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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마을은 벌가가는 버스 종점이다.
▲ 가정마을 풍경 가정마을은 벌가가는 버스 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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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간 길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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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들려오는 교회종소리

자매마을에서 다시 공정마을을 거쳐 벌구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넘어서고 있다. 슈퍼에 들어갔지만 그리 구미를 당기는 것이 없다. 비스킷 한 봉지를 샀다. 한적한 곳을 찾아 마을로 들어서니 교회를 지나 벤치가 있다. 뒤로 신당이 금줄을 치고 있다. 벤치에 앉아 점심으로 비스킷을 먹었다. 아름다운 바다가 그림을 보고 있는 듯 편안하게 감싼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 자매마을 해안도로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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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 조용한 마을에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정겨운 종소리. 도심에서는 들어보기 어려운 소리가 되어 버렸다. 조금 있으니 찬송가 소리도 낭랑하게 울려온다. 마을의 일부분이 되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소리로 들린다. 도심 속의 우렁찬 예배소리가 아닌, 억지를 강요하는 힘찬 설교의 목소리가 아닌, 옛날 시골 풍경 속의 그런 교회로 다가온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걸어가면서 한 마디 한다. "먹고 다 싸가지고 가세요" 마음으로 느끼는 것과 현실은 언제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내 배낭은 물병 두 개만 들었는데, 무엇을 버린단 말인가.

방풍림 속에 찾아든 봄

내가 앉아 있던 곳은 자매마을 방풍림이 시작되는 곳이다. 신당 뒤로 느티나무, 도토리나무 등이 새순을 막 피어내고 있다. 논에는 자운영이 분홍빛을 펼치며 마음을 들뜨게 한다. 나는 이른 봄 자운영을 보면 꿈 속을 헤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만화영화 중간 절정부분에 꼭 나오는 장면. 하늘을 날아다니며, 꽃들이 같이 어울리는 그런 상상.

논에는 가득가득 자운영이 피어난다.
▲ 자운영 논에는 가득가득 자운영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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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림 속으로 들어서니 나무 벤치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숲속의 푸른 기운이 넘쳐나고, 노란 괴불주머니가 주렁주렁 주머니를 달고 있다. 홀아비꽃대도 하얀 솔들을 펼치며 모여 있다. 누런 소 한 마리가 나를 발견하고 무척 놀란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풀을 다시 뜯기 시작한다.

보리피리 불며

바다를 끼고 활처럼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갈매기 한 마리가 바람을 맞고 있다. 가끔 마주 오는 차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벙거지 모자에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서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길가 밭에는 보리가 피었다. 깜부기도 군데군데 보인다. 어릴 적에 보고 처음 보는 깜부기다. 옛 추억이 생각난다. 보리피리를 불어보고 싶다. 깜부기 보리를 꺽어 보리피리를 만들었다. '삐리리리~'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 것을 기대했건만 '삐이이~' 소리만 연신 나오고 있다. 추억을 많이 잊어버리고 살았다. 어릴 적에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친구들은 만나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군데군데 깜부기가 있다. 깜부기는 병든 보리.
▲ 보리밭 군데군데 깜부기가 있다. 깜부기는 병든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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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또 다른 끝자락 공정마을

공정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해안을 끼고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은 어구(漁具)라고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공정마을은 굴양식 어구를 길가에 쌓아놓고 있다. 도로 아래 물 빠진 바닷가에서는 양식 어구를 손질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담장에 커다란 후박나무를 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의 모습을 보고 굴상자를 경운기에 실어대던 아저씨는 '뭔 사진을 찍고 다닌대?' 하면서 묻는다. 별로 반갑지 않은 말투다. '마을이 아름다워서 찍어요' 멋쩍어서 얼른 걸음을 옮긴다.

