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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장례지도사가 영정을 정리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장례지도사가 영정을 정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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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인다.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어디가나 뉴스 속보에 눈이 간다. 일말의 기대감. 그러나 여기저기 한숨소리. 그러다 불현듯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멍하니 앉아 있다 버스를 놓친다. 실낱같은 희망. 그 희망마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안타까움과 분노가 뒤섞인 초기의 마음은 이제 허탈감과 냉소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분노만큼은 도저히 어쩔 수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사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 온국민이 그렇다. 가지 말라는 위험한 곳에 간 것도 아니고, 나쁜 장난을 치다 그런 것도 아닌 그냥 여행이었다. '그들'이었지만 '나'일수도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였을 수도 있다.

'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허탈감과 분노는 '사고'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안타까움만 넘실댔을 것이다. 구할 수 있는 생명이 죽었다. 그것도 아직 젊음을 채 피워보지 못한 청춘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차오르는 물에 버티며 언제까지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는지도 모른 채, 얼마나 큰 고통 속에 몸부림쳤는지 상상조차 못한 채, 그렇게 우리는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은, 어이없는 구조과정에 대한 이 치솟는 분노는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초동대처, 무엇이 목표였나

최선을 다했다면 어쩔 수 없다. 안타까움을 달랠 길 없어 국가나 구조대원들을 탓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건 단지 차오르는 슬픔의 단순한 외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슴속에 차오르는 분노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감추기에 바빴다. 구조 과정의 기술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알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처음 구조신호를 보냈는지조차 사고 발생 일주일이 다 돼서까지 계속 오락가락 했다. 구조활동에 필요한 장비들이 가장 중요한 사고 초기에 집중되지 않아 시간만 낭비했다.

게다가 수중구조분야에서 국내 1인자로 꼽히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21일 사고해역에 도착해 다이빙벨을 활용해 실종자 수색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구조 당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거부해 되돌아갔다. 해양경찰청장은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를 받고나서야 이종인 대표에게 다이빙벨 투입을 요청했다.

지난 24일 한 언론사는 그동안 민·관·군이 함께 합동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홍보했던 범국민사고대책본부가 사고 업체인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한 용역업체와 함께 다른 민간업체의 참여를 막으면서 구조 활동을 펼쳐왔다고 보도했다. 조류가 약한 마지막 날인 24일 전날에도 이 용역업체의 바지선으로 교체하느라 수색활동이 중단되었다고도 전했다. 투입할 수 없다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대신 한 대학의 다이빙벨을 싣고 온 것도 이 업체 바지선이다.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매시간 다른 정보가 전해졌다. 밤샘수색을 했네 안 했네, 공기를 넣었네, 아직 안 넣었네 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또 언론에서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와 세월호의 교신 기록 분석을 끝냈다고 보도하자, 검경본부 관계자는 교신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가 얼마 후에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가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소위 '유언비어'였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발표와 다르면 일단 유언비어로 치부했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양산한 수많은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한 언론은 정부기관이 해양전문가들의 언론 인터뷰를 막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음모론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뭔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련의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온국민이 어린 생명을 단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고 있을 때, 도대체 그들은 뭘 두려워 한 것인가?

책임 회피하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상황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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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 말실수, 책임회피. 이 정도면 습관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처리 방식이나, 간첩조작 사건에서 보인 정부의 '모르쇠'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침몰 사고의 책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책임, 사고 직후 승객대피에 대한 책임, 그리고 침몰 후 구조에 대한 책임이다.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으니, 우선 사고 발생 직후 수백 명의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슴이 미어지는 건, 그래도 단 한 명이라도 살릴 것이라 기대했던 구조 활동이 아무런 성과 없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려운 현지 조건을 감안하고서라도 정부가 보인 우왕좌왕과 시간 지체, 뒷북대처는 그들이 '구조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책임회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포문은 대통령이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를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만 말했다. 더딘 구조 활동과 납득 못할 난맥상에 대한 비판여론 속에서도 오로지 선장과 승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는 3자 화법이다.

청와대 고위 간부들이 뒤따랐다. 같은 날 오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 의료용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감싸는 '계란 없는 라면' 발언을 내뱉은 후 이정현 홍보수석은 기자들에게 "도와주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국가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제기는 조금 뒤에 해달라는 요청인데, 청와대를 국가로 착각하고 있다. 

화룡점정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찍었다. 그는 2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는 발언을 내던졌다. 그러나 24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것처럼  '해양사고(선박) 위기관리 실무매뉴얼' 조직도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을 제외하면 가장 상위의 조직이다. 이 매뉴얼은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6월 업무지침을 위해 작성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최고위급 책임자가 자신의 역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은 평론가 행세를 하고 있다. 중심 없이 흔들리는 정부는 지금 좌초 직전이다. 

의지할 수 없는 정부라니...

인간을 아무런 규제 없이 자연 상태에 놓아두면 전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거대한 바다괴물인 리바이어던, 즉 국가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홉스는 국가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예외사항을 적어 두었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할 때다.

만일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무능하다면, 국가로서 기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이 나라 정부의 모습은 그 무능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기꺼이 짊어지어야 할 책임을 선박회사에 떠넘기기에만 여념이 없다. 이 와중에서도 언론과 여론의 통제에는 능숙하다.

무사생환의 희망이 줄어들수록 높아지는 이 분노는, 가슴 먹먹한 이 슬픔은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는가? 300여 명의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이 순간에, 우리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생명이 위협받을 때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 주지 못하는 정부라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가?


태그:#세월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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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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