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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지만, 밀양은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오늘도 움막에서 비닐 한 장으로 긴 밤을 지낼 할매·할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과연,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만의 문제일까요? 전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3% 정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들이 밀양 등의 송전탑이나 가스관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어떻게 하면 그 부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와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획 <송전탑 없앨 수 있다>를 통해, 에너지 자립의 대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시민들의 재생가능에너지 설치 붐은 보다 조직적으로 발전했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2000년 재생가능에너지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주로 시민운동 단체나 지역의 운동가들이 시민들에게 대안에너지를 보여주기 위해 태양광발전기나 풍력발전기를 설치했었는데요.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전체의 35%가 개인

독일 프라이부루크의 플러스에너지 주택단지.
 독일 프라이부루크의 플러스에너지 주택단지.
ⓒ 염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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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가능에너지법이 제정된 2000년 이후에는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시설에 경제성이 담보되면서 전국적인 재생가능에너지 설치 바람이 불었습니다. 메르켈 총리 집권 후 재생가능에너지 전기 가격이 조정되면서 그 바람이 꺼질 것 같았습니다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정부와 시민 모두가 독일이 직면한 에너지 위기의 가장 좋은 해법이 재생가능에너지임을 확인하고 확대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화력,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공급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독일에서는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독일의 에너지전환 과정은 좀 독특합니다. 잘 살펴보면, 정부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 현재 독일에 설치된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총 76GW의 소유 구조를 분석한 독일 통계청의 데이터를 살펴보면(아래 그림 참조), 개인이 설치한 것이 전체의 35%, 회사 소유 14%, 프로젝트 14%, 펀드나 은행 소유 13%, 농민 소유 1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대형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인 독일의 4대 에너지 대기업은 고작 5%의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2012년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소유구조. 개인 35%, 회사 14%, 프로젝트 14%, 펀드/은행 13%, 농부 11%, 중소 에너지 공급회사 7%, 4대 에너지 대기업 5%, 기타 1%.
 2012년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소유구조. 개인 35%, 회사 14%, 프로젝트 14%, 펀드/은행 13%, 농부 11%, 중소 에너지 공급회사 7%, 4대 에너지 대기업 5%, 기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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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특히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2011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에너지조합을 결성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독일에는 2012년 말 현재 754개의 에너지조합이 허가 관청에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아래 그림 참조). 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이며 조직적인 힘을 바탕으로 2011년 11월에는 독일에서 100만 번째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었으며, 독일에서 소비되는 전체 전기의 4분의 1이 재생가능에너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990년 이후 독일의 에너지조합 등록 건수. 연간 등록 에너지 조합, 단위 개수
 1990년 이후 독일의 에너지조합 등록 건수. 연간 등록 에너지 조합, 단위 개수
ⓒ 염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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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를 가능게하는 법

재생가능에너지법을 빼고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야기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법은 세계에너지기구에서도 인정한 가장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정책입니다.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기술은 기존의 석탄 화력, 원자력보다 전기를 생산하는데 돈이 더 들었습니다(현재에는 태양광 발전만이 기존의 에너지에 비해 비쌉니다만 이 또한 조만간 역전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기에 재생가능에너지 전기는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각 재생가능에너지 기술별 전기 요금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태양광발전기나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고, 그래서 재생가능에너지가 널리 보급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2002년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법을 따라서 '발전차액지원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했습니다. 강원도 대관령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나 부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는 모두 이 제도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도와 독일법에는 결정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을 어떻게 나누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직결되지 못하도록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일부를 떼어내 재생에너지 확대에 할애했고(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보급이 예산 범위 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모든 부담을 전 국민이 고루 나누기로 했습니다. 소위 '공동 부담의 원칙'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가 확대될수록 독일 국민들은 그만큼 인상된 전기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 독일 정부 여당에서 옥신각신하는 것은 이 재생가능에너지 전기요금 수준을 낮추자는 데 따른 것입니다. 독일 재생가능에너지법은 기술개발 속도에 맞추어 정해진 기간마다 각각의 재생가능에너지 전기요금을 다시 책정토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령 지금은 태양광 발전기 가격이 100원이어서 전기요금을 1원으로 책정했지만, 2년 후 태양광 산업이 발전해 발전기 가격이 80원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태양광 전기요금을 2년 전 가격인 1원 그대로 받는다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사람은 떼돈을 벌겠지만, '공동 부담의 원칙'에 따라 결국은 독일 국민들이 이 부담을 나눠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거죠. 태양광 산업의 엄청난 발전으로 인해 태양광발전기 가격이 법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떨어진 것입니다. 또 후쿠시마 이후 독일 국민들이 엄청난 규모의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기도 했고요. 2010년 이후로 원전 10기 이상에 해당하는 15GW가 설치되었습니다.

