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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모두 29명의 소방관들이 순직했다. 안타까운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는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는 소방방재청 해체, 소방기구의 국가안전처 편입을 주요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의 구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99%의 소방관을 지방직 공무원 신분으로 묶어둔 채 재난 컨트롤타워만을 바꾸겠다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오마이뉴스>는 앞으로 4회에 걸쳐 이 문제를 짚어본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정부가 국가 개조를 명분으로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의 해체 및 국가안전처 신설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소방방재청의 소방·방재 기능을 국가안전처로 이관하고 소방방재청을 폐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소방방재청은 국가안전처 내의 소방본부가 되고, 소방조직의 수장인 소방총감은 소방정감으로 1계급 강등된다.

재난 대응을 위한 초기 대응능력을 고도화하고 정부 조직을 통합 일원화해 초기에 구조구급활동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것이 정부 조직법 개정안의 주요 취지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현재 17개 광역지자체로 운영되고 있는 지방소방조직을 통합 운영하던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신설될 국가안전처 내 소방재난본부로 운영할 경우 중앙정부가 유사시 어떻게 재난지역을 통합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각계 전문가들의 비판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화재진압복을 입은 소방관이 지방직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현장대응 소방인력 증원' '낡고 부족한 장비 현대화' 등을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소방관이 위험하면 국민도 위험"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화재진압복을 입은 소방관이 지방직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현장대응 소방인력 증원' '낡고 부족한 장비 현대화' 등을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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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역별로 예산이 달라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소방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부조직이 개편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방관련 예산은 3조2160억원, 이중 국가에서 지원되는 예산은 556억원(1.8%)에 불과하다. 나머지 98.2%가 지역 부담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국가지원 예산 비율은 15%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이번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들여다보면 외양상 미국의 소방조직 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인다. 재난관리를 총괄하는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해당하는 국가안전처를 중앙 정부 내에 신설하고, 그 아래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장하는 소방본부를 둔 것이 바로 그러하다. 미국도 주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소방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예산 권한 등이 막강한 연방제 국가인 미국 소방관은 우리의 '지방직'과는 아예 그 위상과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연방을 구성하는 50개 주마다 헌법이 따로 있을 정도로 지방자치가 자리 잡은 미국의 경우 주가 각각의 국가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광역시·도 같은 지자체와는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소방조직은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건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은 이런 물음에 답해줄 가장 적절한 인물이다. 한국 소방관으로 6년 근무한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주한미군 소방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콜럼비아 서던대학에서 산업안전보건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 국방부 소방학교, 소방검열관 중급과정 교육을 수료한 그는 올 1월 자신의 경험을 <미국소방 연구보고서>(해드림 출판사)를 써 미국의 선진 소방시스템을 소개하기도 했다.

"혼선줄 수 있는 이원화된 조직체계, 문제될 수 있다"

- 세월호 사건이후 정부가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현재의 소방방재청 해체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소방방재청 해체를 어찌 볼 것인가는 사실 쉽지 않은 문제다. 사실 현재의 소방방재청이 그 이름처럼 현장 전문 대응조직의 총본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 견해로는 이런 조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은 있다. 오히려 나는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느냐, 존속시키느냐하는 선택의 논리라기보다는 소방조직이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흡수된다하더라도 '국가차원에서 소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가 먼저 심도 깊게 논의 되어야 한다고 본다."

- 미국의 재난구조는 각 지역의 소방서장의 권한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필요한 경우 연방재난관리청과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현장에서 무전기를 잡은 사람(소방서장)에게 권한과 역량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 지휘관들이 높은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장을 지휘하는 와중에 여러 가지 보고 사항들이 생기는데, 보고가 늦어지면 현장에 있는 지휘관을 다그치니, 현장 지휘관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보고를 위한) 현황 파악에 집착하게 되어 제대로 문제를 푸는데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부분들이 개선되고 현장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난다면 그 명칭이나 조직은 상관없다고 보지만, 현재의 소방방재청 시스템이 그대로 국가안전처로 옮겨진다면 이것은 문제라고 본다. 너무 급하게 조직을 바꾸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먼저 현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또 역량을 어떻게 극대화 시킬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현장대처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이원화된 조직체계는 문제가 될 여지가 많다."

