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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남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영구조위점을 넘어버린 낙엽들은 바람에 스러져 흙으로 돌아간다.
▲ 낙엽 미련이 남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영구조위점을 넘어버린 낙엽들은 바람에 스러져 흙으로 돌아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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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시들어가는 지점을 조위점이라 한다. 수분이 빠져나가고 이파리 끝부터 차츰 말라간다. 흔들림 없던 줄기가 굽어가고 메마른다. 물을 주어도 되살아 날 수 없는 지점인 영구조위점을 넘기면,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내는 조위점을 넘긴 식물 같았다. - 윤철중의 '꽃 한 송이가 없네' 사진전 초대글 중에서

윤철중씨는 지난 10년 동안 암투병을 하는 아내를 간병하며 진료를 받는 순간, 고통을 견디는 밤, 장례식과 그 이후까지 덤덤하게 수채화처럼 사진으로 담았다. 수천 장 중에서 25장의 사진을 추려 연 윤철중 사진전 '꽃 한 송이가 없네' 전시장 앞에 걸린 '조위점'에 대한 설명을 읽고는 한동안 멍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83세의 어머니, 어머님도 언제부터 조위점에 이르셨고, 영구조위점을 향해 가고 계신다.
▲ 어머니 83세의 어머니, 어머님도 언제부터 조위점에 이르셨고, 영구조위점을 향해 가고 계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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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조위점을 넘긴 식물과도 같은 삶을 이어가고 계시다. 의학적으로 말기암 판정을 받았지만, 어머니의 연세에 항암치료를 한다는 것은 그의 몸을 괴롭게 할 뿐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어머님이 너무 힘드시지 않게, 품위를 잃지 않고 편안하게 돌아가시길' 기도할 뿐이었다.

목사이면서도 거의 난생 처음으로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치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도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문제 앞에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줄곧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께서 씻고 꽃단장을 하신다. 좋다.
▲ 어머니 줄곧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께서 씻고 꽃단장을 하신다. 좋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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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이다. 거반 식사 때를 제외하면 누워 계시거나 잠을 주무시던 어머니께서 손거울을 보시며 머리 손질을 하신다. 스스로 치장을 하시는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본다.

"어머니, 누구 만나러 가시게요?"
"애인 만나러 가려고."
"어디 숨겨두셨어요?"
"저기 돌아가면 있어."

얼마전 어머니의 큰오빠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때만 해도 외출을 하실 정도로 건강했었고, 그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모두 어머니가 그렇게 심각한 병을 갖고 계신줄 몰랐다. 저속으로 담았다.
▲ 어머니와 아버지 얼마전 어머니의 큰오빠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때만 해도 외출을 하실 정도로 건강했었고, 그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모두 어머니가 그렇게 심각한 병을 갖고 계신줄 몰랐다. 저속으로 담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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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보다 10살이나 많으신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 어머니보다 더 건강하게 옆을 지키고 계신데, 어머니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농을 하신다. 그 애인이 바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버지이니 그렇게 말씀하신 게다. 아버지는 으레 본인이 먼저 이 땅의 소풍을 마치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셨는데, 어머님께서 먼저 가실 채비를 하고 계신 것이다.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라 희미하게 본다. 지난 여름 어머니의 큰오빠가 돌아가셨다. 그렇게 한 계절 보내고 어머니는 큰오빠가 갔던 그 길을 가려고 채비 중이신가?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혼돈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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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지금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인생의 봄을 19살까지라고 선을 긋고 싶다. 그리고 20~50살까지를 인생의 여름이라고 하자. 그리고 조금 더 세분하여 50~60살을 초가을, 60~70살은 완연한 가을, 70살 이상은 늦가을, 그리고 영구조위점을 넘어버린 순간부터 죽음까지는 초겨울이라 하자.

그러니까 나는 초가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계절, 그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다. 가을에 느끼는 온갖 센티멘털한 것들이, 이전의 계절에는 없었던 감정들이, 지금 내가 가을을 타는 중년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단풍든 마가 열매를 맺고 있다.
▲ 마 단풍든 마가 열매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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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무슨 꿈이든 꾸기만 하면 다 내 것이 될 줄 알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여름이 되자 대학의 낭만은 즐길 겨를도 없이 지나갔다. 친구들 결혼 청첩장이 날아오고, 함잡이 노릇을 하고, 백일잔치, 돌잔치가 열렸다. 간혹 급하게 먼 길을 간 친구들 때문에 슬퍼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럭저럭들 살아갔다.

