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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제가 최근에 읽은, 오랜 여운이 남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저자 스테판 에셀이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지난 봄 95세에 숨졌으니까요. 그는 <분노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저항 지식인이었습니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는 그의 자서전인데요. 놀라운 것은 그가 숨지기 1년 전에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점입니다.

94세에 책을 쓴다는 것,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의 자서전을 다 읽어보니 스테판 에셀에게는 '3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더군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여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그래서 스테판 에셀은 죽는 날까지 '청년'이었습니다.

저는 2013년 1월 1일 한국나이로 50이 되었습니다. 마흔이 될 때와는 또 다르더군요. 가장 큰 차이는 인생 후반전에 들어섰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오지요. 후반전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러던 차에 스테판 에셀의 인생을 접하고 '죽을 때까지 청춘'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두 명의 또 다른 '영원한 청춘'을 만났습니다. 조용필과 이문세.

아내의 준비 덕분에 저는 지난 5월 31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조용필과 함께 했고, 바로 다음날인 6월 1일에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이문세와 함께 했습니다. 조용필은 올해 63세로 노래인생 45년째입니다. 이문세는 54세로 30년째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틀간 연속으로 살아있는 스테판 에셀을 봤습니다. 그 나이에 무대에서 2시간 30분간 쉼 없이 열창하는 모습을 보고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50에 접어들었다고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이 조용필과 이문세를 '멈추지 않고 진보'하게 만들까요? 저는 그것이 스테판 에셀을 죽는 날까지 진보하게 한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래서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공연 현장에서 조용필과 이문세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 누가, 어느 정치인이 10만원 전후의 높은 입장권을 기꺼이 내고 수만 명을 모이게 할 수 있을까요?

조용필 공연현장에서는 중년의 남녀들이 마치 10대들처럼 몸을 흔들어댔습니다. 제 바로 옆에 있던 50대 후반 여성은 이렇게 외쳐댔습니다. "용필이 오빠! 저 명희 왔어요, 명희. 저 좀 봐주세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저와 아내도 마지막 20분은 일어나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언제 다시 우리가 조용필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겠어요."

저는 이문세 공연도 좋았지만 조용필 공연이 더 좋았습니다. 이문세는 화려한 게스트 30여명과 함께 했지만 조용필은 혼자서 2시간 30분을 다 소화해냈습니다. 이문세는 대부분 남녀 간의 사랑노래였지만 조용필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이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그래서 조용필 공연 때는 모든 순서가 끝나고 대부분의 관객이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앵콜송까지 마친 조용필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저는 스테판 에셀과 조용필을 번갈아가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기 혹시… 오마이…"
순간 당황했습니다. 하, 누군가 이 몸치가 춤추는 것을 고스란히 뒤에서 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저도 모르게 부인했습니다. "아닌데요." 약간의 장난끼도 발동했지요.
"에이, 맞잖아요.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씨. 맞죠?"
그녀는 지난 대선 때 오마이TV가 생중계한 대선 특집 프로그램 '대선올레'를 열심히 본, 오마이뉴스의 열성 독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실직고하고, 그 독자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날 온 1만 명의 조용필 팬 중에 오연호 팬도 한 명 있었습니다. 하하.

조용필과 이문세 공연을 보고 난 후 저는 '50대 진입 콤플렉스'를 덜 느끼고 살아갑니다. 물론 삶의 무게에 어찌 지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응원합니다. 조용필 형님, 이문세 형님처럼 나도 스테판 에셀이 되어보자, 멈추지 말고 진보하자!

여기까지가 몸글이고요, 우리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만 보는 글이니까, 좀 사업 이야기를 덧붙여 보겠습니다. 조용필, 이문세 공연을 보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봤습니다.

#이벤트 현장 올레: '대선올레' 경험을 살려 조용필 콘서트 현장처럼 '준비된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오마이TV 생방송 올레를 해보면 어떨까요? 예컨대, 콘서트장 입장을 위해 30여분 이상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에게 조용필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현장 인터뷰를 하는 거지요.

#오연호가 묻고 조용필이 답하다: 제가 <진보집권플랜>과 <새로운100년> 등 '오연호가 묻다'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출판해왔는데요. 조용필 형님에게도 프로포즈를 하고 싶어졌답니다. 우리 10만인클럽 회원 중 누구 조용필과 선 닿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오마이뉴스 주최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5만 명이 모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8만명입니다. 10만인클럽 회원은 현재 8천명(누계 약 2만명)이죠. 법륜스님과 대담하여 펴낸 <새로운 100년> 독자는 약 5만명. 그래서 최근에 제가 법륜스님과 <새로운100년> 북콘서트 시즌3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려봤어요. "스님, 이문세의 올림픽주경기장 콘서트에 10만원씩 내고 5만명이 왔어요. 우리도 한번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꿈이 이뤄지면 참 좋겠죠?

사업성이 있을까요?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의견 댓글로 달아주세요.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태그:#오연호, #멈추지말고진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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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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