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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후방으로 보내는 또는 후방에서 전선으로 보내는 편지는 예나 지금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많이 취급되어 왔다. 일제 말기에 나온 군국가요를 보아도 <신춘엽서>, <목단강(牧丹江) 편지>, <결사대의 아내>, <아들의 혈서> 등에서 이미 그러한 예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아들의 혈서>를 부른 백년설(白年雪)은 그 후속작 격으로 역시 편지를 소재로 한 <위문편지>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들의 혈서>가 전선에서 후방으로 보내는 것인 반면 <위문편지>는 후방에서 전선으로 보내는 것이니, 서로 짝을 이루었던 셈이다.

조명암(趙鳴岩) 작사, 남방춘(南邦春) 작곡, 서영덕(徐永德) 편곡으로 나온 <위문편지>는 <아들의 혈서>보다 약 반년 정도 뒤인 1942년 9월 신보로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음반번호 31126).

광복 이후에도 다시 음반이 나올 정도로 비교적 잘 알려졌던 <아들의 혈서>와는 달리 <위문편지>는 가사지나 음원이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작품 내용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오케레코드에서 <위문편지>를 선전하기 위해 내건 문구를 보면 의심할 바 없는 군국가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일선(第一線)과 총후(銃後)를 맺어 놓은 순정(殉情)의 지도(地圖)다. 아름다운 풍속(風俗)의 위문(慰問)편지다

‘순정’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한자 표기 ‘純情’은 선전문구에 나오는 ‘순정(殉情)’과는 전혀 다르다. <위문편지>에서 말하는 순정(殉情)은 글자 그대로 나라를 위해, 또는 나랏님을 위해 몸을 바쳐 죽는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군국주의 색채를 띤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백년설이 부른 것은 아니지만, 그가 부른 <아들의 혈서>와 대단히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위문편지>가 발매된 때보다 약간 더 늦은 1942년 12월 신보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나온 신가요 <군사우편>이 그것인데(음반번호 40900), 이 곡에는 ‘아들의 소원’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기도 하다.

어머님의 편지를 앙가슴에 품고 가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진군 삼천리/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오면 눈에 얼며/ 병정으로 죽는 것이 소원이었소
(대사)어머니 어머니 이 아들의 죽음은 어머님의 자랑입니다. 결사대로 떠나는 이 밤, 어머님의 편지를 안고서 달빛이 쏟아지는 참대숲으로 뛰어듭니다. 피에 젖은 적삼 하나 받으시거든 내 아들 잘 싸웠다 자랑해 주시옵소서
살을 만져 보아도 어머님 살이었소/ 뛰는 맥을 짚어 보아도 어머님 핏줄/ 이 아들의 몸을 던져 나랏님께 바친 뒤에/ 피에 젖은 적삼 하나 보내오리다

(가사지 내용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나랏님을 위해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죽은 아들의 피가 묻은 적삼을 내보이며 자랑까지 하라는 당부를 보면, <군사우편> 역시 <아들의 혈서>를 비롯해 이제까지 보아 온 여러 군국가요의 표현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군사우편>은 이가실(李嘉實) 작사, 이운정(李雲亭) 작곡, 핫토리 료이치(服部良一) 편곡에 이규남(李圭南)의 노래로 나왔는데, 이가실과 이운정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명암과 이면상(李冕相)이 사용했던 별명이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조명암과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 위원장을 지낸 이면상은 광복 이전에 활약한 유행가 작가 가운데 대표적인 월북(또는 재북) 인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작사자와 작곡자뿐만 아니라 노래를 부른 가수 이규남도 역시 6·25 전쟁 중에 월북해서 이후 북한 음악계에서 오랫 동안 활동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곡이 발표될 당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이겠지만 이후 상황에서 보자면 <군사우편>이라는 작품이 안고 있는 특기할 만한 내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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