전망대에서 내려본 공정마을 풍경
▲ 공정마을 전망대에서 내려본 공정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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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리에서 다시 고갯길로 올라가니 전망대가 보인다. 작년 연말에 해넘이 전망대를 만들었단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여자만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바로 아래로 조발도, 낭도, 사도가 이어진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찔레 먹던 추억을 되새기며

21번 시도가 끝나고 862번 지방도로고 바뀐 해안도로는 계속이어진다. 고개로 올라서니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방향이 바뀌니 고흥 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나를 밀어내려 한다. 차는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다. 도로 양 옆으로는 풀들이 점차 도로로 넘어 들어오고 있다. 찔레가 새순을 길게 내밀고 있다. 어렸을 때 심심풀이로 꺾어 먹던 기억에 긴 찔레순은 따서 가시를 따고 껍질을 벗겨 먹어본다. 상큼한 물맛이 느껴진다. 가는 길에 계속 꺾어서 입에 넣는다.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대로 다닌다.
▲ 벌가로 가는 해안도로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대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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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오지 않은 길을 뒤로 돌아서 걸어간다. 기분이 색다르다. 점점 멀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것도 즐겁다. 앞으로는 바다가 멀어지고 있지만 뒤로 돌아보면 바다로 가까이 걸어가고 있다.

정자가 아름다운 가정마을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 아래로 좁은 공간을 이용해 논을 만들었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논을 갈아엎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멀리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탈진 곳에 커다란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계단식 논밭이 그럭저럭 살아가기 충분한 모양이다. 풍요롭게 보인다. 가정(佳停)마을이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 가정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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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쪽으로 정자와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마을로 들어서서 정자에 가니 가정(佳停)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그래서 가정마을인가 보다. 보통 마을 정자는 마을 아래가 있기 마련인데, 이 정자는 마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좋다. 마을은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경운기 한 대 겨우 다닐 구불구불한 골목과 돌담길로 이어진 마을을 따라 올라간다.

나는 반갑지 않은 구경꾼 일 수밖에 없다

여기도 양파를 수확하는 일손과 논밭에서 힘들게 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같은 여행객들은 별로 반가워 하지 않은 표정이다. 관광객을 보고 돈벌이를 하는 마을도 아니다. 마을 내 편의시설이래야 작은 슈퍼 하나가 전부다.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들게 일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여행 다니는 나의 모습이 달갑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반갑지 않은 구경꾼일 뿐이다.

봄. 농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
▲ 밭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습 봄. 농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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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는 어감이 도시인들에게는 정감 있는 단어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골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좋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시골이라는 곳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바닥에 배를 깔고서 다 구경했으면 잘 가라는 무표정한 누렁이와 뭐가 그리 궁금한지 고개를 쭉 빼고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누렁소가 나를 배웅해 준다.

참 천연덕스럽게 누워있다.
▲ 누렁이 두마리 참 천연덕스럽게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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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마을을 뒤로하고

가정마을을 뒤로하고 도로를 걸어 나간다. 길은 더욱 구불거린다. 동그란 표지판에 20이라는 속도 표지판이 보인다. 지켜질까? 아마 조심해라는 경고문구로 받아들여야겠지? 오늘 최종 목적지인 벌구(伐九)마을이 보인다. 산비탈을 타고 해안까지 마을은 이어진다. 바라본 마을은 여전히 평화롭게만 다가온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허전한 마음만 감돌아 나가고 있다.

벌구마을이 산 비탈을 타고 자리잡고 있다.
▲ 벌구마을 벌구마을이 산 비탈을 타고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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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자매리에서부터 또 두시간을 걸었으니 쉬는 시간을 빼고 네 시간을 걸었다. 오랜 시간 아스팔트를 걸어선지 허리에 통증이 밀려온다. 더 걸어가 볼까 고민하던 중에 버스가 온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얼른 올라탄다. 맨 뒷좌석 의자에 몸을 기댄다.

가정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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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포삼거리에서 장수리 삼거리까지 대략 7㎞, 다시 벌구마을까지 6㎞. 전체 13㎞정도 짧은 거리지만 해안가를 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걸어갈 수 있는 멋있는 길이다.



태그:#여수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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