독일의 전국적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로 kWh당 추가되는 전기요금이 2011년에는 3.53센트였으나, 2012년 3.59센트, 2013년 5.28센트 그리고 올 해에는 6.24센트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이는 현재 독일 전기가격 단가인 kWh당 약 29센트(1유로=100센트, 약 450원)의 21.7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독일 정부는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에 약간의 속도조절을 위해 법에서 정한 재생가능에너지 기술별 전기요금을 조정하려고 나섰는데요. 결코 재생가능에너지를 포기하거나 원자력발전 폐쇄를 번복하기 위함이 아님에도 하루라도 빨리 핵발전 폐쇄를 원하는 독일 시민단체들은 '가속이 붙은 에너지전환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며 정부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는 3월 22일 킬, 포츠담, 하노버, 뒤셀도르프 등 7개 주의 중심도시에서 에너지전환을 위한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가 계속 늘어나는 한국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 연구로 박사과정 공부 중인 저는 에너지 문제에 있어 독일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한국 뉴스를 계속 접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위기가 기회'라며 다른 선진국이 포기하는 사양 산업인 핵발전에 집중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박근혜 대통령 또한 지난 1월 14일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며 지난 정부의 핵 발전 확대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와중에 밀양에서는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두 어르신이 자신의 숨을 끊었을 뿐 아니라, 매서운 추운 겨울 날씨에 할매 할배들이 공권력에 맞서 힘에 부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일 농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독일 농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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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두가 에너지에 중독된 우리 삶의 모습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의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은 한국이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보릿고개를 겪으면서도,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아끼고 아껴서 마련한 풍요인 것이지요. 고작 3%의 에너지만이 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지금, 우리는 우리보다 두 배 잘 사는 독일보다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고 있습니다(2010년 1인당 전기소비 독일 7217kWh, 한국 9851kWh).

더 심각한 것은, 독일은 어떻게든 에너지소비를 줄여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만 소비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매년 2.5% 전기소비가 증가할 것을 가정해서 에너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독일은 쓰나미나 지진이 없음에도 보다 안전한 탈핵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반해,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가 전해주는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콧방귀를 뀌듯 늘어나는 전력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 확대에 열을 올리는 것이겠지요.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하여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의 값싼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될 수도 없거니와 계속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전력 부채가 95조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국민들과 기업에게 원가보다 싼 값으로 전기를 제공해서 빚어진 사태입니다.

그런데도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과 우리 정부는 전기요금 현실화를 선택하는 대신, 소외된 시골 마을에 핵발전소를 짓고, 힘없고 가난한 할매 할배들 사는 마을에 돈 몇 푼 쥐어주고 고압 송전탑 설치하는 것을 에너지 정책이라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력 소비를 조장하다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에 비례한 더 큰 충격이 따라올 뿐입니다. 살림살이에 어울리지 않는 과소비로 빚더미에 앉듯이, 정부의 예산 규모 이상으로 과도한 지출을 하다 국가 재정 모라토리움 사태를 맞듯이, 에너지원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다가는 뒤늦게 후회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에너지원 또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다보니, 과도한 에너지 수입은 경제 문제로 이어집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수출 효자종목이라 얘기하는 반도체, 자동차, 선박 수출 총액(172조 원)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흥청망청 사용하는 에너지를 수입(185조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에너지를 소비하다가는 핵발전소가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된다고 하더라도 국부 유출에 따른 경제난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간단한 산수만으로도 예견할 수 있습니다.

2009년 독일 환경부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파고에서 독일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재생가능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 분야 산업 덕분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2000년 재생가능에너지법이 사민당-녹색당 연정에 의해 통과될 때, 당시 야당이었던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은 이 법이 '통제적이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며 환경보호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현재의 독일 정부는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이 만들어내는 좋은 일자리와 내수 시장 확대 그리고 교토의정서 의무 감축분을 초과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 효과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 여전히 이 재생가능에너지법을 독일 에너지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독일 배우기 열풍이 한창인 우리 한국이 보다 지속가능한 경제,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 그리고 촌로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그런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유심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에너지 과소비와 핵발전 확대로 시작된 우리의 '에너지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말이지요.


태그:#독일 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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