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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손해배상 소송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대응하기 위해 사측이 청구하는 손배 규모가 1천억 원을 넘어섰다. 파업 손배소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일상이 돼버렸다.

법원에서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만을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손배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도 손배소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사측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전국의 대표적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파헤쳐본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법률과 판례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수십 억대 손배소가 가능한 원인을 찾아본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이라는 기획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측, 법률사무소 등을 통해 입수한 통계자료, 판결, 소송서류, 관련논문 등을 분석하여 파업 손배소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고,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한다고 확정 판결을 내린 가운데, 이날 오후 사내하청 노동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고,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한다고 확정 판결을 내린 가운데, 이날 오후 사내하청 노동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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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억 지급하라, 20억 지급하라…. 할 말이 없네요. 평생 벌어도 못 만질 돈이잖아요. 회사라고 우리가 갚을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런데도 법원은 회사가 청구한 금액을 다 받아준 건데, 한마디로 살인적인 판결이에요."

천의봉(32·현대차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씨는 2010년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 파업 손배소 판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파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남긴 상처는 컸다. 아니 가혹했다.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면서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차는 외면했다.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약 25일간 파업을 벌였다. 기다렸다는 듯 형사처벌, 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손배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법원은 이렇게 판결했다. 

"피고들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장을 점거하여 가동을 중단하게 함으로써…불법쟁의행위로 인하여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2010년 대법원 판결 뒤 '정규직 전환' 요구했지만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22일, 판결 하나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현대차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한 최병승씨가 부당해고를 다투면서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현대차가 컨테이너벨트에서 일을 하는 최씨에게 작업지시를 직접 하는 등 근로자파견을 받아 2년 이상 사용하였으므로 현대차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직접고용간주' 규정(2007년 7월 폐지되었으나 그 이전에는 유효)을 적용한 것이다.  

이 판결이 나오자 최씨와 같은 처지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기본급 인상 ▲입사일 기준 미지급 임금 지급 등을 내걸고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거절했다. 대법원 판결은 한 개인에 대한 사건일 뿐이고, 비정규직은 교섭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차는 되레 직접고용간주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노조는 쟁의로 맞섰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노조)는 울산공장을 비롯하여 아산, 전주에서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며 그해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공장점거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약 1600명은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까지 냈지만 재판은 3년 넘게 1심이 진행 중이다.

그 사이 상처는 커져갔다. 파업 참가자들은 해고 등 징계를 당했고, 벌금과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뿐 아니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와 변호사들의 협조를 얻고, 판결문과 사건기록 등을 전수조사하여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벌어진 손배사건을 파헤쳐봤다. 

2010년 울산공장 파업으로 사측 200억 원대 청구


2010년 현대차 울산공장 파업과 관련, 비정규노조와 조합원들이 당한 손배사건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7건이다(<표 1> 참고).

이 중 6건은 2010년 파업 직후 사측이 제기했고 나머지 1건은 2013년 추가로 낸 소송이다. 사측 청구액을 모두 합하면 총액 202억 5000만 원에 이른다. 소송을 당한 '피고'도 비정규노조 외 522명(중복된 사람 포함)이나 되었다.

울산지법에서 심리한 5건은 이미 1심 판결이 내려졌다. 2013년 10월 20억 원 배상 판결을 시작으로, 올해 2월 현재까지 판결에서 인정된 배상액은 115억 원을 넘어섰다. 피고가 105명이니 단순하게 계산하더라도 1명당 평균 1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물론 이중에는 수십 억 원대 배상판결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조합원 등 323명을 상대로 제기한 70억 원 소송과 47명을 피고로 한 11억 원짜리 소송도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25일 파업의 후폭풍은 아직도 거세다.

2010년 이후 현대차 손배소 파악해보니...

범위를 좀 더 넓혀보자. 2010년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이뤄진 파업 등 노조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소송까지 파악해 보았다(<표 2> 참고).

2010년 6건, 2012년 7건, 2013년 8건이 있었다. 2011년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691명을 상대로 총 21건의 소송에 걸려있는 청구액의 합계는 약 230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사건들은 대부분 정규직 전환 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며 2013년 희망버스 관련 손배소송(청구액 2억 원)도 있었다. 사건들은 모두 1심 또는 2심이 진행 중이다. 

울산공장 외에도 아산공장과 전주공장에서도 손배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대차는 아산사내하청지회 333명(중복된 사람 포함)을 상대로 10건 총 16억 6000여만 원, 전주비정규직지회 130명을 상대로 2건 합계 약 25억 원의 손배청구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이 소송들도 2010년 공장점거에 따른 손해배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까지 더해보면 2010년 이후 현대차가 제기한 손배 청구액만 272억여 원에 이르는 셈이다. 게다가 확인되지 않은 사건과 사측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청구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손배사건수와 청구액이 증가했다는 지적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 활동가들이 투입돼 사업장 돌며 투쟁하는 규모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회사로서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그만큼 손배가 늘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소 당하는 인원이 많은 이유에 대해선 "불법파업에 가담했던 인원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누군 (소송을) 걸고 누군 안 걸면서 차등 주면 또 문제 된다"고 덧붙였다.

