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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들이 강변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강변야유회 사촌들이 강변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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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 물감처럼 번져가는 5월 10일, 세 번째 사촌모임을 가졌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오던 고향근처 강가에서 말이다. 이미 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의 모든 형제들이 돌아가셨지만 아직 장손인 큰 형님이 고향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향에 계시던 형님도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고향을 떠나 고향 근처인 미호 강변에 자리를 잡아 살고 계시다.

그동안 식당에서 모임을 주로 갖곤 했는데, 이번에는 강변에 천막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로 하였다. 사실 여러 가족이 모여 야영하다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고향에 계시는 형님내외분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시어 큰댁 근처의 강변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아침 전화소리에 깨어보니 형님이 빨리 건너오라는 전화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큰댁으로 향하였다. 큰댁으로 가는 길에 야영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큰댁으로 들어갔다. 형님내외 분께서는 큰 가마솥에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잡아 어느새 끓여놓고, 천막과 탁자를 트럭에 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다. 오월 날씨답지 않게 기온도 쭉 올라가고 하늘도 청명하다. 야유회 날씨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큰댁에서 300m 남짓한 잔디밭으로 옮겨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다들 처음 쳐보는 천막이라 간단하지가 않다. 형님내외를 비롯한 우리 부부가 천막기둥을 잡고 잡아당기다 보니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천막을 치는 요령이 생긴다. 천막을 강변 잔디밭에 쳐 놓자 제법 야유회 분위기가 난다. 천막 옆에는 지난번 서울 다녀오는 길에 사온 텐트를 처음으로 쳐 보았다. 천막 옆에 붙여 놓으니 세트처럼 야유회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천막기둥에 말뚝을 박아 고정시켜 놓자 서울에서 작은 형님내외가 차에서 반갑게 내린다.

작은 형님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이것저것을 살피더니 얼음을 비롯한 물품을 사러 읍내로 얼른 가야 한다고 야단이다. 엄나무를 넣은 토종닭이 막 익어갈 무렵 사촌들이 하나 둘씩 야유회장으로 들어선다. 모두들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느라 야단이다.

금세 천막 안이 사촌들로 꽉 차고 말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흥이 일어난다. 그 틈을 타고 윷놀이 대진표를 만들어 부부대항 윷놀이를 시작했다. 윷가락을 집어 던지는 신명소리에 흥이 절로 나고 윷판을 뒹구는 윷가락이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기 시작한다.

첫판은 장손과 둘째 작은집 큰형님 내외가 붙었다. 형님들의 신명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예전의 윷판에서 놀던 가락이 있다. 윷가락이 춤을 춘다. 잡고 잡히는 추격전이 서로를 진땀나게 하더니 한쪽으로 금세 대세가 기울고 만다. 이어서 사촌누나와 사촌형님 내외가 붙었다. 윷을 던지는 폼이 좀 어설프지만 심심치 않게 모가 자주 터진다. 이제 윷놀이에 재미를 붙였는지 목소리에 신명이 붙었다.

사촌들이 윷놀이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 윷놀이 사촌들이 윷놀이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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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잡고 걸~~어가자."
"그렇지 잡아." 
"자~ 걸어가자."
"저 집 뭐여."
"뭐 잘못 먹었나봐."
"말하는 대로 탁탁되네."

사촌형은 뭐가 잘 안 되는지 머리만 자꾸 긁적인다. 이번에는 팔순이 훌쩍 넘으신 작은 어머니께서 윷가락을 던지신다. 옛날의 신명이 살아계시다. 승부욕도 있으시다.

"이게 뭐여." "젠장."  "맨날 개네~"
"야." "너 더 높이 던져라."
"저~만치 말여."

이렇게 신나게 윷놀이를 하다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어서고 있다. 주변에 있는 전월산에 오르기로 했다. 모두들 흔쾌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다만 술이 과한 장손과 서울 막내만이 꾀병을 부린다. 물 한 병씩 들고 산으로 들어섰다. 오월의 푸른 나뭇잎이 너무 싱그럽다. 가파른 산길을 조금 올라서자 사촌 누님이 길가의 바위에 떨썩 주저 않는다.

