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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언덕 입구
 십자가언덕 입구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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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십자가언덕'은 매년 수 만 명이 찾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다. 작은 언덕에 크고 작은 십자가가 촘촘히 박혀있는 이곳은 몇 해 전 이문열이 펴낸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도입부에 등장하는 등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주요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인접국가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이곳은 리투아니아 여행을 마치거나 아니면 시작하는 장소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은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준다. 더불어 많은 이들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것과 이름처럼 주변에 십자가가 널려있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다.

이곳에 십자가가 많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어떤 사람이 이곳에 십자가를 세운 후 지병이 완쾌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과거 러시아 차르의 딸 중 한 명이 이곳에 새운 십자가 덕분에 병을 고쳤다는 말도 전해진다. 여러 설 중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건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리투아니아에는 원래 십자가가 많았다는 점이다. 여행객들의 안전과 거리, 방향을 표시하는 데 쓰인 우리나라의 장승의 역할을 리투아니아에선 십자가가 수행해왔다.

밤엔 세우고, 낮엔 철거하고...'십자가 전쟁'

십자가언덕에 자리 잡은 석조 및 철재 십자가들. 이런 십자가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고즈넉한 분위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불만이 높다.
 십자가언덕에 자리 잡은 석조 및 철재 십자가들. 이런 십자가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고즈넉한 분위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불만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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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기독교화 된 리투아니아는 십자가를 단순한 기독교적 상징만으로 보지 않았다. 십자가를 유럽 다른 지역에선 잊힌 고대 상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삼아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다. 유네스코는 이를 높이 평가해 리투아니아 전통십자가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현재까지 연구된 것에 따르면, 14세기 기독교화 이전까지 십자가언덕은 이 지역을 수호하기 위한 요새로 여겨지며 소규모의 거주지역이 형성됐으나, 독일기사단의 침범으로 허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십자가언덕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종교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종교가 금지되었던 옛 소련 시절 십자가언덕은 리투아니아 민족정신의 상징인 가톨릭 신앙과 소련의 전제정치가 맞서 싸우는 장소로 변했다.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선 밤낮으로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지만 모두 막을 순 없었다. 결국 밤에는 몰래 십자가를 세우고 낮엔 철거하는 일명 '십자가 전쟁'이 이어졌다.

리투아니아 독립 직후인 1993년, 로마 교황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소련 시절 독립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십자가언덕은 종교적 힘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압제의 권력과 투쟁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개인에게 뜻 깊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곳에 십자가를 세워 기념하곤 한다. 이에 따라 해마다 십자가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기대 꺾는 십자가 언덕의 모습

십자가언덕에 자리 잡은 석조 및 철재 십자가들. 이런 십자가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고즈넉한 분위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불만이 높다.
 십자가언덕에 자리 잡은 석조 및 철재 십자가들. 이런 십자가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고즈넉한 분위가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불만이 높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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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십자가 숫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게 가장 큰 문제. 관리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주렁주렁 매달린 작은 십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십자가들도 많다. 특히 대부분 나무십자가여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면 몇 년 못 가 심하게 썩어버린다. 거미줄과 함께 곳곳에 쓰레기처럼 쌓여있는 십자가들은 부푼 기대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기대를 꺾기에 충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뜻 깊은 기념일을 영원히 간직해 보려는 사람들이 쉽게 썩는 나무 대신 돌이나 철로 된 십자가를 세우는 일도 많아졌는데, 이로 인해 '공동묘지' 같다고 푸념하는 관광객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커다란 십자가 위에 씹던 껌으로 대충대충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십자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번은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자신들의 세운 십자가 밑에 무심코 촛불을 피워놨다가 화재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더 심각한 사실은 따로 있다. 십자가언덕 정상엔 파란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가톨릭 신심이 깊은 리투아니아인들은 그 마리아의 손과 발을 묵주로 장식했고 파란 성모 마리아는 꽤 오랫동안 십자가언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마리아상은 애석하게도 2011년 여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1994년 그 마리아상을 직접 만들어 세운 사람이 이곳을 찾아 마리아상을 직접 철거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유는 타 종교로 개종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십자가 언덕 관리에 대한 규정이 전무한 상태라, 십자가 언덕의 상징과도 같은 그 조각의 철거를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철거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 성모 마리아상은 자취를 감췄고 현재는 시민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다른 성 모자(母子)상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철로 된 십자가가 들어서면서 이미지 훼손"

