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월 12일, 나는 오늘부로 '수배자'가 되었다. 이제 내 명의의 통장은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언제든 검문검색에 걸리면 곧장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유는'불법집회'를 이유로 부과된 벌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얼마간 1주일에 한 번씩 문자를 보내 벌금납부를 독촉했고, 결국 납부기한이 7월 12일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그런데 최후통첩이든 선전포고든 돈이 없는 나는 벌금을 내지 못했고 결국 수배자의 몸이 되었다. 

총 금액은 1500만 원. 시급 300만 원 받는 삼성전자 임원은 딱 5시간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지만 최저임금 5210원(2014년 기준) 받는 알바들은 1년 꼬박 일해도 벌 수 없는 큰돈이다. 이렇게 많은 벌금이 부과된 이유는 바로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때문이다.

알바노동자들이 경총의 문을 두드린 이유?

알바연대가 지난해 4월 25일 오전 7시 20분 경, 경총 포럼(제187회 조찬세미나 경총포럼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추진방향’)이 열린 조선호텔 2층 오키드룸에서 이희범 경총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 경총 포럼 회의장에 급습한 당시 알바연대 회원을 알바연대가 지난해 4월 25일 오전 7시 20분 경, 경총 포럼(제187회 조찬세미나 경총포럼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추진방향’)이 열린 조선호텔 2층 오키드룸에서 이희범 경총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 알바연대

관련사진보기


알바노조는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자고 외쳤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알바를 비롯한 저임금노동자들이 "이대로 못 살겠다"는 몸부림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과 경제력이 비슷한 OECD 가입국가들 시간당 최저임금 평균은 9천원 수준. 통계청이 발표한 34세 이하 단신근로자 평균생계비도 시급 9천원 수준이니, 5천원 수준의 최저임금은 말도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장님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경총은 일관되게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해왔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상공인들도 망하고 나라 경제도 망한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그런데 경총은 정작 중소상공인들을 쥐어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감몰아주기, 높은 임대료 등을 해결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또한 나라 경제 걱정하던 경총 회장은 조세피난처로 재산을 빼돌린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중소상공인 걱정과 쥐어짜기, 나라경제 걱정과 재산 빼돌리기가 공존하는 경총. 우리는 이들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경총의 문을 두드렸다. 공문을 보내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경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그러다 말겠지 싶었나 보다. 그래서 만날 방법을 연구하다 경총 사장님들이 호텔에서 아침 먹으며 회의하는 곳에 피켓 들고 찾아갔다. 지난해 4월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10초도 안 되어 밖으로 쫓겨났고, 담당자들에게 항의하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도중 경찰에 연행까지 되었다.

억울한 심정에 경총회관으로 찾아갔다. 경총회관을 다 틀어막고 최저임금 동결주장을 철회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시위에 나온 알바들은 고작 6명에 불과했다. 그래서 1층 높이의 처마 위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항의의 최대치가 그 정도였다. 그리고 또 경찰에 연행되었다. 우리는 매번 경총이 아닌 경찰 앞에서 "최저임금 동결되면 큰일 난다"고 호소해야 했다.

그 이후로 많은 시위에서 연행된 조합원들이 벌금을 받았고 현재까지 1500만 원 가량이 쌓였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조합원들도 있어 벌금이 늘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법정에서도 항의했다.

"우리가 사람을 때렸나. 기물을 부셨나. 행사장에 항의하러가고 처마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친 것이 사회 안전을 해치는 그리도 심각한 불법행위란 말이냐.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집회신고여부만 따지고 앉아 있냐. 법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거냐."

판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지당함을 호소하든 부당함을 토로하든 우리는 그저 불법시위자들일 뿐이었다.

2015년 최저임금 5580원... "나는 벌금 낼 돈이 없다"

경총 처마에 올라서지도 않은 나는 경총회관 건물 밖에서 연행되었다. 주동했다는 이유로 벌금 190만원이 나왔다.
▲ 서울서부지방검찰청으로부터 고지된 벌과금납무명령서 경총 처마에 올라서지도 않은 나는 경총회관 건물 밖에서 연행되었다. 주동했다는 이유로 벌금 190만원이 나왔다.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지난 6월 27일 오전 5시, 내년도 최저임금이 5580원으로 정해졌다. 올해도 역시 경총은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다 막판에 10원짜리를 던지며 흥정에 나섰고,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370원 인상안이 그냥 통과되었다.

매년 이런 식이다. 경총은 내년에도 분명히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할 것이다. 이유는 '토시하나까지' 올해와 똑같을 것이다. 그러다 막판에 흥정이 벌어질 것이고 공익위원들의 심도 있는 고민 속에 200~300원의 중재안이 툭 던져질 것이다. 운이 나쁘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할까. 경총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중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참고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더 빨릴 피도 없는 알바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다. 합법적으로 요구하는데도 경총이 들어먹지 않으면 불법적으로라도 경총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또 벌금을 받고 또 수배자가 되더라도 경총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최선이다. 비록 벌금을 못 내 수배자가 되고 끌려가는 신세가 될지 모르지만 경총을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벌금 낼 돈이 없다.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그런다고 겁먹는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돈으로 짓누르려는 '천박한' 벌금 탄압에 우리는 '고급진' 연대의 힘으로 대항할 것이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 죄다 우리보다 최저임금 2배·3배 높은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 최저임금 때문에 물가폭등 안 했고, 중소상공인 안 망했다.

그런 게 걱정되면 최저임금 붙들 게 아니라 경총에 속한 재벌들이 가진 걸 내놓도록 해야 한다. 수백 억의 주식을, 수십 조의 부동산을, 수백 조의 현금재산을 조건 없이 털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다. 벌금탄압에도 알바들의 '시비걸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최저임금 투쟁 벌금, 함께 모아주세요!

오는 7월 26일, 최저임금 투쟁 벌금마련 후원주점이 열린다.
▲ 특명 : 동지를 구하라! 오는 7월 26일, 최저임금 투쟁 벌금마련 후원주점이 열린다.
ⓒ 알바노조

관련사진보기


알바노조는 최저임금1만원위원회와 함께 오는 7월 26일 벌금마련 후원주점을 엽니다. 최저임금 운동이 더 열심히, 더 열렬하게, 더 과감하게 펼쳐지길 바라신다면 저희와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온라인 후원).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구교현은 알바노조 위원장입니다. www.alba.or.kr 알바노조(02-3144-0936)



태그:#최저임금, #알바노조, #알바연대, #경총
댓글16

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