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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주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신이 바라본 현시점 한국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지난 24일 끝난 인사미술관의 ‘선샤인’전에 호주 감독 솔룬 호아즈는 ‘서울일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출품했다. 영상제가 아닌 미술전시회에서 소개된 탓인지 내가 상영관을 찾았던 날 관람객은 나와 나의 동행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솔룬호아즈 감독은 1998년부터 2000년 3월까지 2년간의 사건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IMF나 금강산 여행 첫출항, 서해 교전 등 그간에 있었던 한반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담겨 있고 그 시기 남북의 분단 문제로 파생된 고난을 겪고 있는 몇 사람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모내기’라는 그림으로 10여년간 국가보안법과의 기나긴 싸움을 했던 신학철 화백,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책을 썼다는 이유로 기소된 이장희 교수, 통일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안고 살아가는 홍노인, 그리고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장기복역수 등….

솔룬호아즈의 작품이 나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은 단순히 이번에 발표한 ‘서울일기’때문이 아니다. 이미 그녀는 1990년대의 북한의 모습을 담은 ‘평양일기’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녀의 작품은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국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북한의 평양영화축제뿐만 아니라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대학이나 기타 인디영상제를 통해 상영되었다. 심지어 KBS 일요스페셜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일부 삭제한 상태로 방영하기도 했다. 바로 ‘평양일기’를 만든 감독의 대조적인 작품이기에 ‘서울일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그리고 한국이 그녀의 ‘평양일기’에 관심을 표한 것은 아마도 그것이 남도 북도 아닌 제3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그녀의 작품 속에서 보여진 북한의 모습은 한국의 방송사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와는 달랐다. 우리가 아는 북한의 실상과 달랐다는 것이 아니라 취재진을 대하는 북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랐고, 이를 취재하는 취재인의 자세가 달랐다.

취재기간 동안 솔룬호아즈의 가이드를 맞은 북한 안내인은 여전히 체제 선전에 열중해 있었지만 취재기간 동안 솔룬호아즈가 만난 일반 사람들은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아마도 남한의 취재진이 아니어서 좀더 자유롭고 솔직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하는 솔룬호아즈는 아주 공격적이었다. 감히 남한 취재진이라면 물을 수 없는 내용들을 거침없이 던졌다.

한 대목에서 북한 안내인이 백두산에서 김일성과의 연관성을 한참 설명하기도 하고 어떤 촬영지에서는 취재를 막기도 하는데 솔룬호아즈는 왜 그러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때 북한 가이드의 답변은 제국주의자나 어떤 나라(아마 한국을 지칭하는 말)에서는 마구잡이로 취재해 가서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취재내용을 이용해 먹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솔룬호아즈는 더 이상 공격적일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당신들의 체제 선전하는 것에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즉 이 말은 당신들이 백두산을 보여주고, 그리고 어떤 것은 안보여주고 하면 당신들 원하는 대로 취재하게 해서 북한체제 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거기에는 북한 안내인도 어떤 대답을 하지 못했다.

좌우지간 그녀의 작품을 풀버전으로 보고난 후(방송을 통해서 볼 때는 일부분이 삭제되어 있어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 보게 됨)의 느낌은 아주 생경한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당연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곳은 아주 경직된 사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느낌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평양일기’를 본 남쪽 사람도 북쪽 사람도 아닌 사람들이 받은 느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면 ‘서울일기’를 보고 난 느낌은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한국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외국인이 본 새로운 시선을 기대했는데 어디에도 신선한 시선은 없었다. 물론 외국인이라는 한계를 딛고 한국의 다양한 문제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충실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반도의 두 나라를 대조하는 작업의 연장선상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서울일기’는 한반도 남쪽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와 느낌이 너무도 똑같았다.

그들의 주장과 그들의 작품에서 담아내는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운 시선을 기대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그는 줄곧 남북 대치 상황이나 국가보안법의 피해 사례, 한국 사람들의 시기별 통일에 대한 생각 등을 쫒아다닌다.

그녀의 기획의도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평양일기’를 보고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두 편의 작품 속에서 한반도의 통일문제만을 다루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서울 일기’에는 온통 통일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평양일기’에서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냥 담담하게 북한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하는 의지들이 보였다. 물론 취재를 위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아서인지 정말 절박한 북한의 모습은 없었지만 우회적으로라도 그런 모습을 담아보려고 애써고 있었다.

