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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의 신자유주의 정책 공세가 거침이 없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삼성 금융 계열사의 금융 지주회사 전환 로드맵(2005.5)> 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여론과 정재계를 겨냥한 삼성그룹의 치밀한 준비 작업이 세간에 알려진 뒤, 지난 한 주간 이 후보의 발언 수위가 한층 노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재벌의 요구

막강한 재벌그룹이 은행까지 소유하려 하는 데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이 후보는 삼성 보고서가 공개된 뒤 참석한 세계지식포럼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너무나 경직된 금산분리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 폐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며칠 뒤 한 시사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후보는 또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와 성장 부진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며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출총제에 대한 과감한 철폐”를 주장했다.

10년 전을 돌이켜 보자. 대기업의 방만한 문어발식 확장과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는 과잉 중복 투자와 불공정한 내부 거래로 귀결되어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외환위기를 부르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이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열사 간 순환출자 축소를 규정한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 역시 외환위기의 뼈아픈 경험을 반영한다. 당시 대기업들이 소유한 종금사는 금융기관으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포기하고 재벌 대기업의 사금고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취약한 금융 시스템을 조장했다.

재계가 그동안 출총제와 금산분리에 대해 드러내놓고 강력하게 반발하지 못했던 것은 이 제도들이 가진 연원과 국민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 보고서의 기획 의도대로 2005년부터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이의 제기가 관료사회 일각에서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일부 언론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물밑작업이 이루어지더니 대선 국면에서 마침내 일제히 수면 위로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2금융권 1위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삼성

금산분리가 완화 또는 폐지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재벌이 삼성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삼성은 그룹 전체 자산 중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 ‘금융 재벌’로 변모했다. 2005년 기준으로 삼성 그룹 총자산 217조 원 가운데 금융사 자산이 132.8조 원으로 전체의 58.6%에 이른다. 자산규모 2위인 현대그룹과 4위인 SK그룹의 금융 계열사 자산 비중이 각각 23.3%, 3.1%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은행만 소유하지 못했을 뿐 제2금융권에서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선물, 삼성투신 등 모두 10개의 금융 계열사를 소유중이며 각 계열사는 대부분 해당 업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삼성 금융계열사 자산 규모는 은행계인 국민, 신한, 우리, 농협에 이어 국내 5위다. 전체 금융사 자산에서 삼성 금융계열의 비중은 외환위기가 발발한 97년 말 4.4%에서 8.2%로 두 배로 늘었다. 금산분리 정책이 폐지되고 삼성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단번에 금융그룹 1위 규모로 올라가게 된다.

삼성은 그룹의 장기적인 무게중심을 금융 쪽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노출시켜 왔다. 국내 생명보험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매출을 2010년까지 47조 원 규모로 늘려 아시아 5대 종합금융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 역시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을 2020년까지 글로벌 톱10 투자은행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 등이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게다가 출총제와 금산분리 폐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구도에도 긴요한 조건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의 금산분리 폐지 공약은 슈퍼 금융그룹을 노리는 삼성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한 세기 전 그리고 10년 전의 교훈

금산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명박 후보의 발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선동임이 금융연구원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세계 100대 은행과 보험사 중 지배주주가 산업자본인 경우는 각각 4개, 8개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다. 세계적 스탠더드는 금산분리이며 제2금융권에 국한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 나라가 너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셈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융합은 시민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온갖 독과점과 투기, 과잉 투자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낳고 끝내는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이러한 세기 전의 교훈으로부터 서구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어발 경영과 과잉 중복투자로 외환위기의 빌미를 제공하여 금융시스템과 국민경제를 망가뜨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재벌그룹이 불과 10년 만에 다시 금융에 깊숙이 손을 뻗고 있다. 게다가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는 근거도 없는 논리로 앞장서서 이를 선동하고 재벌을 대변한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교훈이 아직 부족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 본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 동시 게재됩니다.
** 정희용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미디어센터장입니다.



태그:#금산분리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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