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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선생님의 고향은 경기도(현 황해도)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이라고 한다. 선생이 쓴 <엄마의 말뚝>이란 연작소설에는 그곳에서의 어린 시절이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그려져 있다.

뒷동산에는 복숭아며 살구꽃이 피고 뜰에는 맨드라미에 채송화 그리고 봉숭아며 분꽃들이 피고 지며 울 안을 밝혀 준다. 화자는 그곳에서 조부모님을 비롯한 대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시절은 8살 무렵에 끝이 난다. 딸을 신여성으로 키우려는 모친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에 전쟁이 터졌고, 그 후로 화자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

'엄마의 말뚝'과 강화도

연작소설인 <엄마의 말뚝>에는 강화도가 여러 번 나온다. 강화도에는 1·4후퇴 때 바닷길로 피난왔다가 눌러 사는 개성 개풍 쪽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집안 내의 가까운 친척끼리 모여 살고 있는 동네도 있는데, 특히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황해도와 마주보고 있는 양사면 쪽에 북쪽에 고향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소설에서는 말한다.

하늘도 바다도 평화롭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평화롭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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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강화도의 최북단인 양사면(소설에서는 양산면으로 나옴)에 화자의 어머니에게 재당질녀(再堂姪女) 뻘이 되는 친척이 살고 있다고 했다. 재당질녀라면 육촌 형제의 딸이니 예전 같으면 한 울타리 안에 살던 아주 가까운 친척이다.

이(李)씨 가로 출가해서 잇집이라 부르는 그 집을 어머니는 일 년이면 두세 번씩 찾아갔다. 같은 서울에 사는 하나밖에 없는 딸네 집에도 와서 주무시고 가시는 적이 없던 어머니가 강화도의 재당질녀 집은 나들이 삼아 훌쩍 가서 하루 이틀 묵었다 오시곤 했다고 책에는 나와 있었다.

'이씨 가의 종중산이라는 야트막한 뒷동산에 오르면 바로 발 아래로 바다가 보이고 바다 건너로 북쪽 땅이 보였다. 섬과 육지 사이에 낀 바다는 강 너비밖에 안 돼 꼭 한강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보는 정도의 거리감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거기가 갈 수 없는 고향땅 개풍군이라고 생각하면 그 지호지간은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거기가 오빠의 무덤, 어머니의 상처라고 생각하면 그 바다의 너비는 가이 없었다. 당신 딴에는 자제하노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1년에 두세 번은 잇집네를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 목적이 순전히 뒷동산에 올라 그 바다와 그 바다 건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자 함이라니.(중략)'
- <엄마의 말뚝 3> 중에서

만약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강화도는 박완서 선생에게 특별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의 무덤이기도 했고 또 어머니의 상처이기도 한 강화도를 제 2의 고향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강화도가 아닌 다른 곳에 거처를 잡으셨고, 그곳을 고향 삼아 사시다 돌아가셨다. 

대지와 바람이 품어주고 위로해주는 곳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엄마의 말뚝 2>에서, 소설 속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해를 안고 강화도를 찾는다.

강화도 양사면의 산에 오르면 황해도가 이렇게 가깝게 보입니다.
 강화도 양사면의 산에 오르면 황해도가 이렇게 가깝게 보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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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린 묵묵히 뒤따랐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중략)

어머니의 모습엔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그시 품어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다.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엄마의 말뚝 2> 중에서

<엄마의 말뚝>에 나오는 강화도는 세상의 모든 상처와 고통을 넉넉히 품어주는 곳이다. 대지와 바람 그리고 흘러가는 물빛까지도 고통 받는 이를 끌어안고 위로를 해준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강화도에 찾아와 신성한 의례를 치르며 한풀이를 한다.

<엄마의 말뚝>은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을 담은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개인적 고통을 넘어 시대의 상흔이 담겨 있다. 소설 속에는 전쟁의 참상과 분단이라는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더구나 강화도 양사면의 바닷가에 쳐져 있는 철책 너머로 북한땅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들이 마치 내 일인 양 느껴지며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 망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건너가 황해도 개풍군입니다.
 바다 건너가 황해도 개풍군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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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어머니가 고향이 그리울 때면 찾았다고 했던 양사면을 찾아가 보았다. 강화읍을 지나 송해면을 거쳐 양사면으로 접어들자 검문소가 나왔다. 논에는 벼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었고 뿌옇게 해무가 낀 들판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바다를 따라 철책이 있는 이곳은 최전방 민통선 안이다.

