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 전통 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막 오른편에 만석중 인형이 서 있다. 용과 해 인형이 함께 등장했다.
▲ 만석중놀이 우리나라 전통 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막 오른편에 만석중 인형이 서 있다. 용과 해 인형이 함께 등장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8월 1일, 경남 거창군 고제면 거창귀농학교.

12호 태풍 나크리의 영향 때문인지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스텝으로 참여를 했던 필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 공연은커녕 물폭탄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올해로 25회를 맞은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그렇게 시작부터 삐꺼덕거렸다. 야외공연은 아웃도어 활동만큼이나 날씨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듯 올해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공연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일 뻔했다.

공주에서 거창으로, 아시아1인극제의 이동

<아시아1인극제>는 민속극의 대가인 심우성 선생의 주관으로 1988년, 서울에서 1회 대회가 개최됐다. 첫 대회 이후부터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다 1996년, 충남 공주에 공주민속박물관이 들어서고 아시아1인극제도 그 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이때부터는 명칭도 <공주아시아1인극제>가 된다.

아시아1인극제가 <거창아시아1인극제>로 또 한 번 옷을 갈아입게 된 건 2007년이었다. 거창귀농학교의 다른 이름은 삼봉산문화예술학교인데 그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1인극제는 거창에서 개최되고 있다.

작품명 '극강을 넘어서다'. 민족무예단 삼족오.
▲ 극강을 넘어서다 작품명 '극강을 넘어서다'. 민족무예단 삼족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1인극의 영어 명칭은 'monodrama'다. 즉, 무대에 오른 한 명의 배우가 각양각색의 극중 인물상들을 풀어내듯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1인극이라고 하면 판소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인극은 배우 홀로 무대에 오르기에 다인극보다는 극적인 갈등 전개나 대립과정이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인극은 연극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 1인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식의 전위적인 모습은 모든 것을 주관했던 제사장의 무속무와 그 뿌리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시아1인극제에는 쟁쟁한 명사들이 무대에 올라 자리를 빛내주었다. 판소리의 거장 박동진 명창이 <진국명산>을 전해주었다. 공옥진 여사의 <심청전>도 무대에 올려졌다. 그 외에도 내로라하는 아시아 각국의 수많은 공연자들이 아시아1인극제의 무대를 수놓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도 문제였다. 그렇다. 또 돈이 문제였다. 2014년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아시아'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국내파'들로만 꾸려졌다. 더욱이 초청된 국내파들은 공연료도 받지 않고 재능기부를 해주었다. 자금이 없으니 아시아 각국의 재능 있는 연극인들을 초청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작년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에도 또 자금난에 허덕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시아1인극제'가 '우리나라1인극제'로 아예 굳어져 버릴지 모른다는 염려가 앞선다.

우리문화연구회
▲ 난타공연 우리문화연구회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

비가 계속 오고 있었지만 공연은 시작되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빗줄기가 그리 세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대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관객들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1인극이 바탕이 되지만 다인극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경기민요나 난타퍼포먼스, 만석중놀이 같은 다인극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우리문화연구회'에서 진행한 난타퍼포먼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난타와는 좀 다른 묘미가 있었다. 장고, 꽹과리 같은 민속 악기들이 가미되어 독특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난타와 민속악기와의 만남은 색다른 '퓨전사운드'를 선사했다.

현재의 시대상황을 담은 공연도 있었다. 마임 전문가 김봉석이 연기한 '휴먼 에볼루션'이라는 작품은 자본과 경쟁의 노예가 된 인간들의 모습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담은 작품이다.'휴먼 에볼루션'은 주인공이 만 원짜리 지폐를 허공에 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때 주인공은 '미친놈'처럼 발광을 한다. 돈 때문에 주인공이 돌아버린 것이다.

