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한국의 예술흥행비자(E-6)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인권위는 이 비자를 받고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렇듯 이미 예술흥행비자를 통한 외국인 여성의 인신매매 피해는 우리사회의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그러나 성매매 알선 영업을 벌이는 일당들의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와중에 관광비자로 입국해 성산업에 유입된 외국인 여성의 성착취 피해를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돈 빌려줄 테니 한국서 일하면서 돈 갚으라'던 A씨

2011년, 두 명의 태국 여성은 친구의 소개로 태국에서 만난 한국 남성 A에게서 '비행기 티켓값과 한국 입국에 필요한 돈을 빌려 줄 테니, 한국에 와서 관광도 하고 마사지숍에서 일도 하면서 돈을 갚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 남성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은 여성들은 관광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지만, 며칠간의 한국 관광이 끝나자, A는 태국 여성들을 '○○휴게텔'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매매업소의 사장 B와 실장 C에게 넘겼다.

여성들은 업소에서 성매매 단속에 나선 한국 경찰에 의해 구조된 후 외국인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로 옮겨졌다. 태국 여성들이 한국 경찰에 의해 구조된 후 수사기관은 A, B, C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죄로 입건해 수사했으나, 최종적으로 검사는 성매매알선 혐의만으로 기소하고 이후 열린 형사재판에서 3명 모두 성매매 알선죄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형사절차가 모두 끝난 단계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아래 공감)은 원고들을 도왔던 외국인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의 요청으로 원고들의 민사소송을 지원했다. 태국 여성들은 자신들을 한국으로 유인하고 성매매업소로 인계한 A와 자신들을 넘겨받아 성착취한 B와 C를 상대로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공감은 이 소송을 대리해 2년여에 걸친 1심 소송 끝에 2014년 6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피고들이 형사절차에서 인신매매죄로 처벌받았다면 민사소송에서의 불법행위책임 입증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민사소송에서는 수사기관에서의 원고들(태국여성) 진술과 피해자 지원시설에서의 상담기록이라는 제한된 자료를 토대로 피고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법원, '관광비자로 입국 → 성산업 유입에 따른 피해' 인정

공감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수행하면서 피고들의 불법행위책임의 발생원인으로 두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는 '피고들이 원고들을 성매매에 종사시킬 목적으로 원고들을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동시키고 원고들을 인수·인계한 행위'가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봐 인신매매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을 물었다.

둘째는 인신매매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A가 원고들에게 대여한 항공권대금 등 금전채무를 변제받을 목적으로 채무자인 원고들을 성매매업소에 데리고 가서 성매매알선행위자인 B, C에게 채무자를 인계한 이후 채무자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성매매알선행위자로부터 직접 채무자의 성매매대금으로부터 일정 비율의 금전을 채무가 전액 완제될 때까지 수령한 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두 번째 주장과 관련하여 A는 원고들을 '○○휴게텔'에 넘기고 돈을 다 받을 때까지 B와 C에게서 직접 원고들의 성매매대금을 분배받았다는 사실을 경찰 수사 때부터 인정했다. 이에 대해 '내게 갚을 돈이 있으니까 업소에 데려다 준 것이다, 좋은 취지로 도와준 것뿐인데 경찰 조사를 받으니 화가 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빌려주었다고 주장하는 돈을 받기 위해 '한국어와 한국 지리를 모르고 돈도 없고 여권은 빼앗긴 채 다른 대안이 없는' 원고들을 성매매업소에 넘긴 행위가 선행이었다는 주장이었다.

공감은 피고 A의 기망으로 원고들이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경위, A가 원고들의 여권을 압수함으로써 원고들에 대한 실질적 지배·관리가 성립했다는 점, 피고들이 A의 집과 '○○휴게텔'에서 원고들의 자유를 제한했던 것, 성매매 강요의 경위, 성매매대금의 착취 등을 지적했다.

법원은 피고들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500만 원의 지급을 명하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들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이유에 대해, '원고들과 피고 A의 관계, 원고들의 입국 경위, 피고들 사이의 관계, 원고들이 피고 B, C의 성매매업소에서 근무하게 된 경위, 피고들의 원고들에 대한 감시 내용, 원고들이 성매매로 얻은 이익이 분배된 내역, 원고들의 한국에서의 생활 내용, 관련 형사사건에서의 원고들과 피고들 및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등'의 여러 가지 사정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 판결은 불법행위책임의 근거를 인신매매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고들과 피고들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상담기록, 원고들이 재판과정에서 여러 차례 제출한 진술서 내용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인신매매와 성착취 피해자인 원고들 주장을 인정하였다는 점, 예술흥행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여성의 인신매매 피해를 인정한 기존 판결에 더해 관광비자로 입국해 성산업에 유입된 외국인 여성의 성착취 피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덧붙이는 글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 http://withgonggam.tistory.com/1442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이 기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가 쓴 글입니다.



태그:#외국인 여성 성매매, #연예흥행비자, #관광비자, #인신매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댓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적 인권을 보장하고,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