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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의 한국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한국 인권시민사회 단체들도 특별보고관의 한국 보고서와 관련한 활동을 펼치기 위해 제네바에 NGO 참가단을 파견했다.

지난 2013년 마가렛 세카기야(Margaret Sekaggya)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은 한국을 공식방문해 인권옹호자들의 권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안들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인 이번 보고서는 명예훼손의 형사처벌, 인터넷 상에서 표현의 자유 제약, 국가보안법의 오남용, 대규모 개발 사업에서의 인권침해 등과 같은 국내 인권상황을 대해 지적하며 한국 인권옹호자들의 기본권이 훼손되고 있음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우간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세카기야 보고관은 무엇보다도 인권을 보호 증진하는데 있어서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며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게도 인권옹호자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고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인권 보호와 증진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 중 특정 국가에 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발표되면 우선 당사국(이 경우는 한국) 정부가 그에 대한 답변을 한다. 이어서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들에게도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 정부는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해 "한국은 안보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가보안법 입건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고 평화로운 집회결사를 차벽으로 막아 세우고, 밀양과 강정에서는 경찰의 채증과 인권옹호자 연행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매년 앵무새처럼 똑같은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다.

인권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부재한 국가인권위의 답변

그 뒤를 이은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특별보고관의 권고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행할 것인지 밝히는 대신 보고서가 사실과 다르다며 단락별로 지적을 이어나갔다.

특히 2010년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세계 장애인의 날에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한 사건과 관련해 "사무실 공간에서의 농성으로 업무를 방해했으며, 여러 인권위 직원에게 물리력 행사·상해를 초래함,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기·난방도 통제하지 않았고 음식 반입 제한은 없었음"이라고 밝혔다.

난방이 차단되어 병세가 악화된 장애인권 활동가 중 한 명이 폐렴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해당 집회가 아니라 다른 시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무엇보다도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답변은 인권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인권옹호자에 대한 개념도 부재한 답변이었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직원은 보고서 발표 후 쉬는 시간에 특별보고관에게 직접 다가가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별보고관은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언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동의를 받기 위해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아니"며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야말로 어떻게 보고서의 권고내용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언이 끝난 후 다른 나라 활동가 및 유엔 관계자들도 한국 NGO 참가단에게 다가와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떻게 된 것이냐며 우려를 표했다.

유엔 권고를 공격으로 인식하고 방어 태도·변명으로 일관한 국가인권위

유엔 인권이사회는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정부·시민사회·국가인권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협력적으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지 유엔에서 내린 인권 권고를 특정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여러모로 후안무치한 태도를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유엔 인권이사회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언론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승인소위원회로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11월에 제안된 권고사항의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고 충분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급심사 결정을 연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2008년 11월, ICC 승인소위원회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게 파리원칙(Paris Principle)에 부합하는 명백하고 투명한 인권위원 선출 과정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위원회 구성원이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ICC의 결정에 대해 독립적인 기구로서 어떻게 인권 보호와 증진에 힘쓰는 기구로 거듭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는커녕 또다시 이것은 ICC 승인소위의 재승인 절차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며 이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의견만을 내놓았다.

변명과 부인하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유엔 권고를 이행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비독립성 및 인권위원 선정의 불투명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부터 아시아국가인권기구NGO네트워크(ANNI)를 비롯해 아시아인권위원회(AHRC) 등 여러 국제 NGO들은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적인 기구로서 인권 보호와 증진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줄 것을 끊임없이 촉구해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본래의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한다.

[참고]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보고서 중 국가인권위원회 관련 권고 부분

1.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정부와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되었으며, 2004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 의해 "A" 등급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은 개인진정을 접수받고, 인권교육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책 권고를 상정하는 등 광범위하다.

2. 국가인권위원회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위원장, 3명의 상임위원, 7명의 비상임위원을 포함한다. 이들 중, 네 명은 국회에 의해 선출되고, 네 명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세 명은 대법원장에 의해 임명된 후 대통령의 승인을 받는다.

3.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강화와 인권에 관한 안정적인 제도적 체계 수립에 있어 중점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 기관은 대체적으로 정부의 협조를 받았고, 인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의견들을 발표하였으며, 이러한 의견들 중 일부는 공공의 권리 및 자유를 옹호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4.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해당 기관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관련해 때로는 타협되어진 것으로 보여져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5.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재승인 절차 도중, 「국가재정법」상 정부로부터의 기능적 자율성의 부재를 비롯한 여러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다. 국제조정위원회 승인소위원회 또한 위원장과 위원들의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 국회 또는 대법원장에 의한 임명에 근거해 공식적인 공개협의 및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원임명에 있어 더욱 자율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긴급한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공개 성명 및 보고서를 시의적절하게 미디어를 통해 발표할 것을 숙려하도록 촉구하였다. 덧붙여,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 인력이 21% 감소된 것에 따른 우려가 제기되었다.

6. 특별보고관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위원 중 한 명, 그리고 여러 임직원을 만났다. 면담 중 특별보고관은 해당 기관이 인권옹호자 전담관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만족스러워하였으며, 이를 홍보할 것을 장려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용산 사건, 제주 해군기지 건설, 천안함 사건 등의 인권침해 주장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였다. 위원회는 또한 인권에 대한 인식 제고 및 대중 교육 캠페인을 수행하는 데에 적극적이었으며, 특별보고관은 광주 방문과 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 방문을 통해 이를 평가할 수 있었다.

7. 그러나, 특별보고관이 방문 중 제공받은 정보에 따르면, 인권위원회는 최근 몇 년 간 여러 인권옹호자 집단을 포함해 특정 국내 이해당사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특별보고관에게 접수된 보고서와 주장들에는 인권옹호자들이 제기한 진정에 대한 부당한 묵살과 기각, 진정에 대한 과도한 결정 지연, 그리고 인권옹호자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경향 등이 언급되었다.

8. 특별보고관은 특히 일단의 장애인인권 옹호자들이 직면했던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 염려하였다. 2010년 12월, 장애인인권 옹호자 및 장애인당사자들은 위원장의 사임과 세 가지 장애인 관련법의 개선을 요구하며 위원회 건물을 평화적으로 점거하였다. 주장에 따르면, 점거 도중 전기 및 난방이 끊겼고, 음식반입과 인권옹호자 활동보조인들의 접근이 제한되었다. 극심한 날씨와 저온의 결과로 시위 참여자 중 한 명이 폐렴에 걸려 2주 후 사망하였다.

9. 특별보고관은 이 사건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심기가 매우 불편했으며, 해당 전력 중단은 건물 관리인들에 의한 일상적인 운영이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확언을 참고하였다. 특별보고관은 또한 점거농성이 발생한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와 특정 인권옹호자 집단간의 관계가 때로 극심한 긴장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특별보고관의 견해로는 시위자들이 공공기관에 대한 우려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당 점거는, 기본적인 조건의 제공을 포함하여, 촉진되었어야 한다.

10. 특별보고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옹호자들과 일반대중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진실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위원 및 임직원들을 통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양한 인권옹호자 집단들의 상황과 우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 시의적절하게 인권옹호자들과 공권력 또는 민간 주체 사이에서 조정자로 활동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백가윤님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국가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 #유엔인권이사회, #유엔권고,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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