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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세월호 구조작업 모습
 4월 16일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세월호 구조작업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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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돈만 추구하던 기존 관행이나 안전 관리를 대충 해온 부분을 반성하고,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17일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주민 변호사의 말은 단호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를 분명히 비판하고 해결함으로써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은 4월 25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아래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를 출범했다. 5월 8일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아래 17대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민변 사무차장인 박 변호사도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에서 피해자 가족과 법률단체, 시민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 매일 안산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법률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 특검 등의 공적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법률단체 및 전문가와 함께 민간 차원의 진상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수사에 대해 "지금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꾸린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일축했다. "수사를 받아야 할 해경이 오히려 수사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해경이 증거에 손 대거나 검찰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 중에서도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해 규제 완화, 관리·감독 체제 부패, 언론 통제 등을 꼼꼼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측면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편으로 시민의 참여와 감시, 견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도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제도가 있어도 부패하거나 제대로 운영이 안 될 수 있다"며 "항시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잘못된 부분이 제대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참여나 감시 기능이 굉장히 위축된 상황에서 진상규명이나 재발 방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대로라면 정부에게 제대로 하라고 크게 소리 한번 지르고, 그냥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는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부나 자본을 첨예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정치"라며 시민들이 정치에 더 관심을 갖고, 정치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박주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번엔 다르다...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변해야 한다"

박주민 변호사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주민 변호사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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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은 주로 시국사건을 담당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세월호 사고에 나선 건 의외였다. 어떻게 이번에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를 구성하고 17대 과제를 선정하게 됐나.
"민변이 시국사건만 하지는 않는다. 삼성 백혈병 사건 같은 노동사건이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등 시국사건 아닌 사건도 많이 했다. 특히 세월호 사건은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강력히 원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법률적인 분석이나 사실관계 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부분은 변호사들이 잘할 수 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를 꾸리게 됐다."

-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 같다.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고, 사건의 실체를 알수록 분노하게 됐다. 이렇게밖에 못 하나, 정부가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하는 분노를 느꼈다. 실망감도 컸다. 구조과정도 그랬지만, 실종자 수색 과정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민변 변호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는 반응이 많았다. 초기에 탈출한 사람 말고 어떻게 한 사람도 못 구하냐, 이러고도 우리가 세계경제 10위권인 나라라고 할 수 있냐, 그런 반응들이었다. 미안하다는 분들도 있었다. 우리가 자본이나 국가를 철저히 감시했어야 했는데 잘못한 거 아니냐,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니냐 (하는 것이다)."

- 혹자들은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로 한국사회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도 한다. 동의하나.
"이런 대형 참사가 그동안 여러 번 반복이 됐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 사고도 사고지만, 구조과정을 비롯해 사고 전 과정을 국민들이 며칠 동안 계속 지켜봤다. 그래서 이전 사고와는 느끼는 바가 달랐을 거다. 특히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나라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느꼈을 거다. 좋은 옷을 입히고, 유기농을 먹인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많은 사람이 깨달았다.이번 사건이 돈만 추구하던 기존 관행이나 안전 관리를 대충 해온 부분을 반성하고,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금 세월호 사건 때문에 분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기서 멈추면 결국 안 바뀐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줘야 한다."

"유족들이 원하는 건 손해배상 아닌 진상규명"

-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는 현재 몇 명이고,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는 권영국 위원장을 포함해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나는 대외협력 부분을 맡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변협)를 비롯한 법률단체와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에 속한 시민단체, 그리고 피해자 가족을 연계하는 역할이다."

-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는 피해자 법률지원과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 법률지원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법률지원은 변협과 같이하고 있다. 변호사들이 교대로 법률상담을 하고 있고, 조만간 본격적으로 손해배상청구 등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피해자 가족을 대리하게 될 것이다."

- 법률지원은 주로 손해배상청구와 관련된 부분을 지원하는 건가.
"손해배상청구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작게는 사망신고, 실종신고 하는 방법부터 아이 이름으로 든 보험이나 상속 문제 등 법률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 진상규명은 어떻게 진행되나.
"진상규명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특별법이나 특검 등의 공적 진상규명을 추동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하는 것이다.

진상규명을 두 갈래로 하는 것은 특검 등의 공적 기구가 꾸려지는 데 시간이 걸리고, 공적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도 밖에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진상조사는 일단 변협 5명, 서울지방변호사회 5명, 민변 5명으로 구성하고, 여기에 재난전문가 등의 전문가도 합류한다. 전문가는 다음 주부터 차차 모으기 시작할 계획이다."

- 피해자 가족을 자주 만나는데, 그들이 한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분들을 보면, 진상규명을 굉장히 원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이 죽은 것도 억울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안 벌어졌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신다. 자기 자식은 이미 죽어서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음 편하게 배나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다. 돈 이야기는 오히려 극도로 싫어하신다. 변호사들이 손해배상 이야기만 꺼내도 짜증 낸다."

"규제 완화, 관리·감독 체제 부패 등 더 꼼꼼히 봐야"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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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가 선정한 17대 과제의 내용과 17대 과제를 선정한 기준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특별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민변 변호사들이 생각하는 사건의 원인이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살펴볼 부분을 꼽은 것이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이다.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과 관련해서는 규제 완화와 재난관리 시스템의 부패 같은 부분이 있고,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 관련해서는 과적, 선박개조 등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운항관리자의 문제를 지적했다.