한국 소방관 경력 6년의 이건씨는 지난 2001년 주한미군에 입사, 미 육군 캠프페이지 소방서를 거쳐 현재는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 이건 선임 소방검열관 한국 소방관 경력 6년의 이건씨는 지난 2001년 주한미군에 입사, 미 육군 캠프페이지 소방서를 거쳐 현재는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 이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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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도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소방관들 입장에서는 국가직 전환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방직 신분인 지금은 지자체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그래도 서울 같은 경우는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방에서는 개인 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국가직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방관 본연의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했을 때는 현재로선 국가직이 그런 쪽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소방공무원들의 전문가 정신이 확고히 선다면 국가직 전환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 미국도 소방관은 지방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하지만 미국은 50개의 나라가 합쳐진 연방제 국가라 단적으로 '딱 이거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뉴욕시 같은 경우에는 소방대원이 1만6000명이 시민 800만명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4만명 남짓한 소방관들이 국민 5000만명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뉴욕보다도 책임져야 할 인원이 두 배 정도 된다.

미국도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지난해 뉴욕 소방관들이 자신을 몸을 가꿔 식스팩을 드러낸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팔았다. 판매수익으로 개인 보호장구를 구매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뉴욕도 소방관들의 개인 보호장구 지급이 제대로 안된다고 볼 수 있다. 재정상태가 나쁜 지역은 장비가 굉장히 열악하다. 그래서 소방관에게 충분히 안전장구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방서장이 산업안전보건청으로부터 벌금을 맞는 경우도 생긴다."

- 우리는 소방관들이 광역지자체 소속이다.
"미국의 소방서는 주에서 운영하는 소방서, 또 재정자립도에 따라 정규적 소방대원과 임시직 소방대원이 같이 근무하는 소방서, 심지어는 의용소방대원으로만 구성된 곳도 있다. 주로 인구 2만 5천 이하의 중소도시에는 의용소방대가 많다. 기본적으로 재정자립도에 따라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방관에 대한 기본적 대우라든가 업무에 대한 존경심이 높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기부가 많고 사회봉사를 많이 하는 소방서에는 주정부나 연방정부에서 재정보조를 해준다. 기본적으로 소방관에 대한 시민의 존경, 소방 업무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은 시민이 도움을 주는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장 시스템 만드는 데 전문가들이 모여 1년 걸렸다"

- 미국의 경우 우리의 119에 해당하는 911구급차는 유료라고 알고 있다.

" 미국에서는 경찰, 긴급사태, 화재, 구급차를 요청할 때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 전화번호로 911번을 채택하고 있다. 911에 전화를 하는 것은 무료이지만, 911로 구급차를 요청하여 이용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구급차를 이용할 때는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구급차에 응급구조사 탑승여부, 환자 치료시 사용한 의료용품, 출동거리 등에 따라서 산출되는데, 한 번 이용하는데 200~800달러의 이용료를 내야한다. 심지어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착용한 고무장갑에도 15달러의 이용료를 부과하기도 한다."

- 미국도 9·11 테러이후 설립된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지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 했을 때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서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미국의 일선 소방서 얘기부터 하고 싶다. 미국은 소방서 한 곳의 정책을 수립할 때 소방관들과 각계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여기에는 보험회사 직원, 소방학과 교수, 과학자, 연구자, 소방서장, 말단의 소방대원들까지 참여해서 다양한 분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니 하나의 정책이 마련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께서 한 말씀 하시면 2~3개월 내에 뭔가를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문제가 되자 부시 대통령이 단일화된 현장 시스템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연방 담당자들이 모여서 안을 만드는데 1년 이상 걸렸다. 하나의 정책을 수립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려면 '더 이상 이만한 안이 나올 수 없다'라고 할 만한 안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당연하지 않은가? 대통령 한 마디에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내려는 우리가 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태그:#이건,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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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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