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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노무현과 문창극 <중앙일보> 주필 겸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문창극씨가 18일의 한 조찬모임 강연에서 '개헌안 국회 부결후 대통령 사임'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사진은 지난 2002년 5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타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문창극(오른쪽) 당시 관훈클럽 총무.
ⓒ 오마이뉴스 권우성

<중앙일보> 주필 겸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문창극씨가 18일 한 조찬모임 강연에서 '개헌안 국회 부결 후 대통령 사임'이라는 가설을 제기해 정치권 및 언론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동안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가능성을 극구 부인해왔으나 문 주필의 주장과 흡사한 정치 시나리오가 정치권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회자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BRI@문 주필은 18일 오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모임에 참석해 '한국정치 어디로 가야 하나 - 2007 대선정국 중심으로' 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문 주필은 현재의 대선정국을 "야당은 쌍둥이 빌딩(박근혜와 이명박)이 있고, 여당은 아무 것도 없는 '그라운드 제로' 상태"라고 비유한 뒤 "노 대통령이 쌍둥이 빌딩들에 테러를 가하기 위해 가미가제식으로 '개헌호'를 몰고오고 있다는 사람이 있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쩌면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 보면 (야당의 승리로) 대선이 끝나는 건데, 노 대통령이 혈혈단신 비행기로 부딪히러 온 것이다. 하지만 부딪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굉장히 큰 일이다."

문 주필은 "개헌이 그렇게 절실하다면 지난 4년 동안 뺑뺑이치다가 왜 지금 하려고 할까?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안 되는데도 왜 개헌에 매달릴까"라고 의문을 표시한 뒤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2월 10일께 개헌이 발의된다고 치자. 20일의 공고기간이 지난 후 국회에서 60일 이내에 표결을 해야하니 4월 30일에는 국회 절차가 끝난다. 부결은 100% 확실한데 왜 이런 정치일정을 끌고갈까? 국회에서 부결되면 대통령은 지금보다도 더 비참하고 힘이 빠진 존재가 된다. 개헌하는데 힘을 다 써버렸으니 너무나 초라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어떤 미친 사람이 초라한 길을 가려고 하겠나? 자기파멸적 행동밖에 안되는데 왜 갈까?

나를 희생시켜서 뭔가 창조하려는 대통령 나름의 정치공학이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는 게 아닌가? '이번 개헌을 통해 내가 죽자, 뭔가 바뀐다'는 확신이 있는 게 아닌가? 국회에서 부결되면 이 양반의 다음 카드는 대통령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나는 개헌이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국회에서 내 의견을 받아주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더이상 여력이 없다, 대통령 물러나겠다'고 혹시 선언하지 않을까? 이것도 제 판단에 불과한데... 그렇게 안 할 수도 있다.

... (중략) (대통령이 물러나면) 2개월 내에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한다. 4월 30일 물러나면 6월 30일 이전에 대선을 해야한다. 6월 30일에 대선을 한다면 지금으로서는 6개월 남았는데, 한나라당은 후보가 없다. 후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후보들끼리 검증을 하자면서 싸우는데 정신이 없다. 한나라당의 균열을 예측해볼 수 있다.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박근혜 또는 이명박이 경선 못하겠다며 둘 다 출마하는 경우는 없을까?"


문 주필은 "내가 정치부 기자 시절이던 87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 셋(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나왔는데, 그때 당선된 노태우씨의 전략이 '4자 필승론'이었다. 이번에 혹시 박근혜, 이명박이 그 지경까지 가지 않을까?"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의 시나리오는 노 대통령이 '자기희생'으로 한나라당을 분열시키고 새 판을 만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힘이 세질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고건씨의 하차로 노 대통령은 자유로워졌다. 호남 사람이 없어졌으니 충청 또는 경남 사람을 (차기 주자로) 생각할 수 있다. 호남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노 대통령은) 호남 사람들이 다시 똘똘 뭉쳐서 자기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 정운찬씨가 지난번 충남지역 하례회에 가서 '충청도 뭉치자' 어쩌구 하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호남 표에 충청 표를 얹으면 40%가 된다. (대통령이) 경남지사를 지낸 김혁규씨를 내세워도 호남 표에 경남 표를 조금 얹어 40%가 된다. 그러니 대통령으로서는 개헌이 굉장히 중요하고, 고건씨가 물러난 것도 굉장히 다행스러운 것이다."

"고건 다시 나올 가능성 완전히 없다 볼 수 없어"

문 주필은 심지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고씨의 '부활' 가능성까지 점쳤다.

"고건씨가 좀더 버텼어야 하지 않나? 나중에 사람 없으면 여권에서 '안되겠다, 고건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고 전 총리가 물러나는 척 하다가 대통령이 물러난 후 마지못해 '어지러운 나라가 나를 부른다'며 나올지 누가 아는가? 그런 가능성도 완전히 없다고 볼 수 없다. 호남 표 100%에 보수진영 일부 표에 경상도 일부 표를 붙이면 고건이 굉장히 유리할 수 있지 않을까?"

문 주필은 "노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누가 나오든 40%는 기본빵으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며 "거기다가 12월쯤 되면 잘하는 게 있잖아요? 촛불시위 뭐니 해서…, 그런 기획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을 들은 한 회원이 "호남사람들이 100% 뭉친다는 얘기는 호남인들의 정치의식을 너무 낮춰 보는 게 아니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작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남도청 방명록에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해 '무호남무국가(無湖南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라고 쓴 일을 언급했다.

"호남 분들이 저에게 유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목포에 내려가서 '무호남무국가'를 얘기하는 게 말이 되나? 거꾸로 무국가무호남(無國家無湖南 : 국가가 없으면 호남도 없다)을 얘기했어야지. 투석 하는 사람이 노구를 이끌고 쓸데없이 목포에 내려가서 그런 얘기를 했을까? '호남은 다시 뭉쳐야 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문 주필은 "(개헌 문제의 본질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라며 "87년 연임제 개헌을 했다면 노태우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모두 연임됐을 것이다. 그나마 단임이니까 똥차들이 빨리빨리 물러났다. 단임이 아니라 연임이었으면 똥차들이 2020년까지 이 나라를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제도가 제대로 움직이겠냐?"며 "누가 돼도 좋으니 스모그가 덮여있는 이 나라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당선돼야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강연이 끝난 후 문 주필에게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얘기를 많이 했다. '개헌 부결 후 대통령 사임' 시나리오는 너무 앞서나가는 얘기 아니냐"고 묻자 그는 "못할 얘기가 뭐가 있냐? 그냥 이런저런 시나리오"라고 답했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은 문 주필의 발언을 전해들은 뒤 "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것이고, 개헌안에 신임 문제를 걸지도 않겠다고 분명히 얘기했다"며 그의 주장을 '상상'으로 일축했다.

충북 청주 출신의 문 주필은 75년 <중앙>에 입사한 뒤 주미특파원,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실장 등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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