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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6월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기자들 앞에 선 문창극 '사퇴발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6월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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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질의가 시작되자 법무부 국회 담당자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
"네? 질의 내용 말씀 드렸잖아요."
"판넬 드신다고는 안 하셨잖아요."
"그걸 말씀 드려야 하나요?"
"저희가 이런 건 처음이라...."
"저희는 늘 이렇게 합니다."

질의 내용 때문에 찾아온 줄 알았더니 내가 보좌하는 의원님이 들고 있던 판넬 때문이었다. 2011년 박병대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였다. 주택구입 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의혹이 있었는데 매수·매도가가 복잡하여 알아보기 쉽도록 표를 만들어서 보여주면서 질의를 했다. 타 상임위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각 자료에 깜짝 놀라다니. 법조계는 정말 보수적이구나 싶어서 나도 놀랐다.

박 후보자는 다운계약서 의혹에 대해 바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국회는 "고도의 청렴성을 유지하여야 할 대법관 후보자로서 다소 부족한 요소로 평가"되지만 "대법관으로서 직무 수행에 필요한 소신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지와 자세가 분명하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등 사법정책과 그밖에 사회적 약자 보호 등에 관하여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등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법관으로서 임명됨에 있어 적격"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인사청문회 탓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8인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중이다. 인사청문회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 여론재판식'이라는 지적이었다. 신상 털기나 여론재판보다 국정 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을 봐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인사청문회는 그다지 즐거운 업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인사검증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제도 개선,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발언이 내 마음과 같은 건 아니다. 대통령 발언은 안대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는 보좌진들 사이에서 "난생 처음 인사청문회가 하고 싶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적합 사유가 많았다.

결국 청와대는 인사 청문 요청서를 제출조차 못했고, 국회는 사실상 검증할 기회도 없었다. 문 후보자 낙마의 핵심적 문제는 인사 청문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있다. 여론 검증도 통과하지 못할 인물을 연속해서 국무총리 후보로 내세운 청와대의 대범함이 놀라울 뿐이다.

박병대 대법관처럼 문제점이 확인되었음에도 종합적으로 직무수행 능력이 인정된다면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도 있다. 정부의 볼멘소리처럼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 공격으로 점철되었다면 그는 대법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나의 첫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공교롭다는 말은, 당시만 해도 유시민 장관과 같은 당에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지금 나는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에서 일한다). 국회법 개정으로 2006년부터 국무위원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되었고, 그는 첫 후보자였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고, 여당도 우려를 표하는 등 긴장감이 최고조였다.

지난 2006년 2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 2006년 2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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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일하던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은 원내 진출 2년 차의 불타오르는 사명감으로 그의 모든 것을 살폈다. 안타깝게도(?)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부적절한 주식투자, 탈세, 논문표절 등 도덕성 측면에서 문제 삼을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책을 많이 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산도 별로 없었다. 흔한 암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그에게 혀를 내둘렀다. 결국 성평등 의식 검증과 의료 영리화 등 중요한 복지 의제에 대해 질의를 하였다.

인사청문회 날,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의원 선서를 하러 본회의장에 등장할 정도로 자유로웠던 그가 기름을 발라 2:8 가르마를 하고 인사청문회장에 나타났다. 웃지 않으려 애썼지만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던 상임위장에 웃음이 짧게 지나갔다. 인사청문회는 오후 8시까지 계속되었고, 다음날 오전에도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질의는 날카로웠고, 응답은 진지했다.

하지만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보험료 때문이었다.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자격이 변동된 즉시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납부했어야 하는데 1년 뒤에야 신고한 것은 장관으로 부적격 사유라는 것이다. 정확한 제도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격 변동자 98%가 후보자와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그의 사과와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사흘 뒤, 대통령은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처음 맺은 관계가 평생을 간다 했던가. 내가 속한 당의 대표직을 역임했지만 나는 아직도 '유시민 장관'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당시 유 장관은 의욕적이었던 만큼 국민연금 개혁, 기초노령연금 도입, 영유아 무상 예방접종 실시, 담배 값 인상 논란 등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갈등을 빚었다. 내 마음에 드는 장관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책임은 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와 무관하게 인사청문회의 벽은 그에게 유독 높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그를 장관으로 내정하자 한 달 가량 등원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도덕성과 직무수행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없다. 같은 기준을 적용할 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제도 개선 전에 필요한 것

최근 정부와 여당은 안대희·문창극 후보자의 낙마로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제도"라 했다. 그들은 인사청문회 거부는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참으로 놀랍고 편리한 고무줄 잣대다.

이런 상황이니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회 인사 청문회 제도를 정비해 결과적으로 기준을 완화하자는 의견이다. 후자의 방안 중 하나는 후보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청문회를 이원화하자는 것이다. 1차는 비공개로 도덕성을 검증하고, 2차는 공개로 업무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하자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청와대를 방문한 이완구(왼쪽)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청와대를 방문한 이완구(왼쪽)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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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럴 필요가 없다.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법 제14조에 따라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한 경우, 기업 및 개인의 정보 누설 우려가 있는 경우,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에는 비공개로 할 수 있다.

제15조 공직후보자 등의 보호 조항에 따라 후보자·증인·참고인 스스로 비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제16조에 따라 변호사, 변리사, 의사, 약사, 종교의 직에 있었던 경우 등 업무와 연관된 비밀과 국가기밀은 증언을 거부할 수도 있다.

충분하지 않은가? 신상 털기가 정말 염려된다면 인사청문회를 '비밀로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청문회에 앞서 정부가 인사검증을 더욱 철저히 하면 된다.

인사청문회는 악마의 절차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할 권한이 입법부에 있으므로 정부는 인사권 행사에 더욱 신중하게 된다. 임명에 실패하면 정치적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자신이 충분한 능력과 도덕성,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납득 시킬 좋은 기회다.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후보자와 여야가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도 있다. 인사청문회는 본래 이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선민 기자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에서 일합니다.



태그:#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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