바다 건너 개풍군을 찾아서

강화도의 다른 곳과 달리 북쪽 지역은 개발의 손길이 채 미치지 않아 조금은 한산한 모습이다. 바닷가를 따라 들어서는 펜션이며 식당들도 강화도 북단에서는 보기 어렵다. 민통선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둑에는 철책이 쳐져 있고 민간인의 접근을 막는다. 바다 가운데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그어져 있다. 그 금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강화도 북단 어름이다.

바다라고 하지만 조금 큰 강 너비밖에 되지 않을 그 너머로 북한땅이 빤히 건너다 보인다. <엄마의 말뚝>에서 말한 개풍군이다. 안개가 끼어 뿌옇게 보이는 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 박완서 선생의 고향인 박적골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양사면의 뒷동산에 오르면 바라보이는 개풍군이 마치 어릴 적 자랐던 우리 동네라도 되는 양 보고 싶었다.

고갯길 중간에 장롱같이 생긴 큰 바위들이 여러 개 서 있거나 누워 있어서 '농바위 고개'라고 불린다는 그 곳은 어디쯤에 있을까.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개성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고 한 '농바위 고개'는 정말 소설에서 말한 그대로일까. 나는 지도를 펴놓고 개풍군을 더듬어 찾았다. 그러나 작은 지도로는 세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옛날에는 바닷길로 서로 오갔습니다.
 옛날에는 바닷길로 서로 오갔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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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풍군이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 갔다. 열람실의 서가에는 지도책들을 분류해 놓은 곳도 있다. 보통 책들보다 가로 세로의 크기가 커서 서가에 꽂을 수가 없어서인지 지도책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중 한 권을 빼서 살펴 보았다. 축척이 십오만 분의 일인 정밀도로지도도 있었고 그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십만 분의 일 축척의 관광도로지도도 있었다. 도로명이며 지명에다 또 주요기관까지 세세하게 다 나와 있는 지도대사전이란 지도책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황해도 개풍군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도책에는 북한이 없었다.

북한이 없다

예전에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보던 사회과부도에는 우리나라 전체를 담은 지도가 책의 맨 첫 장에 있었다. 한 페이지로는 우리나라를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두 페이지에 걸쳐 있던 그 지도의 이름은 '대한민국 전도'였다. 남북으로 길게 생긴 우리나라의 전체 모습을 다 담으려니 두 쪽에 걸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도를 보려면 책을 옆으로 돌려서 봐야 했다. 

사회과부도에는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도 똑같은 비중을 두고 실었다. 백두산이 있는 북쪽의 함경도에서 최남단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전체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서 차례차례 살펴서 보여주었다. 그 책을 보며 공부를 했던 우리는 북한의 지명뿐만 아니라 산맥이며 평야까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를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까지도 포함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그런 걸까. 그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고 꿈에도 소원은 역시 통일이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세대들은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당면과제라고 여긴다. 그러나 어느 결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사라져 버렸다. 그 노래를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감감하다. 이제 통일은 흘러간 레퍼토리쯤으로 치부가 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가치들이 들어선 것 같다.

강화군 양사면의 풍류산에 올라 황해도를 바라봅니다.
 강화군 양사면의 풍류산에 올라 황해도를 바라봅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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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책에 북한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했더니 그들의 반응이 반반이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면서, 북한을 여행할 것도 아닌데 지도는 왜 필요하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북한을 남의 나라인 양 밀쳐낸 우리들의 의식 변화를 통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들은 통일에 대해서 그다지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도책 이야기에서 어느새 대화는 통일과 평화로 나아갔다. 강화도라는 특수한 지리적 위치에 살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들과 의견들이 두서없이 나왔다. 모두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일치했지만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통일은 너무나 큰 일이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또 통일이 되면 못 사는 북한을 도와주느라 남한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워질 텐데 하면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이 우리 마음속에 늘 내재되어 있다. 전쟁의 공포가 심리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룬 경제적 성장은 어찌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 되면 뭐가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데, 뭐가 좋아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는 북한을 구경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따라서 해먹기를 즐겨 하는 이는 북한의 음식들을 맛볼 생각에 눈이 빛났다. 낯선 동네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나들길 마니아는 걸어서 북한 전역을 돌아보고 싶다며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였다.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습니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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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생각할 때는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통일이 이렇게 내게 직접적으로 좋은 일들을 생각하니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그 어떤 것을 상상하더라도 통일은 우리에게 기대 그 이상을 줄 것 같다.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놓여나는 것도 통일이 주는 큰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날 모임은 통일 이야기로 풍성했다. 통일이라면 뭔가 거창하고 대단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할 부분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주변의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도 어쩌면 통일에 이바지하는 길이 될 것 같다.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모두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마주잡은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달되었다. 굳건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벌써 통일이 와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태그:#강화도, #강화나들길, #박완서, #엄마의 말뚝, #민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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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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