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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보도와 유언비어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둘 사이를 구별하는 사회적 기준은 무엇일까. 유언비어 혹은 괴담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진실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 진실로 확정되는 그 기간이 매우 짧은 경우도 있고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일단 유언비어는 유언비어로 존재하면서 공적 미디어가 보도하지 못하거나 보도하지 않는 사실들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준다. 유언비어의 출발점은 공적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미디어는 권력과 자본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근대 이후 구축된 매스미디어 시스템은 국가와 자본의 통제 혹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 통신과 방송 네트워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승인이 있어야 했고 대규모 방송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가공하여 다시 송출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매스미디어가 특정 그룹에 속한 기업이든 국가의 관리 하에 있는 공영방송이든 많은 운영비가 소요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일정 정도 편향성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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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의 대부분을 얻는 일반 대중들은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보도 내용이 일치할 때, 즉 모든 매스미디어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고 하나의 내용과 주장만을 계속 전달할 때 그 둘을 불신하게 되고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국가적 재난, 사회적 참사와 같은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더더욱 그렇다. 큰 사건 뒤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 이유들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고 서로 서로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인간 내면에 있는 공감의 사회적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희생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에는 그 연대감이 더 크게 확장된다.

그러나 그 연대감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뉴미디어가 생기기 전인 매스미디어 시절 유언비어는 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기껏해야 구전으로만 또는 유인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매스미디어가 이미 통제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술자리에서 한탄하거나 유인물을 돌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이 알고 있거나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단 하나 방법은 자신이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이 그것이다.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목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미디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후 확산되는 '유언비어'

최근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오가고 있다. 매스미디어에 대한 누적된 불신 때문에 '유언비어'가 등장했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정보 전달방식의 등장 때문이다. 정보화시대에 들어오면서 누구라도 자신의 미디어를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본 것 또는 들을 것을 즉각 전달한다.

인터넷의 속성상 동시에 수많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정보를 받은 사람들은 그 정보에 대해 정서적으로 반응하면서 정보 확산에 중간 매개 역할을 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정보사회학적 관점에서 유언비어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SNS을 통해 전달받은 메시지들은 기본적으로 아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 메시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 이전에 보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수용하게 된다. 마치 오래 전 유언비어의 전달방식처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유대감을 공유하게 된다.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여럿일 경우에는 그 유대감의 폭이 더 커져서 사회적 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 그룹 안에서 특정한 메시지가 계속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면 일종의 믿음이 생기게 되고 자신 역시 그 메시지를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책임을 느끼게 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너무나 쉽게 다수로부터 '은밀한 정보'를 받게 만들었고 그 정보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게 만들었다. 그 '은밀한 정보'는 이제 믿음과 신념이 되면서 남에게 알려야 하는 메시지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속도

SNS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 동영상, 사적인 내용의 카카오톡 화면 등은 사람들에게 메시지의 진실성을 쉽게 각인시킨다.
 SNS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 동영상, 사적인 내용의 카카오톡 화면 등은 사람들에게 메시지의 진실성을 쉽게 각인시킨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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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유언비어는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 본래의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다 기억할 수도 없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일부 복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유언비어의 최종 해석은 개인적 차원에서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 최초의 메시지가 온전히 보존되기 힘들기 때문에 집단적 동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SNS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 동영상, 사적인 내용의 카카오톡 화면 등은 사람들에게 메시지의 진실성을 쉽게 각인시킨다. 구술의 시대에서 비주얼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은 듣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믿게 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가 보내는 메시지와 다른 정보를 분명 보았고, 그것도 내가 아는 여러 사람에게 직접 받았고 중복적으로 받게 되면 이제 내가 선택할 일은 하나뿐이 없게 된다. 내가 내 미디어로 여러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일이다.    

속도 역시 중요한 요소다. 인터넷의 속도는 논리적 분석보다는 정서적 반응을 우선하게 만든다. 매스 미디어는 편성을 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여러 정치적, 사회적 판단을 기초로 정보의 내용을 수정 편집하지만 개인 미디어인 SNS의 가상공간에서는 날것대로 정보가 유통된다.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날것인 정보가 더 인정받는다. 중요한 것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속도다. 날이 갈수록 빠른 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인터넷 속도와 정보의 신속성을 동일하게 받아들인다. 빠른 속도, 신속한 정보가 날것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정보로 해석되면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속도에 비례하여 수용한다.

유언비어는 늘 존재한다. 매스 미디어가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할 때 더 많이 유통되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들어와서 유언비어는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가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물리적 현실 공간을 제어하는 정도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맘껏 하고 싶어 한다. 그 공간에서나마 맘껏 떠들고 싶어 한다. 가공되지 않은 언어로 가공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태그:#유언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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