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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최봉실 대표는 왜곡된 충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 최봉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 최봉실 대표는 왜곡된 충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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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대왕 때 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패륜의 소식을 들은 세종은 신하들에게 자초지종을 알아오게 했다. 한자로 된 윤리책을 읽지 못해서 백성이 인간의 도리를 어기게 됐다는 이유를 들은 세종은 가슴 아파했다. 쉽게 익히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을 만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글 창제로 대표되는 위민정치를 펼친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수확률을 높이기 위한 농법을 담은 <농사직설>을 편찬하게 하고, 노비에게는 출산 휴가를 주는가 하면, 국경 지역에서 먹을 것을 찾아 넘어오는 이들도 자신의 백성으로 돌보았다.

교육문화연구학교가 시작한 날은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더해 이날을 여는 마당으로 잡았다. 최봉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는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펼쳤던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며 첫 강의의 문을 열었다. 최 대표는 세종의 위민정치의 본뜻은 '충(忠)의 길'에 있다고 말했다. 백성을 위하는 길을 논하려는데 거꾸로 충(忠)이라니?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관계의 도리를 중시한 사상입니다. 신하는 왕에게 충(忠)을, 자녀는 부모에게 효(孝)를,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를, 왕은 신하에게 인(仁)을 다하라고 하지요. 이중 유교의 핵심은 인의 사상입니다. 인은 측은지심, 안타까운 이를 보면 안타까워지는 것을 말하는데요, 세종대왕이 가졌던 마음이 이 마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서 갖는 안타까운 마음, 이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왕이 신하에게 관계의 도리를 다하는 '인'은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신하가 왕에게 관계의 도리를 다하는 '충'의 본뜻은 무엇일까.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10월 9일 한글날에 모여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10월 9일 한글날에 모여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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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향한 이순신의 '충'

영화 <명량>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백의종군했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해 병력을 모으려고 할 때, 임금은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이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편지를 보낸다. 이를 본 이순신의 아들 이회는 "왜 이렇게까지 임금에게 충성하느냐"고 묻는다. 이순신은 "나의 충은 백성을 향한 충"이라고 답한다. 제대로 된 충은 백성을 향한 것이고, 왕에게 충을 바치는 것은 백성을 책임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성을 책임지는 존재인 왕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신하가 왕에게 '충'하는 것. 여기서 '위민'과 '충'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충'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로 느껴진다. 최 대표는 이를 '충'의 개념이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현대에 숭상되고 있는 가치는 민주주의, 자유, 개인 존중의 사상입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충의 사상은 이러한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지요. 또 우리는 일제강점기 천황을 숭배하도록 충을 강요받았습니다. 36년간 잘못된 충이 충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현실을 너무 오랜 세월 겪었습니다. 그때 입은 내상이 아직도 낫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독재 시대를 보냈습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잡혀가고 끌려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에 충을 바쳤던 친일파의 후예들은 지금도 친근하게 충을 이야기하지만, 진보적인 사람들은 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충의 개념이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충이 긍정적으로 수용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요."

최 대표는 한자에 담긴 의미를 통해 충(忠)의 개념을 설명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만나서 이룬 글자다.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안과 밖을 관통하는 모양새이며, 하늘과 땅을 잇는다. '중'은 단순히 시간적인 가운데나 공간적인 가운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안과 밖의 일관된 본질' 혹은 '삼라만상의 가운데, 중심'을 의미한다.

심(心)은 인간의 염통 모양을 본 떠 만든 글자로, 마음·정서·생각·느낌·정을 포괄하며 인간 존재의 '가운데'이다. 최 대표는 "'충'은 우리 정신, 마음, 가운데와 우주 세계 삼라만상의 중심이 딱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중을 향한 집중, 중(본질)에 마음을 쏟고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 이것이 충이다. 이러한 충을 지속적으로 성실히 해 가는 것이 또한 '충성(忠誠)'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새들마을학교 가을겨울학기 수학 첫 시간, '생활 속의 숫자를 찾아라'. 우리는 수학 자체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 충의 만남 2014년 새들마을학교 가을겨울학기 수학 첫 시간, '생활 속의 숫자를 찾아라'. 우리는 수학 자체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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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충'의 의미를 회복하자

최 대표는 왜곡된 충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교육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충의 본의를 제대로 살리는 것, 다시 말해 '충의 만남'을 이끌어 가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이 만남이 충의 만남이 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이 세상의 무수한 대상, 다른 존재들을 만날 때에 그들의 중(본질)을 만나도록 돕고, 충으로 만나게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이 충의 만남으로 부지런히 이끌어 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 하나하나를 전심으로 만나고, 그 본질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요.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거나 시험을 잘 보려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보다 건강한 목적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부족합니다. 진짜 목적은 영어 그 자체를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말하고 듣는 것 자체, 그 언어 자체를 만나게 하는 게 교육의 1차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타인과의 소통이고, 직장이나 학교에 가는 거지요. 안타깝게도 제도권 교육은 영어 그 자체, 본질을 만나는 기쁨을 잃었습니다. 이를 잘 회복하는 게 필요합니다."

여기서 개별 존재들의 만남은 반드시 삶 전체, 우주 전체 질서의 중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이 중심으로의 연결점을 깨닫고 나아가게 해야 한다. 생과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더 높은 차원의 이해로 나아가며 더 큰 본질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인간 이해를 초월한 영역에 대한 겸허함과 경외심으로,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언제든 내가 부분으로 몸담고 있는 이 전체 우주 질서의 본질이 내 생의 인식의 영역으로 포착될 때, 겸손히 열려 있음으로 끊임없이 현실로 침투해 들어오는 초월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행복은 잘 만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의 만남으로 이끄는 공부는 개별 생명체 상호 간의 본질적 만남뿐 아니라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질서와의 본질적 만남까지도 이어질 때 보다 더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 대표가 말하는 '충의 만남'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매순간 겸손하게 열려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이전에 고수하고 있던 틀이 강하면 낯선 것이 들어왔을 때 받아들이기 너무 어렵습니다. 너무 낯설어 두려워 받아들일 생각을 못합니다. 열려 있어야 훨씬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전체를 향한,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향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모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열어 두고 있는 것, 열린 자세로 부지런히 '중'을 포착하는 것, 포착한 '중'에 나의 '심'을 온전히 쏟아내고, 거기서 비롯된 '충의 만남'을 도모하고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의 원문과 함께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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