십자가 언덕의 산 역사 아돌파스 테레슈스. 현재 십자가 언덕 전체에 그가 만든 십자가가 무려 20개가 넘는다.
 십자가 언덕의 산 역사 아돌파스 테레슈스. 현재 십자가 언덕 전체에 그가 만든 십자가가 무려 20개가 넘는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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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 인근 가를랴바에 살고 있는 십자가 공예자 아돌파스 테레슈스씨는 대내외적으로 리투아니아 십자가의 가치를 대표하는 예술인 중 한명이다. 1960년 생인 그는 소련 시절 십자가의 언덕 인근에 살고 있었는데, 1975년 경찰들이 고의로 일으킨 화재로 인해 십자가 언덕이 전소된 후부터 줄곧 일명 '십자가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산 증인이기도 하다. 현재 리투아니아 전통 십자가의 맥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직접 십자가를 만들어 세계에 그 명성을 알리고 있다. 십자가 언덕에는 그가 만들어 세운 십자가가 20여 개에 이른다.

그가 보는 요즘 십자가언덕의 상황은 어떨까. 우선 그는 "나무 십자가가 중심인 십자가의 언덕에 돌이나 철로 된 십자가가 들어서서 이미지를 심하게 훼손한다"면서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세우는 십자가들은 도리어 기존 십자가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십자가 언덕을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십자가 언덕은 관광지화 되기 전엔 자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단다. 심지어 보안이 철통같던 소련 시절에도 5월 첫째 일요일이면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훼손정도가 심한 십자가를 모아 정리하고 불태우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행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동안 십자가언덕의 상징이었던 파란 성모 마리아상.
 한동안 십자가언덕의 상징이었던 파란 성모 마리아상.
ⓒ 강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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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파스 테레슈스씨는 완성된 십자가를 세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위해 십자가를 만들어 세우는 그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십자가 언덕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민족의 독립이나 번영 같은 범인류적이고 민족적인 염원이 담긴 십자가들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현재는 단순히 십자가를 세우고 사진 찍는 것이 전부가 돼버렸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는 "시대가 변하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용도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했다. 테레슈스씨는 "정부가 앞장서서 십자가 언덕을 보존하기보단,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알아서 훼손을 막아주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피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십자가 언덕 입구에 화장실과 자판기 시설이 갖추어진 안내소 정도만 들어서 있을 뿐 종합적인 관리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십자가 도난이나 화재 등이 자주 발생하면서 지난해 5월 샤울례이 지방 정부 차원에서 십자가 언덕 관리 보호 규정을 만들었다.

보호 규정에 따르면, 촛불을 켠다든가 구걸을 하지 못하게 돼 있다. 또 현재 십자가 언덕에 놓여있는 십자가는 모두 문화재이기 때문에 함부로 십자가를 훼손하거나 복원할 수 없다. 설사 자기가 만든 것이라 해도 관련부처의 허가 없이는 임의로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다. 또 3미터 이상 되는 대형 십자가는 꼭 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은 뒤에만 세울 수 있다.

십자가 언덕 보존을 위한 노력

쓰레기처럼 흩어져있는 십자가들
 쓰레기처럼 흩어져있는 십자가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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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돌로 된 십자가들이 우후죽순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 십자가언덕 관리자인 리나 슈키에녜씨는 "이곳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니고 순수하게 자발적인 차원에서 형성된 곳이니 십자가의 종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씹던 껌이나 종이로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공동묘지에서 가져온 것이 명백한 비석이나 개인적인 추모를 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금지된다"고 밝혔다.

십자가 언덕 보존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매년 봄이면 관련부처의 허가를 받은 전문가들이 썩거나 망가진 십자가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잡초나 이끼들을 청소하기도 한다. 또 비와 바람에 훼손된 십자가들을 선별해 애초 그 십자가를 만든 사람들을 수소문한 뒤 똑같은 형태의 십자가를 다시 제작하는 사업도 진행중이다. 복원이 필요한 십자가는 4월부터 7월까지 리투아니아 매체를 통해서 공지되며 정부로부터 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

십자가의 수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십자가 언덕의 명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든 십자가 언덕은 명백히 가톨릭의 성지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현대사에서 보듯 리투아니아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물만으로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리투아니아에선 한때 탱크가 세워져있거나 압제의 흔적이 있던 곳엔 지금도 전통 십자가가 들어선다.

공식적으로 현 십자가 언덕의 위치에 십자가가 처음 들어선 때도 제정러시아의 압제에 반대한 대봉기가 벌어진 1831년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종교적 가치를 뛰어넘은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었던 십자가 언덕이 특정종교와 결부됨으로써 겪게 되는 가치의 왜곡 역시, 십자가언덕이 지금까지 존재하도록 도와준 그 장본인이 내게 건넨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일지 모른다.


태그:#십자가언덕,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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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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