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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기자의 자취방 '만찬'
 사회초년생 기자의 자취방 '만찬'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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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자마자 냉장고 문을 연다. 뚜껑을 열고 찌개의 냄새를 맡아본다. 킁킁. 맛이 거의 가기 직전이다. 오늘 다 먹어치우지 못하면 내일은 버려야 한다. 아낌없이 넣었던 참치 통조림이 다시 아까워진다. 김치찌개를 불 위에 올려서 데운다. 보글거리는 소리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미리 안쳐 놓았던 밥을 푼다. 본래의 쓰임새보다 식탁 대용으로 더 자주 호출되는 다리미판을 꺼낸다.

어제 신문을 식탁보 대신 깔고 그 위에 밥그릇을 놓는다. 엄마가 해준 멸치볶음과 김치를 꺼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수저와 물까지 준비하면 대충 시간이 딱 맞는다. 보글보글. 지금이다. 행주로 냄비고리를 붙잡고 참치김치찌개를 옮긴다. 천주교 '나이롱' 신자 특유의 초스피드 식사 전 기도를 마친다. 잘 먹겠습니다.

자취생활 2년 차, 청소도 빨래도 능숙해졌지만 혼자 밥 먹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할 때는 방 안에서 혼자 밥 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선배, 동기, 후배와 삼삼오오 밥을 먹었다. 얻어먹기도 하고 사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던 것이 엊그제 같다. 회사 앞으로 방을 옮긴 이후로는 이제 혼자 먹는 것이 일상이다. 회사 선배한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고 동기들과 같이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XX카드] 곽X신님 10월 02일 카드대금미납으로 신용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차 싶었다. 은행 계좌에 미리 돈을 안 넣어놨나 보다. 이름 가운데 자를 가려주는 과잉친절에는 감사하지만 내 주머니 사정에 한숨만 나온다. 밥을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지만 있다한들 매번 사먹기는 경제 문제가 녹록지 않다. 독립하고 나니 사먹는 것도 사실 부담스럽다. 학자금대출 3000만 원에 전세자금 5500만 원이 고스란히 내 앞으로 된 빚이다. 사회 진출하자마자 신용불량의 위기에 놓인 나, 그래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먹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면 안 되나. 이야기가 없고 누군가와 공유할 삶이 없는 밥상은 쓸쓸하다.

혼자 먹는 것에 재미를 붙여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다. 날카로운 것을 무서워해서 칼질은 잘 못하지만 불 조절이나 간 맞추는 정도는 제법 한다. 느타리버섯을 볶고, 고사리는 무치고, 시금치는 데쳤다. 면을 삶고 토마토 소스와 함께 볶다가 모짜렐라 치즈도 얹어봤다. 큰 마음 먹고 고기를 사다가 '미디움 레어'로 구워도 봤다.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나 혼자 밥 먹는다

하지만 만드는 재미가 먹는 재미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신나게 만들었다가도 혼자 하는 젓가락질에 울컥 한다. 이 맛있는 걸 혼자 먹어야 하다니. 자취방에 데려올 여자친구조차 없는 나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며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되돌아본다. 엄마 보고 싶다.

그래도 혼자 먹을 때 한 줄기 빛이 되어 주는 메뉴가 있다. 누구에게나 '힐링'을 위한 '소울 푸드' 하나쯤은 있기 마련 아닌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무너진 '멘탈'을 추스를 때 먹는 밥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간장계란밥', 흔히 '간계밥'이라고 줄여 부르는 그 밥이다.

간계밥은 결코 어려운 메뉴가 아니다. 만들기도 쉽고, 맛도 괜찮아서 뭔가 해먹기 귀찮은 자취생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우선 달걀을 하나 부친다. 어차피 나중에 간장을 넣으니 소금간은 하지 않는다. 흰자가 익었을 때 한 번 뒤집어준다. 노른자는 무조건 반숙이다. 완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적당히 익으면 밥 위에 얹는다.