조옥형이 연기한 '첨탑 위 꽃과 나비'라는 작품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다룬 것이다. 바로 밀양송전탑에서 투쟁하고 있는 '밀양 할매'들에 대한 이야기를 1인극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첨탑 위 꽃과 나비'에서 조옥형은 넘어지고, 뒹구는 몸개그(?)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넘어지고 뒹구는 모습이 밀양에서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작품명 '첨탑 위 꽃과 나비'. 조옥형
▲ 첨탑 위 꽃과 나비 작품명 '첨탑 위 꽃과 나비'. 조옥형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 옛날의 '블록버스터', 만석중놀이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대미는 만석중놀이가 장식했다. 만석중놀이는 부처님오신날을 전후로 하여 사찰 인근에서 실시된 우리나라의 전통 그림자극이다. 만석중놀이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중요무형문화재 3호)', 유랑광대들의 '발탈(중요무형문화재 79호)' 등과 함께 전통인형극으로 공연되었으나 1920년대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제는 만석중놀이가 조선인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선전수단이 될 것을 우려했다. 일제는 만석중놀이를 금지시켰고, 그래서 결국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83년, 각고의 노력 끝에 심우성 선생에 의해 다시 재현되었다.

만석중놀이의 기원은 고려시대 개성 지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사찰에서는 민중교화와 포교의 목적으로 그림자놀이를 이용하였다. 초파일을 전후하여 사찰 인근에 넓은 광목천을 펼쳐놓고 횃불을 이용하여 그림자놀이를 했던 것이다. 마땅한 유희거리가 없었던 그 옛날, 어두운 밤 중 횃불에 비쳐진 십장생, 용, 잉어 등의 그림자들은 당시 백성들에게는'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를 들어 심우성 선생은 만석중놀이를 우리의 원초적 영화라고 평가했다.

여의주를 두고 용과 잉어가 다투는 장면에서  '운심게작법'을 추고 있는 한대수 거창귀농학교 교장. 귀농학교 교장이면서 연극인인 한대수 선생은 전통 민속무의 대가로 불리고 있다.
▲ 만석중놀이 여의주를 두고 용과 잉어가 다투는 장면에서 '운심게작법'을 추고 있는 한대수 거창귀농학교 교장. 귀농학교 교장이면서 연극인인 한대수 선생은 전통 민속무의 대가로 불리고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만석중이라는 큰 나무 인형은 막의 한편에 서 있다 십장생들이 움직일 때마다 가슴과 머리를 손과 발로 탕탕 친다. 이 소리는 마치 죽비소리처럼 들리는데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로 울려 퍼지는 것이다. 천년 묵은 용과 잉어가 나타나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절정 부분에서는 한 승려가 막 앞에 나타나 승무를 춘다. 이 춤은 운심게작법이라는 불교 의식무로 나비춤과 바라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만석중놀이에 쓰인 무대는 높이가 5m, 폭은 7m에 달했다. 그래서 작은 소극장에서는 공연을 하기가 힘들다. 무대의 크기도 있고 하니 만석중놀이는 <거창아시아1인극제>처럼 실외극으로 공연되는게 가장 좋을 듯싶다.

빗줄기도 소품이 될 수 있을까?

만석중놀이는 40여 분이나 상연됐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방해물이기보다는 오히려 또 하나의 소품처럼 느껴졌다. 막 뒤에서 인형을 조정하고 있던 배우들은 '수중전'을 치르느라 고생을 했겠지만 그림자놀이를 지켜보는 관객입장에서는 빗줄기가 주는 나름대로의 '소품' 효과를 즐겼을지 모른다.

그렇게 제25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수중전을 치루기는 했지만 관객들은 부슬부슬 내린 빗줄기조차도 연극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듯싶었다. 밤 10시가 넘어 끝났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여름 야외 공연에서는 빗줄기도 하나의 좋은 소품으로 쓰일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는 사절이고. 어쨌든 그렇게 비가 소품으로 쓰이면 하늘도 공동 기획자로 이름이 오르게 되는 건가?

작품명 '조갑녀류 승무'. 서정숙이 춘 춤이다. 여성 공연자가 춘 승무를 오랜만에 보게 됐다.
▲ 조갑녀류 승무 작품명 '조갑녀류 승무'. 서정숙이 춘 춤이다. 여성 공연자가 춘 승무를 오랜만에 보게 됐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거창아시아1인극제, #1인극제, #모노드라마, #만석중놀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