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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석(왼쪽, 2008년 베트남 광남성 지역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던 당시)
 노용석(왼쪽, 2008년 베트남 광남성 지역 민간인 학살을 조사하던 당시)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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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석 교수(부산외국어대)는 과거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 2005~2010)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그는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담당자였고 나는 국제협력 담당자였다.

노용석 교수 약력
2005년 영남대학교 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박사학위 제목: '민간인학살을 통해 본 지역민의 국가인식과 국가권력의 형성')

이후 2006년 대한민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업을 총괄하였고, 현재는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의 과거청산 문제와 유해 발굴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나는 그와 함께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유엔전범재판소와 '킬링 필드'로 공무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가 해준 킬링필드 학살지 안내와 상세한 설명으로 나는 킬링필드의 잔학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캄보디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를 캄보디아 정부에서 영구 위령시설을 설치해 잘 모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경제력은 캄보디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지금도 자국민인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를 폐탄광이나 창고, 개인 연구실 등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래서 유족들은 지금도 명절이면 어두운 창고나 폐탄광 앞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유골을 앞에 놓고 큰 절을 올린다.

이런 인권감수성의 '원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노용석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중미지역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자행된 민간인학살과 과거청산, 그리고 민주주의 복원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역사의식과 도덕이 상실된 요즘, 며칠간에 걸쳐 노용석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아래는 간추린 일문일답.

"과거청산, 발전된 민주주의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

책 표지.
 책 표지.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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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를 발간했는데, 남미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라틴아메리카(중남미)의 역사는 15세기 유럽에 의한 식민정복 과정부터 18세기 이후 근대국민국가 수립에 이르기까지, 소수 귀족의 득세와 군부통치, 쿠데타,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중남미의 특징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냉전 영향을 받은 미소 양국의 이해관계까지 중남미를 침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남미 각국에서는 수많은 내전과 학살 등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 치유를 하지 않고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러기에 중남미에서 과거청산이란 과거의 잘못을 꾸짖거나 '복수'를 하기 위한 담론이 아니라 발전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현실 정치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면 중남미의 과거청산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본받을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포괄적 과거청산 담당기구였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립됐다. 이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의 여러 기구가 존재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들 기구는 대부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한되어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청산은 특정 정파나 정당의 정책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 과거청산이 어느 특정 정당의 정책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근대현대사에 대한 모든 과거청산은 미래 발전을 위한 초석일 뿐이지 특정 정파의 점유물일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 과거청산이 특정 정치세력의 점유물로 인식되어, 2008년 정권교체 이후에는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남미에서는 과거청산이 과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교두보임라고 여긴다. 사뭇 우리와 분위기가 다른 것이 사실이다. 물론 중남미에서도 과거청산에 대해 부정적 경향을 보이거나 이를 공공연하게 방해하는 그룹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방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각국의 과거청산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그 입장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테말라의 유해 발굴 전문기관인 FAFG 사무실 전경. 과테말라에서는 현재까지도 내전 당시 학살되었던 이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에게 돌려주는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FAFG는 이 일을 맡아 처리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에는 수십 여 명의 전문적인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한 구의 유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테말라의 유해 발굴 전문기관인 FAFG 사무실 전경. 과테말라에서는 현재까지도 내전 당시 학살되었던 이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에게 돌려주는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FAFG는 이 일을 맡아 처리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에는 수십 여 명의 전문적인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한 구의 유해라도 더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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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과거사정리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중한 책을 써주어서 고마운 마음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애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은 동기가 무엇인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유해 발굴을 담당했다. 한국은 당시 과거청산에 있어서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유해 발굴에 있어서도 선진 기술이나 노하우 등이 축적되지 않았다.

이때 내게 가장 큰 용기와 감명을 주었던 것이 중남미의 과거청산, 특히 유해발굴에 대한 그들만의 특이한 조직운영 관리였다. 과테말라,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의 많은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내에 전문적인 유해 발굴 기관을 두고 있다. 이 기관들은 내전 혹은 학살이 발생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생자 유해를 발굴해 가족에게 돌려주는 일을 수행한다.

그래서 지난 2006년부터 중남미 유해 발굴 사례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중남미 과거청산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향후에는 좀 더 전문화된 분야로서, 중남미와 한국에서 발생한 학살과 같은 '비정상적 죽음'의 의미가 어떠한 공통성과 상이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집필하고자 한다."

"해당사회의 구조적 모순 해결하고자 했다"

라틴아메리카 단일 최대 민간인 학살로 기억되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엘모소떼 지역. 1981년 12월, 이 지역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엘살바도르 특수부대에 의해 약 5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당시 피학살 인원 중 상당수는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교회 안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당시 어린이들이 숨졌던 엘모소떼의 교회는 현재 당시 학살을 기리는 기념시설로 탈바굼했으며, 휴일에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당시 사건을 추모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단일 최대 민간인 학살로 기억되고 있는 엘살바도르의 엘모소떼 지역. 1981년 12월, 이 지역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엘살바도르 특수부대에 의해 약 5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당시 피학살 인원 중 상당수는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교회 안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당시 어린이들이 숨졌던 엘모소떼의 교회는 현재 당시 학살을 기리는 기념시설로 탈바굼했으며, 휴일에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당시 사건을 추모하고 있다.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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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미지역 과거청산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 주로 알려진 라틴아메리카 과거청산의 주요 모습은 남미국가들이었다. 예를 들어 페루와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등의 과거청산은 한국의 학계에서도 상당히 관심 있게 지켜본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내부에서도 '변방'으로 취급받고 있는 중미지역은 관심이 덜 집중되었다. 중미 과거청산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냉전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은 공식적으로 미소의 분쟁이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냉전이 발생했던 해당지역의 문화 혹은 정치적 특성과 연관 시킬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다.