구조과정의 문제점은 해경이 초기에 선내 진입하지 않은 점, 민간잠수사 투입을 지체시킨 점 등이 포함됐다. 수사 과정의 문제점으로는 세월호 선장이 한 해경의 아파트에 묵었던 점, 해당 아파트 현관의 CCTV 기록이 두 시간가량 삭제된 점,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 했던 점 등이 있다."

- 17대 과제가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를 몇 가지 꼽는다면.
"다 중요해서 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재발 방지라는 측면에서 규제 완화, 관리·감독 체제 부패 등은 더 꼼꼼히 봐야 할 것 같다. 언론통제 부분도 중요하다. 재발 방지를 하려면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언론을 통제하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측면을 소홀하면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될 수 있다."

-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가 피해자 가족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17대 과제 중 가족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어떤 건인가.
"구조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상한 점들이 굉장히 많다. 해경이 선내에 진입하지 않은 것이나 민간 잠수사의 투입을 지체시켰던 것, 매뉴얼을 전혀 따르지 않은 것, 선장과 선원만 우선 구조한 것, 초기에 중구난방으로 대처했던 것 등. 피해자 가족들은 그런 부분에 의혹을 갖고 있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

- 17대 과제에는 수사 관련된 내용도 여럿 있다. 권영국 세월호 참사 진상특위 위원장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지금까지 나온 수사결과 중 가장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다면.
"지금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꾸린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해경은 이번 사고에 큰 책임이 있고, 수사를 받아야 할 집단인데 수사를 받아야 할 자들이 수사주체가 됐다. 이미 해경이 수사방향 등을 알았기 때문에 증거에 손댔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합동수사본부를 꾸렸기 때문에 해경과 검찰 간에 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 수사 내용을 떠나서 검경합동수사본부 자체가 문제라는 건가.
"이미 수사주체에 대한 신뢰가 붕괴했다. 수사에서는 국민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 수사 기관이 어떤 결과를 내든 국민들이 못 믿으면 수사를 할 필요가 있나. 그런데 이미 국민들이 불신하는 해경이 수사한다? 크게 잘못된 거다." 

"제도 변화도 필요하지만, 시민 참여가 핵심"

-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가 드러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앞서 제도적 측면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제도적인 건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제도 변화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제도가 항상 완벽하기는 어렵고, 설령 완벽한 제도가 있어도 부패하거나 제대로 운영이 안 될 수 있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 결국은 항시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고, 그런 게 반영이 돼서 잘못된 부분이 제대로 개선돼야 하는데 그런 게 잘 안 된다.

사실 피해자 가족들도 분명히 정치적인 주장을 한다. 정부를 비판하고 특별법, 특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 이게 다 정치적 주장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정치적 주장을 안 한다고 말한다.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면서도 우린 시위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이 참여하고,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데 피해자 가족들도 정치적으로 비치는 걸 싫어하는 거다. 결국 시민의 참여나 감시 기능이 굉장히 위축됐다는 증거다. 가족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런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진상규명이나 재발 방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부에게 제대로 하라고 크게 소리 한번 지르고, 또 그냥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잘못하다간 이번에 화를 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새롭게 짚어봐야 한다고 본다."

-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자본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잘못했다는 건가.
"시민단체만의 문제는 아니고, 시민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일반 시민들도 정치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을 거다.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부나 자본을 첨예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정치인데 그걸 안 해왔다. 그걸 방기해서 아이들이 죽었다는 걸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움직임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이번에 소리 한번 크게 지르고 나서 그냥 평상시로 돌아가는 거다."

- 앞으로의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단은 진상규명 위주로 활동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진상 특위 차원에서 독자적인 진상규명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까 말했듯 변협 등과 함께 5명씩 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를 할 거다. 변협과 함께 피해자 법률 지원도 계속 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
▲ 세월호 침몰의 근본적인 원인
1.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한 안전장치의 해체
2. 2008년 해양수산부 해체로 인한 행정공백 및 혼란
3. 부패한 감독기관에 의한 부실한 선박 운항 및 안전 관리
4. 해양사고 위험신호 등에 대한 무시와 무대책

▲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
5. 출항 과정에서 해양경찰, 해양항만청의 관리·감독의무 위반
6. 정확한 침몰경위와 원인 규명

▲ 세월호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
7.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 승무원들의 잘못된 대응
8.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의 잘못된 초기 대응
9. 정부 재난관리시스템의 부실과 무책임
10. 해양경찰의 해군 및 민간잠수사 구조 활동 방해 의혹
11. '언딘'과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
12. '인명구조' 명령권 한 번도 발동하지 않은 해양경찰의 직무유기 의혹

▲ 사고 이후 정부대응과 수사과정에서의 문제점
13. 정부의 언론통제 및 사건은폐 의혹 
14. 피해가족 및 시민에 대한 부당한 감시 
15. 비판자들에 대한 부당한 외압과 위협 
16. 대통령 지시내용과 이행여부 검토 
17. 수사 과정에서의 의혹



태그:#세월호, #박주민,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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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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