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조선총잡이>.

<조선총잡이>의 공식 포스터 ⓒ KBS


임오군란에 대해 포털사이트에 물어봤다. '1882년(고종 19)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 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일어난 구식군대의 군변'(두산백과). 하지만 KBS 2TV 수목드라마 <조선 총잡이>가 광복절 하루 전날인 14일 다룬 임오군란은 이와 달랐다.

<조선 총잡이>를 이끌어가는 역사적 갈등의 근간은 개혁 세력인 고종과 그의 측근,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드는 기존 수구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다. 젊은 왕은 정권을 쥐고 흔들어왔던 집권 세력 앞에서 야심차게 개혁을 시도하고자 한다. 기존 수구 세력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왕을 갈아치우려고 했고,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이 (드라마에서는) 임오군란이다. 졸지에 구식 군대의 '난'은 기존 수구 세력의 '반정 도구'가 되었다.

역사란 해석이다. 누구든 새롭게 해석할 자유가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역사는 당시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디딤돌이 빠진 냇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디딤돌을 놓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를 건넌다. 하지만 디딤돌을 놓는 방식에도 정도가 있다. 끝나지 않는 전쟁인 국사 교과서 선정과 관련된 논란은 바로 이런 디딤돌의 선택과 선정 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오군란'을 해석한 <조선 총잡이>의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KBS 2TV <조선총잡이>에 출연 중인 배우 한주완

KBS 2TV <조선총잡이>의 한 장면 ⓒ KBS


임오군란 당시 구식 군대는 군란의 진행 과정에서 정권을 틀어쥐고 있던 명성황후 세력에 반발하는 한편, 사태가 발생하자 대원군에게 달려가 함께 해줄 것을 종용했다. 또한 이후의 과정에 대원군의 수하가 가담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 그 어디에서도 그들의 배후에서 수구 권력 세력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설사 그들과 함께했던 수구세력이 있다 해도 5위영 군인들의 실직을 막지 못했을 만큼 실질적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임오군란을 일으킨 군사들이 목표로 삼았던 것 중 하나는 명성황후와 그 측근의 권력 남용이었다. 즉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격화라고는 하지만 이미 정권은 명성황후와 그 측근에 전횡되었고, 그들의 매관매직과 권력 남용은 도를 넘었다. 그들이 만든 신식 군대 별기군에 대한 편애와 5위영 등 구식 군대 군인의 실직과 개편된 무어영, 장위영 군대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 밀린 녹봉 등이 구식 군대가 '난'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었다.

<조선 총잡이>는 집권 세력을 개혁 세력인 고종과 명성황후, 그 측근으로 설정했지만, 이미 임오군란이 일어날 당시 조선은 명성황후와 그 측근이 권력을 틀어쥔 상태였다. 아울러 그들의 도를 넘은 권력 남용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정도였다.

고종과 명성황후, '조선 총잡이'에서는 개혁 꿈꾸는 인물일뿐

이외에도 <조선 총잡이>가 미처 그려내지 못하거나 그리지 않았지만, 위험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한국근현대사사전에 따르면 당시 군민들은 별기군 병영으로 몰려가 일본인 교련관 호리모토 공병 소위를 죽이고, 민중과 합세하여 일본 공사관(서대문 밖 청수관)을 포위해 불을 지르고 일본순사 등 13명을 살해했다. 그러나 하나부사 공사 등 공관원들은 모두 인천으로 도망쳐서 영국 배의 도움으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조선 총잡이>에서 개혁 세력은 상당히 자주적인 세력으로 등장하고, 별기군의 책임자는 좌상의 서자인 김호경(한주완 분)으로 그려지지만, 당시 별기군의 교관은 일본인이었고 임오군란 과정에서 구식 군대의 군인이 그 분노의 타깃을 일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이미 당시 궁정에 일본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임오군란에 가담했던 군인들이 이후 일본에 대항한 의병의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당시 정권에서는 친일본적인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고종은 강단 있는 개혁 세력일 뿐이고, 명성황후는 왕의 지혜로운 조력자일 뿐이다. 별기군의 책임자인 김호경은 그저 일본에서 유학했을 뿐이고, 주인공인 박윤강(이준기 분)는 그저 우연히 운명처럼 김옥균을 만나 일본에서 일본인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KBS 2TV <조선총잡이>에 출연 중인 배우 이준기

KBS 2TV <조선총잡이>의 한 장면 ⓒ KBS


이날 방송의 마지막 장면에서 왕후는 궁궐에서 도망친 고립무원의 고종에게 청의 도움을 받을 것을 청한다. 그때 김옥균은 반대한다. 청의 도움을 받는다면 나라가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 총잡이>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말 이면에 있는 '친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바로 <조선 총잡이>의 결정적 문제점이다.

구한말 조선이 스러져간 모습을 본 이방의 역사학자는 말한다. 어떻게 집권 세력이 순진하게 나라를 외국에 넘겨줄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문제점은 단지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청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일본에 의지해서 개혁을 실행하다가 청을 불러들이고, 러시아 공관으로 도망가는 등 한반도를 열강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한 얄팍한 역사적 안목과 그에 의지해 정권을 유지하려던 안일한 자세에 있다.

하지만 박윤강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몰두한 <조선 총잡이>는 그렇게 드라마를 끌고 가지 않는다. 고종은 하염없이 의분강개한 개혁적인 군주요, 명성황후는 그의 옆에서 고독한 왕을 품어주고 도와주는 영리하고 따뜻한 여인일 뿐이다. 주인공 박윤강도, 정수인(남상미 분)도 그저 의로운 인물일 뿐이다. 열강 세력이 몰려오는 조선 말기인데, 드라마가 그리는 상황은 중종 시기의 권력 구도 같다. 그러다 보니 고종은 마치 정조처럼 개혁을 꿈꾸는 군주라고 정의할 수 있고, 명성황후는 그를 지키는 여인이 되는 것이다.

<조선 총잡이>의 문제점은 그저 임오군란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말하지 않아서 더 심각한 일본의 그림자다. 일본 상인의 도움을 받은 박윤강, 일본을 통해 들어온 신식 문물에 깊게 경도된 정수인,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호경, 오랫동안 일본에 칩거하다 돌아온 김옥균까지 그 누구도 정체성을 정확히 드러내지 않은 채 의로운 인물인 척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이렇게 가다 보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의 과정이요, 진보이자, 발전이라는 해석도 그리 이물감 없이 그려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임오군란에 이어 다가올 갑신정변이 더욱 의심스럽다. 과연 이 드라마는 갑신정변을 어떻게 설명해 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조선 총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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