중미지역 냉전의 발흥은 미소의 정치적 간섭과 군사적 행동으로 표면화되어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중미지역에 뿌리 깊게 파고들고 있던 식민구조의 잔상과 극심한 빈부격차가 결합되어 냉전의 구체적 양상이 전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엘살바도르 내전(1980~1992)과 과테말라 내전(1960~1996)은 미소의 정치군사적 개입이 몰고 온 영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미지역에 산재해 있던 문제들이 소위 냉전과 결합해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중미지역의 과거청산은 내전 기간 중 발생한 학살과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던 해당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중미지역 과거청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과거청산이나 과거사정리가 현재 우리 한국사회와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나? 또한 이 과거청산 행위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한국사회에서 과거청산은 여러 방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용을 하고 있다. 학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사회에서 과거청산의 가장 본질적 의미는 독재정권 시절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이들의 기억과 피해사실을 복원하여 '민중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소위 지배층의 역사에 가려 '역사 없는 사람들'로 살아왔던 이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고, 거시적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잘못된 과거 역사를 바로잡아 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통치와 독재의 잔상을 과거로 치부한 채 그냥 놔둔다면, 이러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현재의 더욱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잘못된 역사에 대한 과거청산은 반드시 필요하다."

-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의 경우에, 무너져 내린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 과거청산작업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냉전시기 내전을 겪으면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었고, 국가내의 다양한 제도와 법은 독재세력과 군부를 위해 변형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두 국가의 민중들이었으며, 이들은 국가인프라의 친독재적 성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전이 종식된 후 두 국가는 국가발전을 저해할 만큼 변화한 각종 제도 등을 개선해야만 했었다. 이 과정에는 입법 및 다양한 정치활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두 국가는 자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즉 당면한 법제도 등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낡은 토대 위에 새것을 지어봐야 흔들릴 수 있다'는 기초적 진리를 수용한 것이다."

- 과테말라 원주민에 대해 과거 집권층 백인들의 차별정책과 인종학살(제노사이드)이 많이 발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과테말라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원주민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국가다. 과테말라 국민 중 40~50% 이상의 국민은 마야 원주민들이었다. 마야 원주민들은 수천 년 간 과테말라 땅의 '주인'이었지만, 15세기 식민지배와 19세기 근대국민국가 수립 이후 '주인'의 위치에서 천대받는 '하층계급'으로 전락했다.

19세기 근대국민국가 수립 이후 과테말라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백인들은 마야 원주민을 근대국민국가로 편입시키기 위해 각종 원주민 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던 와중에 내전이 발생하였으며, 내전 당시 마야 원주민이 기거하던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게릴라(URNG)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마야 원주민을 게릴라의 동조자로 인식하고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1981년부터 83년까지 약 40만 명의 마야 원주민들이 학살당했다. 이 학살은 전쟁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희생이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실시되어오던 마야 원주민 말살 정책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하게 제노사이드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 청산 실행은 '미래'를 향한 몸짓이다"

과테말라의 바하 베라빠스 주에 위치한 라비날. 이곳의 지역박물관에는 1981년 당시 정부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마야 원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 지역박물관이면 고대 유적의 유물 등이 많이 전시되지만, 이곳에는 피학살자들의 사진이 가장 넓은 범위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과테말라의 바하 베라빠스 주에 위치한 라비날. 이곳의 지역박물관에는 1981년 당시 정부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마야 원주민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 지역박물관이면 고대 유적의 유물 등이 많이 전시되지만, 이곳에는 피학살자들의 사진이 가장 넓은 범위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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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청산 과정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과거청산작업의 이행이 그 해당 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과 의미를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하나?
"혹자는 과거청산의 실행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암울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독일과 폴란드가 그러했고, 진실화해위원회의 모델이 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그러하였다. 또한 현재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새롭게 진실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과거청산의 실행은 과거를 향한 '몸짓'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몸짓이며, 그러기에 과거청산은 가장 강력한 현실정치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사정리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결국 어이없는 '문창극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동안의 정쟁과 지역감정을 털어내고 폭넓은 관점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통합이 과거를 '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권의 과거청산 정책은 전임 이명박 정권과 비교할 때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는 아직까지도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고, 각종 현대사의 의문사 사건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발전된 미래는 과거를 다시 성찰하고 마무리 지으며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례는 라틴아메리카 및 세계 여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그:#노용석, #김성수, #과거청산, #중남미, #라텐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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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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