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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뉴스생산문화와 21세기 뉴스생산문화

<김학수기자는 서강대학교 교수이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뉴스란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을 가리킨다. 그 위험이 크면 클수록 그리고 긴급하면 긴급할수록 소위 "핫뉴스"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스미디어는 바로 그런 위험들을 팔아서 생존을 영위하는 조직이라 하겠다.

20세기의 뉴스생산문화와 21세기의 것이 다른 점은 그런 공동체의 위험을 판단하는 과정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예컨대, 20세기에는 출입처, 기자실, 편집국 등과 같은 "집단별" 케이터키이핑(gatekeeping)과정이 존재하였다.

즉, 어떤 위험이 공동체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판정받기 위해서는 출입처조직의 판단, 기자실의 판단, 그리고 편집국의 판단이라는 단계별 및 집단별 판결과정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20세기의 뉴스는 아무리 특종이라 하더라도 이들 집단들의 생산물이지 결코 어떤 한 개인의 산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집단별, 단계별 뉴스생산과정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위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그 단계들을 거쳐가는 과정에 사라지는 "잠재적" 공동체 위험들도 또한 많았다. 케이터케이핑은 바로 그런 사라지게 만드는 가능성 때문에 강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반면에 21세기 뉴스생산문화는 모든 개인이 공동체의 위험을 판결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그런 만큼 집단별, 단계별 검증과정이 생략된다. 누구나 뉴스거리로 생각되는 것을 인터넷에 올릴 수 있고, 그것은 바로 소비자들에 의해 공동체의 위험인지 아닌지를 판정받는다.

이런 21세기 뉴스생산양식은 두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개인적 걱정거리(individual concern)가 공동체적 어젠다(collective agenda)의 잠재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엄격한 판정을 받기 전에 공론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공동체의 위험들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가감없이 공중에게 쉽게 노출되고, 그런 만큼 공동체로 하여금 그 위험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대비하게끔 만들어준다고 하겠다. 이것은 공동체의 생존력을 과거보다 훨씬 더 강화시켜주는 매우 긍정적인 요인이다.

21세기 뉴스생산양식의 또다른 특징은 개인적 걱정거리가 공동체적 어젠다로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적 어젠다는 공중에게 중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의 영향력(consequentiality)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혹 위험 자체와 관계없이 부수적인 조건들(예, 유명세)에 의해 개인적 걱정거리가 공동체적 어젠다로 오도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공사(公私)의 구분이 없어지고,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21세기 뉴스생산문화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단점의 발생 소지와 대처방안에 대한 21세기 저널리즘 점검이 긴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야 "오마이뉴스"의 미래도 보다 밝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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