계절이 조금 더 무르익으니 부모님 회갑잔치, 칠순잔치가 열렸고, 부모님 부고가 점점 늘어갔다. 그런 가운데 자녀들 대학 입학 소식과 군 입·출소 소식이 들려오고, 취업 소식과 결혼 청첩장들이 넘쳐났다.

말라빠진 북어처럼 변해버린 나,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부드러워질까?
▲ 북어 말라빠진 북어처럼 변해버린 나,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부드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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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자 중년이라는 단어가 나를 쫓아다녔다. 이 초가을의 시기에는 늦여름의 고민들이 중첩되기도 했다. 끊임없이 청년이고 싶었지만, 마음과 현실은 달랐다. 대체로 흰머리가 늘어나고 근육도 처지고 주름살도 늘어가고 아랫배는 처졌다. 그냥 다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렇게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곱게 늙자!' 입에 발린 위로를 서로에게 했다.

마음은 강퍅해지고, 굳어진다. 이젠 어지간한 일에는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냉철하다. 마치 버쩍 말라버린 딱딱한 북어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두드리고 두드려보면, 북어의 속살처럼 부드러움이 남아 있기는 할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나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축제처럼 맞이해야 한다고들 한다.
▲ 노년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나 누구나 가는 길이기에 축제처럼 맞이해야 한다고들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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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때는 좋은 때다!" 마법의 주문을 걸듯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가을의 무게는 만만치가 않았다. 마치 한여름 뙤약볕에 시들지 않고 태풍에 쓰러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여, 얼마나 버티나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사업하다 낭패를 본 친구도 있고, 이혼한 친구, 재기불능의 상황에 빠진 친구, 헤아릴 수 없는 아픔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바둥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제법 자리를 잡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위태위태 줄다리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든 때가 좋은 때라고?" 그래야 되지만, 조위점을 넘어간 어머니도 가장 좋은 때를 살아가는 것일까?

노란리본은 잘 물든 은행잎을 닮았다. 그런데 슬프다.
▲ 세월호 노란리본 노란리본은 잘 물든 은행잎을 닮았다. 그런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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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색깔 중에서 나는 진한 은행의 노란잎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올해는 4월 16일 이후 노란리본이 거리마다 넘쳐났다. 백일이 넘고 160일도 넘고, 봄에서 계절이 가을로 넘어가자 "지겹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지겨우리만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진실규명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세월호가 침몰한 뒤 대한민국은 또 그렇게 침몰하고 있는 것이리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노란 빛깔이 넘쳐나는 겨울, 겨울공화국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봄날 피어나던 꽃 같은 아이들을 보낸 부모의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가을의 두물머리에서 만난 배
▲ 배 가을의 두물머리에서 만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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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나를 태우고 강줄기를 타고 저 먼 바다까지 갈 수 있는 작은 가능성만 있다면, 그 가는 길에 은빛 억새물결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작은 배 노 저어 가는 그 끝이 어딜지 몰라도 가고 싶다.

가을에 태어났으면서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을이라고는 탈 줄 모르는 무덤덤한 남자였다. 그러나 올해는 너무도 아픈 일들이 한꺼번에 내 삶으로 밀려오면서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저자 그 무력함의 도움을 받아 '가을'이라는 놈이 나를 넘보고 있다.

오늘 아버님의 93세 생신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잘랐다. 치매와 말기암으로 곧 낙엽 떨어질 날을 기다리시는 어머니께서 아버지 생신에는 마지막일 기도를 해주셨다. 우려와는 달리, 남편의 건강과 자녀들의 무탈함과 살아온 날에 대해 감사를 드리셨다.

가을이기만 해도 슬프고 외로운데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왜 이리도 한꺼번에 몰려드는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서서히 나의 삶을 조위점으로 몰아가는 것인지, 그 무엇이라도 그냥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을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순응이다.


태그:#가을, #중년, #조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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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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