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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4일째인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추가 발견한 잠수사들이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로 복귀하고 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4일째인 29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추가 발견한 잠수사들이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로 복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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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30일 오후 5시]

"초동단계에서는...그 여건은 잘 모르겠지만 현재 해군과 해경은 아주 유기적으로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

"초동단계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 때가 발을 동동 구르던 때 아닌가. 1분 1초가 귀한 시간인데 우리 심해작전의 최고 정예부대들이 들어갔는데, 이들이 최고 전문가들인데 해경이 투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해경이 주도하고 군은 지원하는 입장이니까 그냥 뒷짐 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납득이 가나?" (진성준 의원)

3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현안 보고에서 해양경찰(아래 해경)이 세월호 구조작업 주도권을 쥐려고 이미 잠수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해군의 잠수를 막았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또 해경이 구조작업에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아래 언딘)'를 투입하기 위해 해군 최정예 잠수요원인 특수전전단(UDT/SEAL)과 해난구조대(SSU)의 투입을 통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국방부가 30일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16일 오후 12시 4분께 이미 SSU 요원 14명이 현장에 도착했으며, 이어 12시 45분 9명이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어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UDT 요원 22명도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6시에는 SSU 요원 2개조 4명을 현장에 투입해 하잠색(잠수사들을 위한 인도선)을 처음 설치했다.

하지만 오후 6시35분 이후 해군은 SSU 대원들을 구조작업에 투입하지 못했다. 해경이 구조작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잠수 인도선인 하잠색을 먼저 설치한 해군의 잠수를 막았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잠수사가 아무리 많아도 하잠색을 통하지 않으면 잠수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탐색구조를 주도하고 있는 해경에서 잠수작업 통제로 해경 잠수팀이 우선 입수했고, 하잠색 부족(해군 설치 1개)으로 다수 잠수사 입수기 불가했으며, 군이 설치한 하잠색을 이용해 해경팀이 입수했다"라고 밝혔다. 이는 하잠색을 아직 설치하지 못해 잠수를 하지 못하고 있던 해경이 해군이 하잠색을 설치하자 먼저 잠수해야 한다며 해군 대원들을 막고 구조작업을 실시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해군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바닷물이 움직임을 멈추는 정조 때도 UDT, SSU 대원들을 구조작업에 투입하지 못했다. 해경이 언딘 잠수사를 투입하기 위해 해군 대원들의 잠수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오전 7시1분께 UDT 대원 10명, SSU 대원 9명이 잠수를 준비 중이었는데 구조작업을 실시하지 못했다"며 그 이유에 대해 "민간업체(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하여 잠수 미실시했고, 군은 상호 간섭 배제를 위해 해경 통제를 수용했다"고 답변서에서 밝혔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의 해난 구조 경험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UDT와 SSU가 초기 구조작업에 투입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태그:#진성준,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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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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