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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코스모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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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코스모스라도 가을에 보면 더 정이 간다. 코스모스는 아무래도 여름을 뜨겁게 달구는 태양빛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꽃이기 때문이다.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는 가을날 대기 중에 흩어지는 햇살을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름철에도 코스모스를 흔하게 볼 수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가을을 대표하는 꽃 중 하나로 코스모스를 꼽는지도 모르겠다. 가을 햇살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요즘, 강원도에는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산중에 있는 마을, 인적이 드문 길가는 물론이고 차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도로 주변에도 코스모스가 흔하게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정감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가을 코스모스에 정이 가는 이유는 또 있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는 꽃들을 볼 때면, 그 정겨운 꽃들이 마치 내게 인사라도 건네는 것처럼 반갑다. 그 꽃들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서 오라'거나 '어서 가라'는 식의 인사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삼척시 미로면 길가에 서 있는 코스모스.
 삼척시 미로면 길가에 서 있는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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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축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꽃, 코스모스

가을철에는 강원도 어디를 가든 축제가 열린다. 10월에는 축제가 열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래서 10월 한 달 동안에는 강원도를 찾아가는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인사를 주고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코스모스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코스모스는 실제 축제를 여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축제를 가을 축제답게 만드는 역할만은 충분히 해내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가을에 코스모스가 하는 일이 축제 분위기를 북돋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코스모스에는 확실히 길가 가을 풍경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이 때로 코스모스를 하찮게 여기는 건, 다만 이때 코스모스가 하는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너무 흔하게 피어나는 까닭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코스모스가 있는 길과 없는 길은 가로수가 있는 길과 없는 길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가을 풍경에 코스모스가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 사실은 그 이상이다. 가을 풍경을 완성하는데 코스모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이 가을에 코스모스라고 늘 조연만 하라는 법이 없다. 가을에 열리는 그 많은 축제 중에 코스모스축제 하나 열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삼척 코스모스 축제 현장.
 삼척 코스모스 축제 현장.
ⓒ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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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열리는 축제들 중 어떤 것은 그냥 동네잔치 수준으로 끝나는 것도 있고, 비교적 축제다운 외양을 갖춘 것도 있다. 그중에 삼척시 미로면의 고천리와 내미로리 등지에서 열리는 코스모스축제가 있다. 이 축제는 삼척을 대표하는 가을축제 중에 하나다. 코스모스축제로는 비교적 큰 규모다.

이 축제는 무엇보다 산골 마을 한가운데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 코스모스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광경이 장관이다. 이곳 코스모스 꽃밭의 면적은 무려 15만㎡에 달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꽃밭이 아니다. 이 축제는 애초 10월 초중순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올해 코스모스가 피는 시기가 빨라진 탓에, 축제 일정을 9월 말과 10월 초로 앞당겼다. 이 축제는 올해 이달 5일까만 열린다.

준경묘,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
 준경묘,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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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척 왕의 코스모스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축제 현장에서 1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묻힌 묘가 있는데 착안해 축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 무덤들이 바로 '준경묘'와 '영경묘'다. 축제를 기획한 사람들은 이 묘들이 가진 힘을 빌어 이 축제의 위상을 '왕'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코스모스가 가진 순박한 이미지와 '왕'이라는 단어를 연결해 새로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사물을, 하나의 축제로 엮어내는 일 자체가 무리였다. 이 축제를 기획한 사람들은 결국 올해, 이 축제에 왕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일을 포기했다. 오로지 코스모스를 부각시키는 데만 힘썼다.

그렇다고 삼척의 코스모스축제 현장에 와서 코스모스만 보고 가는 것도 어딘지 아쉽다. 기왕에 떠난 나들이, 준경묘와 영경묘가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묘 자체는 그다지 봐 줄 만한 것이 없다. 이 묘들은 조선 왕들의 무덤과 비교해 꽤 소박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 묘들을 둘러싸고 있는 숲은 아니다. 그 숲이 간직한 아름다움은 그냥 왕들의 무덤과 견줄 게 아니다.

준경묘 들어가는 길. 금관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준경묘 들어가는 길. 금관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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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나무숲과 느티나무숲

준경묘와 영경묘를 둘러싼 숲은 우리나라 소나무 숲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숲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지난 2008년,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이 화염에 휩싸인 채 무너져 내린 뒤의 일이다. 남대문 복원에 사용할 목재를 구하는데 준경묘에서 대대로 보존해온 금강송들이 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다들 알다시피 남대문 복원은 그 후 숱한 논란에 휩싸였다. 남대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금강송이 아닌 다른 소나무를 사용했다는 문제가 제기돼 말들이 참 많았다. 그 결과 지금은 준경묘의 금강송들이 실제 남대문 복원에 사용되었다고 장담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쨌든 그러는 사이, 준경묘에서 자란 소나무들의 품격이 국내 제일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제대로 인정받았다.

준경묘로 들어가는 길가 한쪽 산비탈에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른 소나무가 있다. 한눈에 봐도 그 기품이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다. 이 소나무는 세계 최초로 전통 혼례식을 치른 소나무라고 해서, 꽤 명성이 자자하다. 당시 주례는 산림청장이 맡았다. 이 두 소나무는 결혼 후, 아이도 여럿을 낳았다. 그 아이들이 지금 서울 남산 등지에서 정이품송의 대를 잇고 있다.

준경묘가 도로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준경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잡아 올라가는데 그 길이가 다소 길다. 1.8km에 달한다. 게다가 그 길의 초입에서 1km 거리까지는 줄곧 가파른 산비탈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후 800m는 거의 평지에 가깝다.

미리 각오를 하고 올라가는 게 좋다. 산길은 임도나 다름 없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한 편이다. 준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이 잠든 묘이다. 그리고 영경묘는 이양무 장군의 부인인 이씨의 묘이다.

천은사 극락보전과 절을 지키는 개 한 마리.
 천은사 극락보전과 절을 지키는 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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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축제 현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천은사라는 절이 있다. 천은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절은 아니다. 그래도 그 역사만큼은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절은 758년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됐다. 고려 문신으로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 선생이 한때 이곳에 거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지금 천은사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다. 문화재 중에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이 절의 역사는 절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대변한다. 그 숲이 꽤 깊다. 절 입구에서부터 250년 이상 묵은 느티나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나무들이 모두 한 사람이 품어 안을 수 없는 거대한 몸통을 자랑한다.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 느티나무들 모두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그 나무들 아래로, 절로 들어서는 다리 위 난간이며 계곡을 메운 검은 바위들 모두 파란 이끼로 덮여 있다.

천은사는 겉보기에 꽤 소박한 절이다. 그렇지만 그 절집 주변에서 풍겨 나오는 청량감만큼은 결코 다른 곳에 뒤지지 않는다. 절 옆으로 두타산을 오르내리는 등산로가 있다. 그래서 이 절에서는 절을 찾는 신도들보다 등산객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수백 년 묵은 숲의 내밀한 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찾아가볼 만한 절이다.

천은사 느티나무.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령이 250년. 지금은 수령이 280년이 넘는 셈이다. 천은사에는 이런 느티나무들이 10여 그루가 있다.
 천은사 느티나무.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령이 250년. 지금은 수령이 280년이 넘는 셈이다. 천은사에는 이런 느티나무들이 10여 그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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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스모스, #천은사, #준경묘, #영경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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