"90억", "20억"...수십 억대 배상 판결 나오는 까닭

지난해부터 울산지법은 비정규노조와 조합원 등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20억 원, 12월 90억 원 배상판결이다. 거액의 손해배상이 속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주된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합법적인 파업의 요건이 너무 엄격하고, 둘째 손해배상 산정방식이 노동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단일사건으로 최고 배상액을 기록한 90억 원 판결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이 사건은 노조가 25일 336시간동안 1공장 자동차 문짝 탈부착 생산라인(CTS)을 점거한 데 따른 손해를 따지는 소송이다. 법원은 가담 정도에 따라 17명에게는 90억 원, 5명에게는 6억~43억 원을 회사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우선 파업이 정당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조합원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단체교섭을 거부한 회사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파업을 벌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울산지법 5민사부 재판장 김원수 부장판사)는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현행 판례상 합법파업이 되기 위해선 ▲단체교섭의 주체가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 정당한 목적으로 ▲법에 따른 시기와 절차에 따라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정당한 방법을 따라야 한다. 이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조합원들은 사내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로서 현대차에 2년 이상 파견근무했다면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돼 현대차에 대한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높아보인다"면서도 "조합원들이 위력으로 공장을 점거하고 가동을 중단시켰고, 이는 현대차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거나 폭력의 행사로 나아간 것으로 반사회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쟁의행위를 주도한 노조 간부들과 노조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손해액 산정은 어떻게 했을까. 재판부는 1993년 대법원 판례(93다24735)에 따라 불법휴무에 따른 손해액을 계산했다. 현대차가 ▲조업중단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판매로 얻을 수 있는 매출이익을 얻지 못한 손해와 ▲고정비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중 고정비란 조업중단의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을 말한다. 판례에 따르면 "제품이 생산되었다면 그후 판매되어 당해 업체가 이로 인한 매출이익을 얻고 또 그 생산에 지출된 고정비용을 매출원가의 일부로 회수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고 되어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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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를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불법 파업으로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조업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회사는 물건을 생산해서 판매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매출 이익을 얻고 고정비를 회수했을 것이다. 따라서 매출이익에 해당하는 금액과 파업기간동안 지출된 고정비는 불업파업을 벌인 노조 때문에 발생한 손해이다.'

이 판례에 대해 '공장이 정상 가동되어 제품을 생산했다고 해서 반드시 이익이 남는다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질 수 있겠다. 하지만 판례는 "장기간에 걸쳐 당해 제품이 판매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어서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은 소송을 당한 쪽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법원 "공장가동 정지된 시간만큼 고정비 손해 배상해야"

재판부는 "현대차는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회사와 노조 및 그 조합원들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손해의 절반은 사측에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노조가 절반만 부담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절반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점이다.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액은 고정비 371억 원(336시간)과 생산자재와 장비 손실 3억 원 등 약 374억 원이다. 시간당 1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 중 50%는 187억 원이다. 사측이 고정비 중 일부인 90억 원만을 청구했기 때문에 그나마 배상액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10월 20억 원 배상판결에서도 법원은 거의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 후에도 2013년부터 생산라인 중단을 이유로 노조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이 속출했다. 노조가 아닌 노조원이 개별적으로 생산라인을 중단시킨 책임을 묻는 판결(배상액 1억 원)도 있었다.

결국 자동차 등 제조업체에서 쟁의행위를 하면, 합법파업이 되지 않는 한 공장가동이 정지된 시간만큼 지출된 고정비를 노조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대화 거부 등 잘못이 인정되어 손해액의 일부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더라도 노조나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 된다. 고정비로 인정되는 액수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제조업체에서 고정비 전부를 손해로 인정한 건 1993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라며 "그 당시는 생산부서에 다른 부서가 종속되어 있을 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서 파업과 무관한 고정비는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일부 판결에서는 기술개발비, 연구소 직원, 관리직 인건비 등도 고정비로 포함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측, 해고자복직 손배가압류 철회로 진정성 보여야"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손배소 1심 패소판결에 항소를 제기하기 위해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만 수천만 원에 이른다. 사진은 노조가 만든 모금운동 포스터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손배소 1심 패소판결에 항소를 제기하기 위해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만 수천만 원에 이른다. 사진은 노조가 만든 모금운동 포스터
ⓒ 현대차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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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고통은 심각하다. 수십 억 원대 배상액을 갚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부는 유체동산, 채권 가압류를 당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1심 패소판결에 항소를 제기하기 위해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만 수천만 원에 이른다.

천의봉 부장은 "지금까지 6400만 원 정도 지급했고, 앞으로 7000만 원 정도 더 들어갈 것 같다"며 "조합원들이 울산공장에서 직접 양말 팔기에 나서고 특별결의로 돈을 모았고, 민주노총과 사회·시민단체의 지원으로 버텨가고 있다"고 말했다. 천 부장은 "해고자복직, 손배가압류 철회 등 노조 요구안 수용이 사측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늠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 공장 비정규노동자들에겐 정규직 전환 못지않게 수백억 원대 손배소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도 관건이 되었다.


태그:#손배소,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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