활의 관리 소홀 등으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됐다"고 하면서 손 이병에 대해 "정신과적 분석 결과에서도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와 사격 저조자로 선정되는 등으로 인한 심한 자괴감"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손 이병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게 되며 저는 뜬금 없지만 '돌'을 떠올렸습니다. 하다 못해 저 하찮은 길가의 돌조차도 제각각 자기 특성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돌은 계단 대리석으로, 어떤 돌은 담장을 쌓거나 마당에 까는 자갈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군인은 '돌'보다도 못한 듯합니다. 뚱뚱하든 말랐든, 시력이 좋든 안 좋든, 수전증이 있든 말든 사격 훈련을 해야 하고, 못하면 얼차려와 망신을 주며, '고문관' 또는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지난해 뇌종양을 앓던 신성민 상병의 사망 역시 그랬습니다. 군은 두통약이나 주며 꾀병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신 상병이 결국 사망하자 "군 입대 전부터 가지고 있던 병으로 신 상병이 죽었는데 왜 우리에게 책임을 따지냐"며 내심 억울해 했습니다.

군의 이런 태도를 너무 많이 보게 됩니다. "당신들이 나약하게 키워 남들 다하는 군 복무를 못 견디고 스스로 죽은 것인데, 왜 잘못도 없는 우리 군에게 그 책임을 묻느냐"며 오히려 당당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군인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한해 평균 27만 명씩 입대하는 '군인'일 뿐입니다.

너무 심한 표현 아니냐고요? 그러면 묻겠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사병이 사망할 경우 그 시신을 담당하는 부서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장의과? 영령과? 모두 아닙니다. 다름 아닌 '군수참모부 물자과'입니다. 부모가 억울한 아들의 죽음에 항의하고자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그 아들의 시신을 육군이 관리하게 되는데, 군은 그 시신을 물자로 취급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에게 적어도 '이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해군이나 공군처럼 육군 역시 최소한 '인사과'가 사망한 군인의 시신을 관리하거나 아니면 예우에 맞게 '영현 관리과' 등을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이런 군대 인권, 정말 끔찍합니다.

손형주 이병 순직 처리 여부, 2월 12일 결정

어머니의 전화를 통해 기막힌 사연을 알게 된 뒤 바로 군 당국에 항의했습니다. 군 헌병대 조사에서도 여러 억울한 사실이 확인됐는데, 왜 이처럼 순직 처리 여부에 대한 심사가 미뤄지느냐며 따졌습니다. 2011년 3월에 사망했으니 벌써 내달이면 만 3년이 다 돼가는 이 일을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유족들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이는 또 다른 고문입니다.

지난 2월 초, 마침내 군 관계 부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오는 12일 손형주 이병에 대한 순직 여부 심사가 잡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손 이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기뻐했을까요. 아닙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순직 여부 심사 예정일을 듣자 어머니의 음성은 떨리고 불안해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 3년 만에 잡힌 순직 여부 심사에서 손 이병의 죽음에 대해 군 당국이 자살이라며 '순직 기각' 결정을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손형주 이병과 같은 억울한 군인의 죽음은 사실 너무나 많습니다. 매년 150여 명의 군인이 사망하는데, 2012년 기준으로 보면 그중 97명의 군인이 자살로 처리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죽음에 대해 육군 심사 기준은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손형주 이병처럼 견딜 수 없는 가혹한 조건에서 절망으로 무너지면 육군은 자살이라며 기각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해군이나 공군은 순직 범위를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하지만 육군은 매우 강경한 입장입니다.

그래서 많이 불안합니다. 기도해주십시오. 손형주 이병의 억울한 죽음이 짓밟히지 않도록 함께해주십시오.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군인의 죽음일지 모르겠으나 손 이병의 어머니에게는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국가가 그런 아들의 명예조차 책임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한 일입니다. 그 아들을 살려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못했다면 그 아들의 명예라도 보장해줘야 정당한 것 아닐까요.

국가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손 이병에게 죽음보다 더 한 좌절감과 절망을 안겨줬고 끝내 자신의 이마를 향해 서른한 발째 방아쇠를 당기는 모진 마음을 갖게 한 국가의 관리 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공부 잘하고 착했던 내 아들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느냐"며 매일 밤 고통으로 울부짖는 어머니에게 국가가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좌절된 젊은 넋을 품어줘야 합니다.

고 손형주 이병의 넋을 추모하며, 12일 예정된 심사에서 부디 그의 죽음이 '순직'으로 결정되기를 염원합니다. 함께해주십시오.


태그:#군 사망사고, #육군
댓글3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