산에 오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휴식 산에 오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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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엄청 힘드네.
"난 더 못가것다.

사촌 누님은 오십 중반의 나이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날씬한 몸매를 지녔다. 그럼에도 엄살을 핀다. 걸음걸이로 볼 때 산에는 거의 다니지 않는 사람 같다.

"누나 그래도 산에 왔으니 무엇하나는 보고 가야지."
"뭘."
"조기까지 가면 끝내주는 전망대가 있으니까 고까지만 가자고."
"그래, 얼마나 가는데?"
"거의 다 왔어."

그렇게 사촌형제들을 끌고 올라가는데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다. 막내가 오십 초반이고 칠십에 이르는 형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월산 꼭대기까지 가려했지만 약간 무리인 것 같아서 세종시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까지만 가기로 하였다. 드디어 앞이 탁 트인 전망대에 이르렀다. 세종호수에서부터 첫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망이 끝내 준다. 모두들 흘린 땀을 연신 닦아가며 그림같이 펼쳐진 세종시 모습에 탄성을 자아낸다.

전월산을 오르다 전망대에서 세종시 건설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 전월산 전망대 전월산을 오르다 전망대에서 세종시 건설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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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다 둘러보았는지 금세 조용해진다. 하산으로 방향을 틀자 사촌 누나가 제일 즐거워한다.

"누나."
"산도 안 타는데 어떻게 그리 날씬 한 거야."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잖어."
"에이." "거짓말." "운동은 무슨!"
"매일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는 거 아녀."
"야."  "그러면 어떻게 사냐."
"누나 다음에 올 때 더 높은 산에 갈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해가지고 와."

어느새 해가 서산에 걸리어 있다. 석양에 지는 노을이 참 아름답다. 강변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볼 줄이야! 생각지 않던 멋진 풍경에 모두들 잠시 시선을 멈추고 탄성을 지른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풍경까지 덤으로 보게 되니 정말 부자가 된 듯 기분이 뿌듯하다.

어느새 어둠이 천막 깊숙이 내려왔다. 전등을 꺼내 천막 안을 밝혔다. 닭죽이 끓는 소리가 냄새와 함께 진동을 한다. 한 사발 퍼서 묵은 김치를 넣어 먹으니 꿀맛이다. 모두들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어느 누구도 집에 가려는 사람이 없다. 그냥 늘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다.

저녁을 먹고 화롯불에 빙 둘러 앉았다. 그동안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옛날 고향 이야기로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한다. 장손인 큰 형님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에 웃고 웃다가 자정이 넘어 모두 사라지고 끝내 네 명만이 남아 화롯불을 밝히며 밤하늘을 지키고 있다. 다시 배가 출출해진다. 버너에 불을 붙이고 커피 한잔을 먹었다. 별이 막 쏟아지는 시골의 밤풍경이 기가 막히다. 맑은 바람에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 야영하기 그만이다.

새벽 3시가 넘어 불을 끄고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보니 아침동이 터온다. 사촌 형수님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급히 사라진다. 주변에 야생미나리와 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형수들은 나물을 캐느라 아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자들이 차려놓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어디로 금세 사라진다. 그 걸음에는 흥이 묻어 있다.

사촌누나가 쑥을 뜯고 있다
▲ 쑥 사촌누나가 쑥을 뜯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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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버지 세대에는 무엇이 그리 싸울 일이 많았는지 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땅 문제를 비롯하여 산소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께서는 의견 충돌이 잦았고, 그로 인해 사촌들까지 서먹해지고 소원해진 감이 있다. 오늘 사촌들과 만나 윷놀이도 하고 산속을 걸어 보니 사촌모임을 갖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옛날의 아버님 세대를 기억하는지 기분 좋은 모임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솔선하는 모습은 오월의 푸른 나뭇잎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고향의 강변에서 팔순이 휠씬 넘으신 작은 어머님을 모시고 갖는 사촌모임은 어느 때보다 마음에 더 큰 위안과 삶의 에너지를 주었으리라. 막내가 벌써 오십이 넘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사촌들이 모두 살아 있고 이렇게 함께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년에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 사촌모임이 삶의 충전소가 되고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고대해 본다.



태그:#사촌, #미호강, #용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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