‘서울 일기’는 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현 시점에서 가장 큰 고민과 고통은 남북 분단에서 파생하며, 고통과 고민 그 자체가 바로 통일 문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격으로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모두 분단 상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겨운 삶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을 옹호하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기소된 이장희 교수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중이었고, 감독의 한국 가이드를 하던 여학생도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해교전으로 조업을 해야 할 어민들은 피해를 입고 있었고….

그녀가 포착한 한국의 현실이나 한국민들의 고민의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본인이 아쉬운 것은 그녀의 기획의도대로라면 그런 문제들만 붙들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을 나름대로 60분가량의 작품에 담아내려고 했다면 그리고 그 기획의도가 ‘평양일기’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었다면 한국민들의 또 다른 고민이나 다른 현안들을 왜 다루지 않았나 하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정치권력은 통일문제를 정권이 난처한 시국이 되면 번번히 시국전환용 카드로 사용해 왔다. 그래서 나는 매년마다 반복되는 여름의 통일운동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정치권력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대우자동차의 대규모 해고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프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오늘, 남북이산가족 방문단이 도착하고 대우자동차 사람들의 아픈 현실이나 눈물겨운 삶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항상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제3자로서 솔론호아즈가 좀더 객관적이기를 바랬지만 그녀는 마치 통일운동의 대변인 듯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 ‘서울일기’는 바로 한국의 ‘통일일기’에 불과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니 이유를 알 수도 있을 듯하나 나의 생각을 엄청나게 편향된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인색한 칭찬을 하자면 그녀의 작품이 적어도 한 가지 사실에서만은 정말 객관적이었다는 것이다. 문민 정부니 해서 우리 사회의 경직성이 많이 완화된 듯하지만 실제 ‘서울일기’ 안에서 보여지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직된 사회였다. 체제문제나 이념에 대한 아집에 있어서는 북한사회의 경직성이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서해교전이 있은 후 교전에서 수훈을 세운 병사들의 포상이 있는 날, 감독은 시상식 현장을 찾았다. 그녀의 카메라에 담긴 장면은 북한의 모습이나 다를 바 없었다. 포상 사병들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병정의 모습이었다.

취재진이 정말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라고 했지만 미리 준비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취재진이 더 길게 물고 늘어지자 그 사병은 갈등이 생기는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심지어 한 장교는 인터뷰를 저지하고 그 현장에서 사병의 인터뷰 내용을 재교육시키고 있었다.

이국인의 눈에 그런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로 그녀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만든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한국사회의 경직성이 피사체들의 아주 자잘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 되고 있었다.

작품을 작품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시사적인 평을 하다 보니 나의 평이 인색해졌지만 작품만을 놓고 볼 때, 그리고 작가를 평가할 때 이 작품은 외국인이 포착한 20세기 마지막 한국의 모습을 간직한 작품으로 작품성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다음에 또 상영기회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임은 틀림없다.

좌우지간 그녀의 작품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부분적으로나마 공개되었고 앞으로 각종 영상제나 시국관련 모임들에서 상영될 것이다. 원본 그대로의 방송은 불가능하겠지만 혹 한국의 방송사에서 또 그녀의 작품을 방영할는지도 모른다. 이후 이 작품 ‘서울일기’를 보게 될 분들에게 먼저 본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아쉬움을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감독 ‘솔룬호아즈’에 대하여>

솔룬호아즈는 호주국립대학에서 아시아학과 일본어를 수학했으며 스윈번 테크놀러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78년 처녀작 ‘신성한 파괴자-Sacred Vandals’(일본 오키나와 인근 조그만 섬에서 토착 무속인과 도시에서 돌아온 젊은이를 중심으로 빚어지는 갈등을 다룬 영화)와 88년작 ‘녹차와 농익은 체리-Green Tea and Cherry Ripe’를 포함한 여러 영화를 제작했으며 현재 멜버른에 살고 있다. 97년에 제작한 68분짜리 다큐멘터리 ‘평양일기’는 94년,96년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국 영화제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제작된 것으로 9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출품했고 8개국 방송사에서 방영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degadoc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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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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