밥 아래에 계란과 간장, 참기름을 깔고 비비다가 뭔가 아쉬워서 계란을 하나 더 올렸다. 엄마가 보고 싶다.
▲ 간장계란밥 밥 아래에 계란과 간장, 참기름을 깔고 비비다가 뭔가 아쉬워서 계란을 하나 더 올렸다. 엄마가 보고 싶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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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는 계란을 아래에 깔고 밥을 넣은 뒤 다시 그 위에 계란을 얹는다. 이른바 '쌍계란밥'은 뜨끈한 노른자가 밥알에 더 촉촉하게 스며들어 풍미를 더한다. 간장과 참기름을 취향에 따라 적당량 부어준다. 이제 완성이다. 한 번 더 하느님께 죄송함을 담아 순식간에 식사 전 기도를 해치우고 밥을 비빈다. 흰자와 노른자가 밥알과 뒤섞이며 그 노란색이 그릇 안을 가득 채운다. 마치 햇살이 퍼져서 방을 덥히는 것 마냥 내 마음도 그만큼 따뜻해진다.

요새는 변종 레시피가 많이 나와서 양파를 넣기도 하고 소스를 첨가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제일 맛있는 건 '오리지널' 간장계란밥이다. 순수하게 계란, 간장, 참기름, 밥 이 4종류의 식재료만 쓴 원조 간계밥이 내 입에는 제일 맞다.

혼자 먹는 간계밥이 소울 푸드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지금이야 하루에 불효를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슈퍼불효자'이지만 어려서는 어디서나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효자였다. 혼자 놔둬도 울지도 않고 부모님을 찾지도 않으며 제 할 일 다하는 큰아들이었다. 1990년대 후반, 그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언제나 간장계란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정성스레 고루 비벼준 그 밥을 혼자 먹고 치운 후 숙제를 하고는 했다.

엄마의 사랑이 담겼던 그 메뉴, 간장계란밥

아버지는 일을 나가시고, 엄마도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동생은 어려서 많이 아팠다.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의 시나리오와 설정을 줄줄이 읊으며 평가하는 '말빨'의 소유자이지만.

당시에 동생은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많은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동생을 다니고 치료를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 가끔 따라간 적도 있지만 어차피 거기에서도 나는 혼자 남겨졌다. 집에서 혼자 엄마와 동생이 오기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집에서 혼자 남아 학습지를 푸는 나에게, 간장계란밥의 존재는 엄마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나를 생각하고 밥 굶지 말라고 챙겨준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때야 동생이 어디가 아픈지, 엄마가 왜 자꾸 동생하고만 외출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나름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 얘기였다. 나에게 남아 있는 기억은 그 따뜻한 색깔의 계란 노른자가 전부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자꾸 생각나는 그런 맛이었다. 그래서 군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복귀를 눈앞에 두고 간계밥을 찾았다. 피자, 치킨, 족발로 가득 채운 뱃속이었지만 돌아가기 전에 간계밥의 맛이 생각났다. 엄마한테 간계밥 한번 해달라고 했을 때, 엄마의 눈시울이 왜 붉어졌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간계밥의 사연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더 후였다. 언젠가 부모님과 술 한잔 나누고 있을 때, 엄마는 당신께는 그 말이 참 아프셨다고 고백하셨다. 나에게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밥이었지만, 엄마는 작은 아들 때문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셨단다. 뭐 그 정도면 잘 챙겨주셨던 것 아닌가 싶었다. 뭐라도 더 먹이고 싶었는데, 고작 간장계란밥을 두고 나서는 발걸음이 두고두고 무거우셨나 보다.

꼭 그 사연을 알게 돼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 후로 자취방에 혼자 누워 있다가 엄마가 생각나면 간장계란밥을 해먹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계란과 밥과 간장과 참기름의 황금비율까지 터득했건만 그래도 왠지 어렸을 때 먹던 그 계란밥에는 못 미치고 있다. 지금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일 때,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가 해주던 그 따뜻한 노란색이 그립다.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전화나 한 번 드려볼까나.


태그:#간장계란밥, #나 혼자 산다, #밥,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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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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